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 /권옥희
언제나 축축이 젖은
여름 숲은
싱싱한 자궁이다
오늘도 그 숲에
새 한 마리 놀다 간다
오르가슴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
여름시모음 사진 :이재삼 그림 :평보
소나기 명언/황순원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이번은 소년이 뒤따라 달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소녀보다 더 많은 꽃을 꺽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쁠줄은 몰랐네
난 보라빛이 좋아,
근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꽃은 머지?
마타리꽃돌다리 건너에서 소녀를 보며 건너오지 못하는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지며...." 바보~!! "
"넌 왜그렇게 용기가 없니? 좋아한다고 말하라는거아니잖어 그냥 인사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왜 말도 못하고..
일부러 길 막고 있는것도
알면서 바보 처럼 그렇게 보고만 있을꺼니?"왜 비소리가 이렇듯 좋을까?? 그건 비가주는감수성에서 사춘기를 보낸 영향이 아닐까요장례인들의 말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영원한 이별은 사실화 됩니다그런데 참 이번계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어느 가을날 한 줄기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 소년과 소녀의
안타깝고도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53년
영국에서 번역되어 신문에 연재된
적도 있는데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꽤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굴 비 /오탁번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초여름 /허형만 물냄새
비가 오려나 보다 나뭇잎 쏠리는
그림자 바람결
따라 흔들리고 애기똥풀에 코를 박은
모시나비 지상은
지금 그리움으로 자욱하다
여름 /나기철·감나무 잎이 창을 덮어
건너 아파트 삼층 여자의 창이
안 보인다
감나무는 내 눈을
우리 집 안방으로 돌린다
여름 일기/이해인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매일을 가꾸며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디어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혹서일기/박재삼 잎 하나 까딱 않는
30 몇 도의 날씨 속
그늘에 앉았어도
소나기가 그리운데
막혔던 소식을 뚫듯
매미 울음 한창이다. 계곡에 발 담그고
한가로운 부채질로
성화같은 더위에
달래는 것이 전부다.
예닐곱 적 아이처럼
물장구를 못 치네. 늙기엔 아직도 멀어
청춘이 만리인데
이제 갈 길은
막상 얼마 안 남고
그 바쁜 조바심 속에
절벽만을 두드린다.
여름밤 /문인수· 저인망의 어둠이 온다더 많이 군데군데 별 돋으면서
가뭄 타는 들녘 콩싹 터져오르는 소리 난다가마솥 가득 푹 삶긴 더위
솥검정 같은 이 더위를 반짝반짝 먹고 있다보리밥에 짱아찌 씹듯
저 별들이 먹고 있다
그늘 만들기/홍수희 8월의 땡볕
아래에 서면
내가 가진 그늘이
너무 작았네손바닥 하나로
하늘 가리고
애써 이글대는
태양을 보면
홀로 선 내 그림자
너무 작았네벗이여,
이리 오세요
홀로 선 채
이 세상 슬픔이
지워지나요나뭇잎과 나뭇잎이
손잡고 한여름
감미로운 그늘을
만들어 가듯
우리도 손깍지를
끼워봅시다네 근심이
나의 근심이 되고
네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때벗이여,
우리도 서로의
그늘 아래 쉬어 갑시다
美/박용하 삶이
한 번뿐이듯죽음도
한 번뿐이다단 한 번 태어난
죽음 -
기릴 일이다연못에서는
잉어가
수면을 깨며
날개를 젓는다여름이 가고 있다
그 여름의 끝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여름 능소화 /정끝별 꽃의 눈이 감기는 것과
꽃의 손이 덩굴지는 것과
꽃의 입이 다급히 열리는 것과
꽃의 허리가 한껏 휘어지는 것이벼랑이 벼랑 끝에 발을 묻듯
허공이 허공의 가슴에 달라붙듯
벼랑에서 벼랑을
허공에서 허공을 돌파하며홍수가 휩쓸고 간 뒤에도
붉은 목젖을 돋우며
더운 살꽃을 피워내며오뉴월 불 든 사랑을
저리 천연스레 완성하고 있다니!꽃의 살갗이 바람 드는 것과
꽃의 마음이 붉게 멍드는 것과
꽃의 목울대에 비린내가 차오르는 것과
꽃의 온몸이 저리 환히 당겨지는 것까지
여름 낙조 /송수권 왜 채석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
나는 지금 만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글을 읽는다
만 권의 책, 파도가 와서 핥고 핥는 절벽의 단애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나의 전 재산을 다 털어도 사지 못할 만 권의 책
오늘은 내가 쓴 초라한 저서 몇 권을 불지르고
이 한바다에 재를 날린다
켜켜이 쌓은 책 속에 무일푼 좀벌레처럼
세들어 산다
왜 채석강변에 사느냐 묻지 말아라
고통에 찬 나의 신음 하늘에 닿았다 한들
끼룩끼룩 울며 서해를 날으는 저 변산 갈매기만큼이야 하겠느냐
물 썬 다음 저 뻘밭에 피는 물잎새들만큼이야
자욱하겠느냐
그대여, 서해에 와서 지는 낙조를 보고 울기 전에
왜 나 채석강변에 사는지 묻지 말아라
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이채 겨울은 덥지 않아서 좋고
여름은 춥지 않아서 좋다는
넉넉한 당신의 마음은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더위를 이기는 열매처럼
추위를 이기는 꽃씨처럼
꿋꿋한 당신의 모습은
곧고 정직한 소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그늘이 편해서
나는 지친 날개 펴고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
가슴이 작은 한 마리 여름새랍니다 종일 당신의 나뭇가지에 앉아
기쁨의 목소리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당신은 어느 하늘의 천사인가요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열매가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있을 때
이 계절의 무더위도 신의 축복이라며
감사히 견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름바다 / 김덕성
팔월 초순
불가마 속 같은 찜통더위에 밀려
달려와 가슴을 헤치니
글쎄 느닷없이
하이얀 거품을 물고
사자처럼 달려와
반갑게 포옹하며 물세례를 주는 파도
숨을 돌리려하면
다시 밀려와 반복하는 바다
이제 몸 열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여름바다가
이렇게 좋은 걸...
여름밤 /이준관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나신(裸身)/ 博川 최정순
벌거숭이로 천지간 와속세 얻은 물건
별로 없어벗을 것 별로 없지만마음 비우려
벗고 또 벗어알몸뚱이 뿐인데맹열한 삼복더위가
더 벗어라 하여살에 붙어 끈적거리는
허물모두 벗고 벗으니푸른 대나무 마음만 남네.
개똥벌래/ 평보
구봉사 작은 폭포옆에 달은 밝다 못해 눈이 부시다
반디 불이다!
저 기 저기 좀 봐빛을 발산하며 곡선으로 추상화를 놓는다
암울한 세상을 희망으로 하 잔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점 장이 하잔 대로하였으면
세상을 밝게나 하거라 어둠과 빛을 가르면
불쌍한 것 너 아니고 민초들이라.
옛 사람 풍류로 시조 하던 침류대(枕流臺)
반디 불이 춤을 춘다 세월 좋다
노래하고 춤을 춘다가지 마라
가지 마라 세상은 깜깜한데 스스로 빛을 낸들
등불이 되겠느냐가지 마라 가지 마라희망을 주고 가거라 .........
억압/ 평보
꿀벌 한마리호박꽃 진한 꿀 빨고 있었지
장난스레 꽃잎 오무려 가두어 버렸어
녀석은 호박꽃에 감금당했지 약 하다고 깔보는 것이냐
조그만 녀석은 날 벼르고 있었지
곧 석방 시키려준비 중 이었는데
호랑나비.흑나비가 나리꽃에 앉아 날좀 보라고 유혹한거야
황홀해서 시선 돌리니녀석은
어느새 탈출하여 내 콧등에 침 꼿았어.
나는 할일 없는 장난 이였지억압된 녀석은 죽을 맛이 었을테고
죽음으로 압제자를 징벌 한것이라
네내 콧등 아품으로 녀석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더군
자유의 속박은 언제나 큰 저항이 있고나!허리
구부리고 날개 떠는 녀석 보며나는
연민 하지만녀석은 나를 노려보며 경멸 하더군!!!!!!!!
'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에대한시모음(사성암의소떼 반야심경) (0) | 2020.08.12 |
---|---|
새에대한시모음(평보가찍은벌새) (0) | 2020.08.09 |
지평선넘어서 나는너를(시모음7부) (0) | 2020.07.30 |
능소화에관한 Only You(시모음6부) (0) | 2020.07.30 |
나무에대한 시모음 산 정기옥(시모음5부) (0) | 2020.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