인문

육이오날에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생각해봅니다

훼브스 2020. 6. 28. 13:53

2020628

육이오 기억하는 기념일을 맞아 가장 치열했던 남북대치 상황에서 군복무를 최전선 볼음도에서 했던 사람으로 잦은 공비 출몰과 해군 정찰대대에 같이 근무했던 동기 김현경 선임들 곽동성 함영주 외 다수의 전우들이 북한의 만행으로 전사하는 것을 보아온 사람으로 전쟁의 비인간성 인간성 말살에 전율하게 됩니다 그 까닦은 북의 막가파식 행동과 빌미를제공하는 여러요인중 하나 대북 전단살포의 주범 박상학 그리고 그를 두둔하는 세력들 특히 일부국회의원들   또라이 같은 볼턴까지 열받게 합니다 헌법에 명시 되어 있듯이 평화통일의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일당독재 독특한 공산주의 김정은도 사고가 많이 변해야 된다 생각합니다  전장의 참상 세계 1차대전때 독일소년병으로 참전해서 죽을고비를 여러번 넘기고 중상으로 살아나서  전장의 참상을 알리고자 반전작가된 레마르크의 실전의 경험을 소설화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올려보겠습니다

아울러 나라를 지켜주신 호국영령들께 그리고 유엔참전용사들께 깊은 감사의 묵념을 올립니다 

1차세계대전 당시 전술 참호 전의 영국군 사진 출처외국포털 

레마르크 독일 서부 베스트팔렌 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18세 때 사범학교 재학 중 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여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 후에 씌어진 <귀로>와 함께 전쟁에 대한 증오를 잘 그려낸 뛰어난 작품입니다. 반전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여러차례 영화화되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더 이상 독일에 있지 못하고프랑스로 망명했고, 2차대전이 터지자 미국으로 다시 망명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후 스위스에 정착했지요.그는 또 2차 세계 대전 때의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한 망명객의 불안과 절망을 묘사한 <개선문>을 발표하여 다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 소설은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1947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이듬해스위스로돌아왔습니다. 1958년에는 미국의 배우 폴레트 고다드와 재혼하였으며, 로카르노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위글은위키백과에서 인용한 레마르크에 대한 간추린 설명입니다

 

포르투갈 리스본 항구 

포루투갈 여행때 여성가이드가 호시우광장에서 피신한 세계유명인시들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유태인 대 학살때 이곳 리스본에서 탈출한 10만 여명의 유태인들 중에는 러시아계 유대인 마르크 샤갈. 독일 태생 막스 에른스트. 항가리 태생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 독일 反戰 작가 레마레크  프랑스작가 앙드레말로 등 자유를 찾아 미국행 여객선을 여기서 승선했다 합니다

세계1차대전당시 프랑스에 있던 많은지식인들이 리스본으로 와서미국으로 탈출 했다고 하는데 그중반전 작가 레마르크 도 있었지요

반전작가 레마르크는 고등학교재학중 1차대전에 참여해 죽을고비 여러번넘긴 실전 경험으로 쓴 "서부전선이상없다"는 주인공이 죽던날 서부전선이상없다 라는 상황보고서를사령부로 타전한다는 전선의 아이러니를 제목으로 삼은것인데 내용중 전쟁의 비인간적인상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1차 대전 당시 전술 참호전의 비극이 그려집니다 포탄작렬 참호로 뛰어든 독일군과 영군군칼로 뒤엉켜 싸우다 영국군은죽음에 이르러 고통에 몸부림 칩니다포격 총탄소리 에 죽어가는 병사의 신음소리 에 산자는 지옥에 빠지는데죽어가며 무언가 애원 하는 영국군병사 윗 주머니 꺼내보니 사랑하는부인 딸 사진 그리고 편지 었습니다그걸 가족 에게 보내달라는 참혹한전장터의 비극이 그려지지요  육이오 동족상잔의 비극 다시는없어야 되는데 강대국의 이해상관에어쩌지 못하는 현실이 통탄스럽습니다

아래글은 The Daily Telegraph 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소설 서부전선이상없다가 매거진에서 처음 연재 될 때 유통이 촉진되었습니다.

2 차 세계 대전 이후 10 년 동안 사람들은 갈등에 대해 읽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있었습니다.

작가 인 에리히 마리아 레 마르케 (Erich Maria Remarque)는 분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독일 젊은이에 대한 생생하지만 우울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1929 년에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그의 서문은고발이나 고백이 아니며,

적어도 모든 모험은 아니었다. 죽음은 직접 대면하는 사람들에게는

모험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밀어 낼 정치적 입장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군인이 전선에서 봉사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말하기를 원했습니다.1929 년 호주의 베테랑과 로즈 학자 Arthur Wheen이 영어로 번역 한

이 책은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라는 제목으로 국제 베스트셀러가되었습니다.1930

 

에리히 마리아 레 마르케 (Erich Maria Remarque)는 1917 년경 제 1 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복을 입고있었습니다.

 

사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책에서 자신을 인물로 인식하고 그의 책이 실제 이야기로 어리둥절 해 졌다고 불평했습니다.

전쟁에서 복무 한 의사와 간호사들도 병사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무관심한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화 상영을 방해 한 나치에게 화를 냈으며 1933 년 권력을 장악 한 후

그의 책을 불 태워졌습니다.

레 마르케는 결국 독일을 탈출하도록 강요 당했고 그의 탈출은 그의 목숨을 구했지만

그의 가족들은 파시스트들에게 자비에 맡겨졌습니다.

120 년 전인 1898 6 22 , 독일 오스 나브 뤼크에서 태어난 Erich Paul Remark는 나중에 그의 성을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바꾸겠다고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Peter Franz Remark는 상대적 빈곤에 살면서 가족을 구직으로 옮기는 책 바인더였습니다

 

Remarque는 작문과 음악을 즐기는 좋은 학생이었습니다.

사립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을받은 그는 17 세의 나이에 군대에 징집되기 전에

교사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반전 서기로 유명해졌지만, 징집 당했을 때 전쟁에 대한 애국적인 열의를 공유했습니다.그의 부대는 벨기에의 Ypres 근처, Adolf Hitler가 서빙 한 곳 근처로 파견되었지만 두 사람이 만난 기록은 없습니다.

1917 Passchendaele 전투에서 Remarque는 그의 동료 Christian Kranzbuhler를 구해 그의 책에 등장하는 Kemmerich의 기초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곧 그의 애국적인 열정에서 그를 빼앗아 간 공포를 목격했습니다.

 

1947 년 배우 Ingrid Bergman과 함께한 Erich Maria Remarque는 자신의 저서 Arch Of Triumph의 영화 대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7 31 일 영국 폭탄의 껍질 파편으로 팔과 다리, 목에 부상을 입히고 나머지 전쟁의 대부분을 회복하는 데 보냈습니다. 그는 휴전 직전에 적합하다고 선언되었지만 두 개의 철 십자가와 장교의 유니폼을 입고 이상하게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한 친구 인 크란 즐러 (Kranzbuhler)가보고 한 바에 따르면, 그는 장교를 가장 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전쟁 후 독일에서 만연한 혼란 때문에 심각한 행동을 피했습니다.

그는 교사 훈련으로 돌아 왔고 1919 년에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가 시간에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를 출판하고 지역 신문에 음악과 예술 비평을 썼습니다. 1920 년에 그는 첫 번째 소설 인 '꿈의 방 (Dream Room)'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면서 세일즈맨, 오르간리스트, 퍼블릭리스트와 같은 다양한 직책을 맡아 캡틴 하인이라는 군인에 대해 인기있는 만화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1925 년 배우 Jutta Ilse Zambona(주타 일세 잠 보나)와 결혼했지만 아내의 불충실로 인해 불행한 결혼 생활을하게되었습니다 (1930 년에 이혼). 1927 년에 그의 직렬화 소설 Station At The Horizon(수평선의역)이 출판되었습니다. 그것은 전직 군인 턴 레이싱 자동차 운전자와 그의 열렬한 사랑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허구의 이야기에서 그의 전쟁 경험의 현실을 포착하기 위해 또 다른 더 큰 프로젝트가 그의 마음에 형성되었습니다.

 

1951 년 독일 작가 Erich Maria Remarque

 

1958 년 베니스의 부인 Paulette Goddard와 작가 Erich Maria Remarque.  

서부 전선 이상없다 의 성공으로 그는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나치즘의 부상으로 그의 작품은 반 독일 로 비난 받았습니다.레 마르케는 1938 년 스위스로 도망 쳤습니다.

1939 년에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할리우드에 위배되었고 Marlene Dietrich(말린디트히리)와 로맨스를했다고 소문이났습니다.그곳에서 그는 그의 자매들이 나치의 감시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1943 년에 그의 막내 여동생 인 Elfriede Scholz(엘프 리드 숄츠)는 체포되어패배자의 말로 사기를 약화시켰습니다. 그녀는 참수로 처형 당했습니다.

Remarque1941 년까지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고 1947 년까지는 허용되지 않아 1948 년 스위스로 돌아 왔습니다. 전쟁 후 많은 독일인들은 Remarque를 자신의 나라를 포기한 배신자로 간주했습니다.

1951 년 뉴욕을 방문한 그는 배우 폴레트 고다드를 만나 관계를 시작했습니다.그는 1952 년 책 스파크 오브 라이프를 고다드에게 헌정했으며 1958 년에 결혼했습니다. 1970 년에 사망 할 때까지 계속 글을 썼습니다

 

원문출처 : The Daily Telegraph

Today in History

Tragedy of war was seen through the eyes

Erich Maria Remarque’s novel,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오늘의 역사
전쟁의 비극은 Erich Maria Remarque의 소설, 서부 전선이상없다

Troy Lennon, History editor, The Daily Telegraph

June 22, 2018 12:00am

트로이 레논,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역사 편집자
2018 6 22 12:00 am

 

춘곡 

전쟁과 혁명의 차이를 생각해 봅니다 전쟁은 누군가에 의하여 시작되지만 혁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6.25전쟁은 김일성에 의하여 시작되었지만 4.19 혁명은 대중에 의하여 일어난 것과 같은 것이지요

 

서부전선이상없다 영화장면

육이오 당시 생필림 

육이오 당시 생필림 

육이오 당시 생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