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여행

태국왕궁여행(인도차이나10부)

훼브스 2020. 7. 25. 16:12

 

 

 

 

 

오래전 율브린너 주연의 왕과나에서 왕궁과 왕자 공주들의

교육 방법에 대하여 흥미롭고 화려한 타이의 왕궁이 소개되었었다

하지만 정작 타이랜드 당국은 역사적 교육적 외곡을 이유로

타이국내 상영을 금지 시켰다 한다.

 

 

 

 

태국여행

 

 

 

공식 명칭

타이 왕국(Kingdom of Thailand)

인구

65,493,298 (2008)

면적

514,000km2(남한의 약5)

수도

방콕

정체 / 국가원수

입헌군주제 / 푸미폰 국왕

공식 언어

타이어

종족 구성

타이인(81%), 중국인(13%)

종교

불교(94.6%), 이슬람교(4.6%)

화폐 단위

바트(Baht)

독립연월일

식민지가 된 적이 없는 나라.

위치

동남아시아의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 있는 나라

 

 

태국은 세습되는 국왕을 정점으로 영도자적 입헌군주국이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국왕이 직접적인 정치개입은 않한다고 하지만

택국국왕은 정치.경제.종교를 비롯한 국가 전반의 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빈번한 쿠테타로 새로운 군부의 리더가 생기면 반드시 국왕의

동의를 구하여야만 쿠테타의 성공할수 있다

태국 헌법

6조에는 국왕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책임을 지지않는다

9조에는 국왕은 불법(부처)의 수호자로서 법적으로 어떤 오류도 없다

규정하고 공표하였다

이에 더해서

7조에는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헌법이 규정하지 못하는 사항은

국왕이 그 권한을 가진다고 적시하므로서 국와을 헌법 상위의

절대적인 존엄과 가치로서 규정 짓고 있다

의회해산권이나 긴급조치건 군통수권.법률안 거부권등

강력한 왕정국가의 절대군주와도 같은 권한을 헌법상 부여받고 있다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 아뎃의 생일행사에

 

참석한 의전대(신화사통신)

세계에서 가장 긴 재위 군주  태국 국왕 푸 미폰 아둔 야뎃

 

태국의 간략한 역사는

야유타야 왕국(1351-1767)은 말레이반도까지 그 위세를 떨쳤다

동쪽으로는 앙코르를 공격해 크메르 제국(802-1431)을 위협하였고

서쪽에서는 미안마와 대립하였다

1431년의 시암군대에에 의한

앙코르 약탈 이후 크메르의 조신들과 힌두교적 관습들이 아유타야

왕국으로 대량 유입되어 세련된 궁정의례와 정비된 행정제도를

만들었으며 크메르의 관습과 종교적의식들이 시암의 궁정문화에

수용되었다 또한 이시기에 왕족 귀족 일반서민의 사회적 지휘를

논 넓이로 표시하는 사크티나 제도를 확립하였다

1569년 미안마와의 전쟁에서 아유타야가 함락되었고

1584년 중흥의 시조 나레수안 대왕이 다시 미안마군을 쳐부수고

타이의 독립을 되찾았다

 

 

 

아유타야 시댕에도 해외교역이 성행하였다

타이족은 중국남부에서부터 라오스.타이.미안마.말레이 반도등에

광범위 하게 분포되어있다 타이족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한족의 남진에 의해 중국의 양쯔강 남부에서 인도차이나

반도로 이동하여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최근 타이 북동쪽 메콩강 연안에서 B.C 50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문화 유적이 발견되어 타이족연구가

이루어졌는데 타이족이 이미 오래전부터

태국지역에 살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있어

논쟁이 일고있다

13세기에 이지역에 여러 소왕국이 각지에 생겨났다

그중 랑나타이 왕국은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타이역사상 정통왕조는 수코타이 왕조(1257-1350)

꼽는다 수코타이 왕조의 제3대 람캄행왕(재위1277-1317)

은 영토를 넓히고 크메르 문자를 개량하여 타이문자 표기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수코타이 왕조에이어 아유타야 왕조(1350-1767)는 각종제도를

정비하여 강력한 중앙 집권제를 구축하였다

17세기에 아유타야는 무역항으로 번창하여 왕실의 독점무역

체제를 갖추고 서양여러 나라 및 중국 일본등과 교역하였다

16세기 후반 미안마군이 점령하였으나 나레수엔왕(재위1590-1606)

이 왕조를 부흥시켰다 그후1767년 에 다시 미안마군이 점령했으나

아유타야 왕조의 武將 프라야탁신이 미안마를 격파하고

톤부리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톤부리 왕조는 1대로 끝나고 그 부하인 차크리 장군이

방콕에서 왕조를 창시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태국왕조인 차크리왕조(방콕왕조)이다

19세기에들어서 유럽열강들의 압력이 드세져 1855년에

영국과 보링조약을 맺고 자유무역항과 치외법권을 승인하였다

출랄콩코르왕(라마5)은 사법 행정제도 개혁과 함께 근대화를

실행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을 이용하여 식민지화의 위기를

벗어났다 그뒤 왕족 전체의 부패에 불만이 높아지자 1932

624일 인민당이 무혈 쿠테타를 일으켜 성공 12월에 헌법을 공포

하고 입헌국주국 으로 발족하게 된다

타일랜드는 아시아 각국이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던 시기에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한 나라이다

1939년에는 국호를 시암에서 타이로 변경하였다

아유타야는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태국의

흥망성쇠를 느낄수 있는 곳이다

아유타야는 14세기 중엽부터 18세기 까지 의 야유타야 수도였다

33대의 왕들이 기거 했으며 서양인들과의 접촉이 처음으로

이루어 진곳이기도 하다

 

 

 

 

 

400여개의 사원과 55km의 포장도로 19개의 성곽을 가진 그당시

세계적인도시는 버마와의 전쟁으로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고

태국정부는 그모습그대로 역사공원으로 보존하고 있다

방콕에서 약64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태국 아유타야 왕국의

옛수도인 아유타야의 정식 명칭은 프라나콘시 아유타야 로

현재는 아유타야주의 수도이다

 

 

왕궁 앨범

 

 

태국 방콕의 오앙궁과 에메랄드사원은 반바지 짧은 치마.민소매등으로

입장을 하면 입장이 제지된다

왕궁과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의 내부사진은 엄격하게 제지당한다

 

 

 

 

 

 

 

 

 

 

 

 

 

 

 

 

야유타야 왕국 유적

아유타야 역사공원(Ayutthaya Historical Park)은 타이 아유타야의 옛 도시의 유적이다. 도시는

1350년에 우통왕에 의해 세워졌고 1767년에 버마군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아유타야왕국 의 수도였다.

1969년에 타이 미술부는 유적의 복원을 시작했고 1976년에 역사공원이 되었다. 공원은 1991년에 유네스코세계유산  으로 지정되었다.

 

 

 

 

 

 

 

왓 마이타의 불상

 

 

 

 

 

 

 

 

 

 

 

 

 

 

 

 

 

 

왓 마아탑

 

 

왓 프라람

 

 

 

 

 

 

 

 

 

태국 전통 춤

 

태국의 춤은 또는 라밤이라 부른다

즉 무용 또는 춤이라는 뜻이다 라밤은 뜻이 비슷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은 혼자서 추는 춤이거나 소수의 사람들이

추는 춤을 말한다 에 해당되는 춤에는 람추이차이

람씨루언등이 있다

라밤에 해당되는 춤은 라밤뎃반뎅” “람추이차이”“람시누언

등이 있다

또 태국의 춤은 다른 측면으로 두가지로 나뉜다

쓰엉또는이다 이두지 뜻은 비슷하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쓰엉으로 나눈 것이다

훤은 고대 란다즉 현재 태국 북부에 있는 8개도에서 추는

춤을 말한다 은 대개 부드럽고 느리다

예로 휀렙(손가락에 긴손톱은 붙이고 추는춤) 훤타얀”(촞불을 들고

추는춤)“원만무이씨앙따등이있다

흥겨운 훤도 더러있다 예로 훤답“”훤쯔엉등이다

쓰엉은 태국의 동북부에서 추는 춤을 말한다

리듬은 좀 빠르고 재미있다

쓰엉춤으로는 쓰엉끄라띱”“쓰웡 쓰윙”“쓰웡카우등이있다

태국민족은 흥이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춤과 노래는 일상이 되어있다

유치원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왕궁 경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