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자금성 북경(중국여행32부)

훼브스 2020. 7. 28. 15:36

 

 

 

2012년 11월8일 11월11일 까지

 

8일 아침 북경에 도착하였다

서울공항에서 관광안내원의 이야기는 올림픽 때문에 건설된 북경(베이징)공항은

김포국제 공항보다 크다고 말했다 도착하여 보니 과연!!!  우리나라 공항 에도 있지만

도착선과 출구까지 전철이 운행할 만큼 넓었다..

 

 

 

 

 

 

 

 

베이징공항 출구로 운행하는 전철

 

 

 

 

 

 

 

 

공항내부에 걸려있는 베이징 관광 포스터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는데

자금성 천안문 광장 은 중국공산당 제18차 전당대회가 있어 경비가

삼엄하다며 입장이 가 한가를 타진하고 있었다

 

드디어 삼엄한 경비망속으로 통과하여 자금성 앞으로 들어가게 된다

찬란하고 웅대한 자금성 앞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 보지 않을수

없다 모택동의 초상이 정중앙에 걸려있다

 

 

 

 

 

 

 

천안문 모택동 초상화 밑으로 의 앉는자리는 중국 큰 의식이 있을때

잘나가는 사람들(고위급당원들)이 앉는 자리라 가이드가 설명한다

 

 

청조 누르하치는 마부대와 용골대를 앞세워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의

수십만의 백성들을 잡아갔다 그자신 누르하치는 명과의 전투중 파편에

눈 부상을 입고 심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후 태종의 아들 순치제가 자금성에 입성하는데 조선의 많은 백성이 잡혀와

자금성등 노역에 동원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이 거대한 자금성이 아프게 느껴지게

되는것이다

 

 

 

영화 포스타

 

 

 

또 하나 영화 청조 마지막 황제 푸이와 자신의 영화를 위해 개혁을 주도했던 왕을

견제하여 청의멸망을 재촉 했던 서태후다

 

각나라의 마지막 왕조의 비참함은 대동소유하지만 영화속의 푸이는 좀더 우울하다

1908년 3살때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황제에 등극한뒤 시대의 격량으로 빠져 영국인 가정교사

에게 세계의 흐름을 배우고  결혼하고 첩을둔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청조 황제들의 공식부인만

60명이 넘었다 하여 모두 단명 하였지만 건륭황제는 90가까이 살았다함은  황제의 건강을

돌보는 건물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군사 구테타로 자금성에 감금되자 일본군과 접촉하여 만주국 괴뢰 꼭두각시 황제가 된다

아내의 배신 일본의 지시 그제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게 되지만

중일 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겪고 소련의 포로가 되어 중국인 전범수용소에 갇힌 푸이는

석방후 쓸쓸한 정원사 노인으로 살아간다.

 

영화속에서 평민이 된 푸이가 자금성에 들어가 옥좌 있는쪽으로 가려 하자 어린아이가

거긴 들어가면 않된다고 제지하자 "애야 나는 저기 앉았던 황제 였단다"

하는 장면에서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러시아  격동기의 왕가. 터키의 마지막 황태자.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자.

이들이 주는 메세지 영원한 권력은 없다 라는 것이다    

 

자금성을 돌아보는데 전각들의 이름이 경복궁의 이름과 같은것이 많아서 예로

교태전 건천궁 같은 것에 자금성과 경복궁의 생성에 의문을 던질때 춘성의

처 효숙님이 조선 건국후 1395년에 경복궁을 이성계가 만들었다 하고

자금성 생성은 안내책자에 1407년부터 라 하니 경복궁을 모방한 것은 자금성이

아닐까?? 하여 웃게 만들었다.

 

중국 봉건왕조의 마지막 왕궁인 자금성은 59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유네스코에

등제되어 있어 목조건물로는 세계 최대규모의 가장 완전한 형태의 중국박물관 이기도 하다.

 

자금성은 기둥과 기둥사이를 나타내는 궁실만 모두 9,000여 칸을 넘고 면적은 72만 ㎡

에 이르고 애초 설계한 계획도에 반 밖엔 못 지었다 한다

 

왕궁주위 의 높이가 3m인 장벽으로 둘러처져 있고 왕궁 장벽 밖에는 넓이 52m의 성을

보호하는 혜자 하천(호성하) 이 흐르고 있어 성채가 완벽한 경계를 이룬 요새이다.

 

황제가 여러 가지 의식을 거행하던 태화전은 속칭 금란전(金鑾殿) 이라고 부르며

왕궁에서 중심을 이루는 건축물이다 자금성에서 최대의 궁전으로 동서길이 11간

(63.96m) 남북길이 5간(37.3m) 높이 27.92m 이며 한백옥석 기초까지 합치면

그높이는 35.03m에 달한다

 

태화전 앞에는 풀한포기 볼수가 없고 바닥은 수십길이 벽돌로 채워져 있는것은

터널을 뚫고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함이라 한다.

 

중국의 수도 북경의 내성(內城 우리나라 남대문 동대문을 잇는성과 같음)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자금성은 1407년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가 南京에서 北京으로 천도할 때 시작하여

1420년에 완성 하였다 한다

 

천명을 받아 천하를 통치한다는 명분에 의해 영락제는 지상의 세계의 중심으로 “천제의도시”를 세울것을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는데 자금성의 첫 글자 자(紫)란 자미(紫薇)에서 나온말로 천자를 상징하는 별자리의 하나이고 금성(禁城) 이란 왕성을 뜻하므로 자금성은 곧 “천자의 궁성”이란 뜻이된다.

 

우리일행은 태화문을 거처 태화전.중화전.보화전.건천문.건천궁.교태전(황비와 합방하는궁전) .곤령궁(황제의 신혼침실) .어화원. 흠안전. 신무문. 으로 약 2시간30분 동안 걸었다

 

 

 

 

 

 

자금성의 북문 신무문을 나서

혜자를 건너면 바로 맞은편에 황실의 공원인 경산공원(景山公園)이 마주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천안문 이 있는 남쪽은 좋은 기운이 들어오고  신무문 쪽으로는

나쁜기운(모래바람등)이 몰려오고 있어 혜자를 만들때 파낸 흙으로

해발 108m 의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이드로부터 질문을 받고 정답이 가깝게 나오면 칭찬으로 격려를 받고 즐기며 가는데

도봉산 망월사로 오르는 길에 청조들의 연호가 음각되어 있어

 

 

 

 

嘉慶 이라는 연호를  본 생각이 나서

약소국의 시련과 아픔을 다시한번 느껴지며 조선 최대의 간신 김자점이 반역

임경업 장군을 죽음으로 내몰던 역사가 생각나서 지금도 힘이 있어야 정의가 있다

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모택동의 어록중 "권력은 총뿌리에서 나온다는 말과 함께

 

 

 

 

 

 

 

 

평보 부부

 

 

 

치과 안박사 부부  유명대 교수를 역임했다

 

 

 

춘성부부 대학 에서 학생과장을 했었다

 

 

 

 

하하 오혜열부부 한국 최고의 웃음 치료사 이며 병원 부원장 행복 웃음연구소 소장으로

그는 웃음에 철학과 과학적 인 고증을 접목하여 웃음 희망 행복나눔 등 수권의 책을

발간하고 의정부 그의 간호학원 행복연구소에서 매주 월요일 서민들을 위한 무료

강의를 실시 하고 보람을 찾고 있다 

 

 

 

 

 

 

 

 

 

 

 

 

 

 

 

 

 

 

 

 

 

 

 

 

 

 

 

 

 

 

 

 

 

 

 

 

 

 

 

 

 

 

태화문 광장 태화문은 3대전 (태화전.중화전.보화전.의 정문으로 넓직한 앞뜰에는

금수하가 흘러 지나가고 그위에 5개의 한백옥석 다리가 가로 놓여 있다

 

 

 

 

태화전의 외부

 

 

 

 

태화전의 금칠 용조각 보좌

 

 

태화전 내부 반용금칠 기둥사이에 7개의 계단이 있으며 그위에 용을 조각한 보좌가 있다

보좌위는 금칠 반용천장이다 .명.청 두 시대에 24명의 황제가 천자의 자리에 올랐었다

 

 

궁중해시계

 

 

 

구리로 만든 신학 의식을 거행할때 항로 역활을 한다  

 

 

 

 

 

 

 

 

 

 

 

 

 

 


嘉量 :고대의 계량 표준기

 

 

 

구리로 만든 거북 의식을 거행할때 항로 역활을 한다  

 

 

 

 

 

 

 

 

궁궐앞에 있는 이 구리로 만든 항아리의 역활에 대하여 가이드는 질문한다

용도가 무었이겠느냐? 맞히는 분은 대단한분이다.

답은 궁궐의 화재를 대비한 물저장 탱크다 밑에는 아궁이가 있어 얼지말라고 불을 땐다

상체기가 난것은 금칠한것을 열강들이 침입하였을때 금을 글거가서 난 상처란다

 

 

 

 

 

 

 

경복궁의 잡상을 보는듯 하여 반가워 가이드에게 질문한다

경복궁의 잡상은 서유기 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그일행 들인데

여기도 그러하냐? 답은 여기에 있는 잡상은 춘추전국 시대때 제나라 용맹한

장수들 이 모델이라 한다

 

 

 

경복궁의 단청과 달리 금칠이 은은 하다

 

 

 

 

 

 

 

중화전 태화전에서 의식을 거행 전에 황제가 휴식을 하고 의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중화전 내부

 

 

 

 

 

 

 

 

 

 

 

 

 

 

 

 

 

 

도처에 황제를 상징하는 용무뉘 기둥이 서있다

 

 

 

 

 

 

건천궁:내정의 첫 궁전으로서 명.청.시기 황제의 침실이며 또한 일상 정무를 처리하던 전당이다

 

 

 

운룡계석:대석조.보화전뒤 어로에 깔려있는 자금성궁내 최대의 석조로 아주 정밀하다

석조는 길이 16.75m 폭이 3.07m

두께 1.7m.무게가 200t이다.9마리의 반룡과 구름이 새겨져 있다

 

 

 

 

 

 

 

 

 

內庭은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고 황후나 궁녀들과 일상생활을 하던곳으로

건천궁.교태전.곤녕궁과 동서륙궁으로 나뉘는데 “후궁”이라고도 한다

건축이 정교하고 여러 전각과 어화원 등이 이구역에 집중되어있다

우리나라 경복궁 교태전 향원정 뒤로 건천궁이 있다

여기서 궁전을 지키는 사자상의 암수를 구별하라는 가이드의

질문으로 왼쪽 아기를 데리고 있는 사자를 암컷이라 하니

가이드의 칭찬이 과했다

 

 

 

 

 

보화전:명나라시기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황제가 예복을 바꿔입던 장소이다

청나라시기부터 매년섯달 그믐날의 연회가 열리던 곳이며 건륭54년(1789)년부터는

과거시험장으로 전시를 행하던 장소이다  

 

 

 

 

 

 

궁중 진열품

 

 

 

 

 

 

건천궁내부 ; "정대광명"액자  옹정제 부터 황태자의 이름을 써서

정대광명 액자뒤에 숨겨두고 내무부에 밀지를 두었다가 황제가

죽은후에 개봉하여 밀지와 실물을 맞추는 태자밀건법을 실시하였다

 

 

 

 

 

강산 사직정; 건천궁 양쪽에 있으며 한백옥 기반위에 설치된 금은 도금한 소형 궁전이다

외쪽에 사직이 배치되어있고 오른쪽이 江山이 배치되어 있는데 정권을 상징한다

 

 

 

 

 

 

 

 

 

 

 

 

 

 

 

 

 

 

 

어화원 중에 연이백; 두그루의 측백나무 고목이 엉키고 웃부분은 상대적으로

기울게 생장하여 가지들이 서로 엉키고 있고 아래부분은 베이징의 중추선에

가로 놓여져 있다

 

 

 

 

 

 

 

 

어화원 퇴수산은 면적은 작지만 배열구조가 정교롭고 기이하다

퇴수산은 괴상한 모양의 돌로 쌓은 가짜산인데 위에는 어경정

세우고 매번 칠석이나 중앙 중추절이 되면 제후 비빈들이

높은 곳에서 고향쪽을 그리며 풍경을 보았다고 한다.

 

 

 

 

 

어화원의 구리로만든 코끼리상

 

 

 

 

 

 

 

만춘정 :어화원에는 만춘정과 천추정이 있다 만춘정은 위가 둥굴고

아래가 네모난데 형태가 우아하다

 

 

 

 

 

 

 

 

 

 

 

 

 

 

 

 

 

 

 

 

 

 

 

 

 

만춘정의 내부 천장 모습

 

 

 

 

 

 

천일문 :천일문은 도교를 신봉하는 신상의 흠안전의 정문인데 어화원의 정중앙에 있다.

 

 

 

흠안전 ; 자금성내에는 불.도.및 만한의 여러가지 우상숭배가 공존 하고있는데

흠안전은 전문적으로 도교신상밑 도장을 모시는곳이다

 

 

 

구룡벽 ;황극문앞에 위치하여 있으며 높이는 3.5미터 인데 270개의 유리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자금성의 성벽은 높이가 7.9m 이고 둘레의 길이가 3428m 이며 15접의

벽돌을 사용하였는데 모두 찹쌀에 흙을 반죽하여 다저넣어 매우견고하다

성벽의 네모퉁이에 있는 각루는 적을 감시 하는 작용을 할뿐 아니라

실제가 정밀하고 아름다워 장식장용도 하고있다

사방을 볼수 있는 3층의 형태 건물로 9개의 대들보 18개의 기둥

72개의 용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궁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호성하는 통자하라고도 불리며 폭이52m 깊이가 6m로 자금성 성벽을

에워싸고 있다

 

 

 

 

 

 

경산공원(景山公園)에서 내려다 보는 황궁 전경 자금성의 건축배경에는

당시 영락제를 보좌했던 한스님의 꿈에서 비롯되었다한다.

어느날밤 스님은 꿈에서 천제가 살고있는 “천상의도시”를 꿈꾸고나서

그와 똑같은 “천재의도시”를 만들것을 황제에게 진언했다.

천하를 통치한다는 명분하에 영락제는 지상세계에 천상의 도시를 건축할것을 명한다

이 성의 당초 계획의 6활정도 밖엔 건설하지 못했다 하니 당초의

거대한 영락제의 포부는 알것같다

부친인 태조 홍무제(주원장) 과 조카 (건문제)에 이어 황제에 오른

영락제는 북방으로 패주한 원나라의 잔존세력이 계속 위협을 해오자

군사적인 판단으로 자금성을 짖고 천도한 것이다

 

 

 

 

 

자금성을 보호했던 내성 성곽문 만리장성은 외성이고

내성이 또 있었다  우리의 남대문과 사대문 동대문 북문 을 잇는 내성과 같은 이치이고

우리는 외성이 북한산성 쯤 이라 생각하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