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30일
평보
요즘 능소화가 아름답지요 능소화 꽃말은 명예와 영광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옛날 양반집에 많이 심었던 능소화는 장원급제를 한 사람의 화관에 꽂아주는 어사화 라 불려졌다 하는데요 능소화 詩 하나 올려보겠습니다
능소화 / 권혁진
초여름 곱고 고운 黃桃(황도)빛
화사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담장 위에 피어난 그대
구중궁궐의 소화라는 궁녀
그대가 빈이 됨으로
주변의 시샘이 있어
외진 궁궐로 밀려나니
기다림에 지친 궁녀는
마침내 상사병에 걸려
어느 여름날 숨을 거두고
담장에 초라하게 묻히니
그리운 님을 찾는 넋이
예쁜 꽃으로 피어났네!
임금님을 사모하는 그리움에
담장 밖을 멀리 보려고
목을 길게 빼고 올라와
매혹의 자태 뽐내고 있구나.
능소화는 시든꽃을 볼수 없지요 수명이 다된 꽃은 뚝 떨어져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춘곡
어사화가 능소화라는 이야기는 가짜뉴스 냄새가 풍겨오는데 ㅎㅎ
평보
그게 옛날 문 무 급제하면 홍패와 어사화를 하사했다 해서 그 어사화가 바로 능소화로 구전 되어온 꽃이라 해서
춘곡
뻥인 것이 어사화는 종이로 만든 조화이거든 ㅎ
평보
조화라 하더라도 그형상이 능소화를 형상화 했다면 그 의미가 맞다고 보아야
춘곡
그럴 수도 있겠지
좌우간 과거가 꼭 여름철에 만 있었던간 아니라는데에서 내 의심은 출발 한거구 ㅎㅎ
평보
ㅋ ㅎ 선비가 ㅋ??? 과거가 겨울에 했건 여름에 했건 급제하면 사모에 능소화 양쪽에 꼿고 관대하고 이벤트를 벌렸다면 그런지 알것이지 왼 성경을 과학적고찰로 따지는 식으로 하시나??
춘곡
겨울에 능소화를 어떻게 ㅎㅎ
평보
그러니 조화지 옛날 혼례식때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신랑신부가 주고 받았는데 그걸 기러기라 하지 기러기 아니라 하는가? 역시 선비는 융통성이 없다니까
춘곡
ㅎㅎ 평보가 능소화라면 그런줄 알야지 실은 어사화가 능소화 라는 것은 역사 기록엔 없거든요
≪용재총화 慵齋叢話≫에 따르면, 참대오리 2개를 종이로 감고 비틀어 꼬아서 군데군데에 다홍색·보라색·노란색의 꽃종이를 꿰었다고 한다. 유물에서 볼 때 어사화는 2개의 대오리 밑부분을 종이로 함께 싸서 묶고, 위로는 대오리가 각각 벌어지도록 하였다.
이런 대오리를 2조(組)로 하여 맨 아래에는 꽃받침으로 간주되는 커다란 종이를 꽂고 위에는 청·황·홍색의 종이꽃을 여러 개 붙였다. 급제한 사람은 이러한 어사화의 한쪽 끝을 복두 뒤에 꽂고, 다른 한끝은 명주실로 잡아매어 머리 위로 휘어넘겨서 입에 물고 3일유가를 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어사화 [御賜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것 외에 어디를 찾아도 어사화가 능소화라는 기록은 후대 제 멋대로 적은 가짜 뉴스일 확율이 높다는 말씀.. 여기 저기 알아봤는데 어사화 조화가 능소화를 형상화 했다는 옛 기록은 못 찾았구먼..
평보
많은 포스팅 보면 능소화가 어사화로 쓰였다는 것이 정설로 쓴 사람들이 많거든
춘곡
아무 근거도 없이 인터넷 떠도는.. bullshit
이런글 어디에도 어느 기록에 나온다는 것이 없더라구 그냥 함부로 떠드는 인터넷헛소리 바로 그 것 한동안 그럴듯 하게 퍼졌던 능소화 꽃가루 실명 위험이란것도 완전 거짓이라고...찾아본 많은 참고문헌에도 능소화는 없다는 이야기...어사화는 어느 특정한 꽃을 형상화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종이꽃
평보
원래 관습이라는게 있고 역사도 정사와 야사가 있어요 쭉내려오는 설을 밝혀낸 대표적 독일사람 있는데 호메로스의 트로이 전쟁을 믿고 지금의 터키 아니톨리아 치낙칼레 유적지를 무지하게 파내려가 유물을 찾아내 독일로 반출 한겁니다 독일에있던 그 보물은 2차 대전중 구소련이 독일점령중 소련으로 옮겨 현재는 러시아 박물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구전으로 전해져 왔어도 능소화가 어사화 라는 확률이 높은 것 입니다
춘곡
참고 문헌에 있는 '용재총화'는 당시 풍속, 설화 까지 기록한 것으로 어사화가 능소화 라면 그 책에 당연히 기록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난 믿는다고 ㅎㅎㅎ
능소화 이야기 백날 해도 결론은 안날터..
월말이라 이런 저런 사정에 쫓기다 보니 한다는 공상이 로또나 한번 맞았으면.. 하는
공상을 하다 평보의 트로이 유적이야기에 불현듯 생각난 이야기 이건 로또 중에서도 로또이야기
venture 라는 말 아시지요 벤처기업 등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 venture 원래는 무엇을 말했던 것일까 하는 걸 대강 풀어 보려고..십자군 전쟁 때 많은 영주들이 그들의 기사(knight)를 데리고 참전합니다 자기 영지엔 부인만 남겨두고, 그런데 영주가 전사 하면 기사들만 돌아 오지요 돌아온 기사중 가장 멋지고 수단 좋은 기사가 영주의 부인을 차지 하는 것을 venture 라고.. 그 기사는 새로운 영주가 되었으니 마치 주몽이 소서노를 꼬셔 고구려왕이 된것 같은.. 이건 정말 로또 중 로또.. 하는 공상이 갑자기 들었으니..내가 벌건 대낮에 이런 공상에 빠진건 순전히 평보 트로이 역사 이야기 때문 이라는 ㅎㅎㅎ
평보
이글 포스팅 목적은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로 여기고 인용하는 능소화가 임금이 하사하는 어사화다 로 확신하는 사람들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한 글이며 앞으로 능소화가 어사화로 쓰였다 하는 글을 올리려면 그에대한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하여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평보 같이 오류를 범하게 되지 않을것이다 하여 아래글을 적습니다
논쟁을 할때 역사적 고증 史料를 먼저 본다음 완벽한 입증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저 막연히 그랬을 것이다
추측 으로 무식이 유식을 능멸 하는 지경에 이르니 매양 웃음 꺼리가 돼 톡방친우들께 면목이 없어지는 결과라
꽃에대한 궁중 古證 을 찾아본게 홍선표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의 궁중채화의 종류와 역사를 접하메 궁중행사에 표현한 꽃의 이메지 형상화는 모란 과 복숭화꽃(桃花) 뿐
따라서 춘곡이 언급한 용재총화(慵齋叢話)도 위키 백과에서 그 개요만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 음악을 전공한 분들이 대화중 친묵 하게된 동기는 능히 알고있는 지식을 외곡하게 우겨대는 평보가 한심 했을 터이고 평소 정치적 유언비를 팩트 채크 없이 퍼나르는 사람들을 경멸 하여 왔던 한사람 으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글을 포스팅 하다보면 정말 대단한 오류들을 발견 할수 있었는데 가령 모란이피기 까지는 시가 모윤숙 작품 이라던지 백진스키가 그린 그림이 폼페이 화석이라 소개한 황당한 주장 들 에 놀라움 을 금 할수 없었는데 나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게 인터넷 떠도는 잘못된 정의를 그대로 인용 사실인양 춘곡과 시비를 하였으니 허망 하여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용재총화는(위키백과)
조선전기 학자 성현이 고려로부터 조선 성종대에 이르기까지의 민간 풍속·문물 제도·문화·역사·지리 등 문화 전반을 다룬 잡록.으로 내용은 고려로부터 조선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형성, 변화된 민간 풍속이나 문물 제도·문화·역사·지리·학문·종교·문학·음악·서화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다루고 있어, 당시의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각 권은 편차(編差) 없이 서술되어 있으며, 권별의 구분도 내용과는 무관하다.
전후 문 생략 대충 능소화가 과연 어사화에 사용 되었나 에 대한 의문으로 이책 내용을 설명한 부분을 발췌 하여 보면
지리적으로는 각 도읍의 형세와 백운동(白雲洞)·청학동(靑鶴洞) 등 한양 명승지와 그 밖에 성밖의 명승지를 언급하고 있다. 풍속에 있어서는 잔치 음식의 가짓수와 맛의 특징 등을, 그 밖에 혼례 풍습·나례(儺禮)·처용무(處容舞)·관화(觀火) 등의 절차를 설명하고 있어 귀중한 민속학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중국 사신의 접대에 따르는 의식 절차, 사신들에 대한 인물평, 과거제도에 대한 것과 성균관의 제도, 제사 풍습, 불교와 승려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야기의 대상으로 삼은 인물 설정에 있어서는 왕세가(王世家)와 양반 관료는 물론이고, 유학자·서화가·음악인·문인 또는 당시 사회에서 천대받던 과부나 중·복서(卜筮)·기생, 심지어 탕녀(蕩女)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되 춘곡의 권언은 지극히 당연 하며 평보의 주장은 절대로 잘못 되었다 생각 합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능소화는 중국이 원산인 덩굴나무로 다른 물체에 붙어 올라가 10m까지도 자란다. 추위에 약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지방에서 주로 심어 기르고 있다. 학명은 Campsis grandiflora (Thunb.) K.Schum.이다.
능소화(凌霄花)는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란 뜻이다. 오래 전에 중국에서 들여온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양반들이 이 나무를 아주 좋아해서 ‘양반꽃’이라고도 했으며, 평민들은 이 나무를 함부로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사찰 담장이나 가정집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관상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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