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음

가을고궁(정조대왕시모음)

훼브스 2020. 12. 10. 16:38

 

 

2019 112

 

웃음꽃 행복길 걷기 동호회에서

창경궁 단풍길 걷기에 참여 합니다

창경궁 창덕궁으로 해서 1919

31일 독립선언 선포한 파고다

공원까지 일만오천보 걸으며

역사 음악 철학 에술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춘곡의 높은 知的 능력

藝術 부분 음악과 미술의

많은 교양을 가진 가인. 오울과의

대화는 시간 가는줄 몰랐습니다 

 

정조가 등극후 첫 일성이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였습니다

 

사도세자의 한이 서린 회화나무

는 한없이 비틀려 있었습니다

회화나무 앞 선인문은 궁에서

죽은자 들이 실려 나가는 통로였습니다

 

 

춘당지엔 어느새 겨울철새

원앙이놀고

희빈장씨의 처소 였던 통명전

앞뜰에선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통명전 경춘전 양화당 등

창경궁 내전엔 크고 작은 애환이

서려있습니다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

하였고 학식이깊어 존경을 받았던

인수대비 는 폐비윤씨의 죽음을 알게된

연산군으로부터 폭력을 당해 경춘전에서

죽음을 그리고 정조의 생모 혜경궁홍씨도

경춘전에서 생활 하였으며

이괄의 난때 전소되었던 전각들 그럴 때 마다

다시 세워졌고

청의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 는 청에서 여러

학술을 배워 왔으나 독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낙선제 앞뜰엔 감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거기서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손 영친왕과

이방자의 조선왕조 한을 이야기 할때

엘랑비탈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합니다 이땅에 평화가"

 

대학로에서 생선초밥 점심

저녁엔 종로구 원서동 만두전골 로

식사를 마친 다음 파고다 공원옆

품위 있는 카페에서 차를 나누며

아름다운 가을을

 

"차이코프스키의 현을위한 세레나데"

에 뛰워 보냈습니다

 

 

 

창경궁은 남향인 타 궁궐과 달리 동향으로 지어졌습니다.

1750년(영조 26년)에 영조는 균역법을 실시하기 전

 홍화문 백성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었고,

1795년(정조 19년)에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이곳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직접 쌀을

나눠주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의 궁궐은 나라를 다스리는 법전까지

문이 세 개이지만 창경궁은 궁궐이 들어선

자리가 좁은 지형이기 때문에 홍화문에서

법전까지 문이 두 개 밖에 없습니다.

 

 

 

정조대왕 언문글씨

 

정조대왕의친필

 

정조대왕은 과연 독살되었는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 고전번역원 번역대학원이

지난 2009년 2월 9일 정조가 자신과 대립각을

세운 인물로 알려진 심환지(沈煥之·1730~1802)에게

보낸 비밀편지 299통을 공개했다.

 

어찰은 당시 정조의 반대세력의 중심에 있던

우의정 심환지에게 보낸 것인데,

심환지는 노론 강경파인 벽파(僻派)의

영수로서 정조를 독살한 배후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가 즉위하자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그 때 심환지는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심환지와 수많은 비밀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정조가 독살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비밀편지에서 정조는 자신의 병세를 여러 차례 전했으며,

사망하기 13일 전인 1800년 6월 15일에는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항상 얼음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온돌의

장판에 등을 붙인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이 모두 고생스럽다.

여름 들어서는 더욱 심해져 열을 내리는

‘황련(黃連)’이라는 한약재를 몇 근이나

먹었는지 모른다”고 호소했던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처럼 자신의 병세를 자세하게

 얘기할 정도로 가까웠던 사이인

심환지가 독살을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죠.

비밀 편지를 보냈던 정조는 읽고 나서 즉시 태우든가,

 먹물을 씻어내서라도 없애버리라는

 명을 내렸지만 심환지가 따르지 않았기에

전해졌던 것이죠.

그렇지만 정조가 병사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기에, 공개된 편지가

독살설을 완전히 뒤엎을 증거라고

보기도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정조는 반대세력의 숱한 정치적 음모와

저항을 정면 돌파했던 탁월한 정치전략가이기도

 했으니 이처럼 ‘편지 정치’도 했던 겁니다.


[출처]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영춘헌(迎春軒)

 

영춘헌은 집복헌 동쪽에 있는 작은 전각입니다.

정조가 임금이 되어 창경궁에 있을 때

살던 곳입니다.

정조는 궁핍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생각하며,

영춘헌 내부에는 사치스럽게 꾸미지 않고,

비가 새어도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정조는 재위 24년 6월 28일, 무더운 여름날

종기로 인한 병이 깊어 이곳에서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영춘헌과 집복헌

 

집복헌에서는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가

영조11년(1735)에 사도세자를 낳았고,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는 이곳에서

순조를 낳았습니다.

사도세자의 출생은 영조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맏아들 효장세자는 이른 나이에 병으로 죽었고,

7년을 기다려 나이 마흔에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이지요.

 

 

 

 

 

정조대왕 시 1796년 2월 화성장대에 올라 쓴 시

 

拱護斯爲重 (공호사이중)

經營不費勞 (경영불비노)

城從平地迥 (성종평지형)

臺倚遠天高 (대의원천호)

萬垛䂓模壯 (만타규모장)

三軍意氣豪 (삼군의기호)

大風歌一奏 (대풍가일주)

紅日在鱗袍 (홍일재인포)

 

나라를 지켜 보호함이 중한 것이라

경영엔 노력을 허비하지 않는다오

성은 평지로부터 아득히 멀고

대는 먼 하늘 의지해 높기도 하여라

오만 방패들은 규모가 장대하고

삼군은 의기가 대단히 호쾌하도다

대풍가 한 곡조를 연주하고 나니

붉은 아침 햇살이 인포에 비추이누나

 

 

 

 

1797년 1월 방화수류정에서 쓴 시

歷遍春城日未斜 (역편춘성일미사)
小亭雲物轉晴佳 (소정운물전청가)
鑾旂慣報參連妙 (난기관보삼연묘)
萬柳陰中簇似花 (만류음중착사화)

 

춘성을 두루 보고도 해가 아직 한창이라

소정의 풍경은 한결 더 맑고 아름다운데

난기가 계속 삼련의 적중함을 보고하니

수많은 버들 그늘 속에 살촉이 꽃 같구려

 

 

좌의정 채제공의 시 ‘장안문루(長安門樓)’의

시운에 화답한 것

​霜露桑鄕歲幾飜 (상로상향세기번)
寸心無處答隆恩 (촌심무처답융은)
經營屹屹雉墉壯 (경영흘흘치용장)
拱護重重象設尊 (공호중중상설존)
萬戶橫臨湖右路 (만호횡임호우로)
三軍氣湧鎭南門 (삼군기용진남문)
人和此地予何力 (인화차지여하력)
盛德猶傳昔幸溫 (성덕유전석행온)

 

고향에 서리 이슬은 몇 해나 내리었던고

한 치 마음이 높은 은혜 보답할 곳이 없네

경영한 건 우뚝해라 성 담장이 장엄하고

겹겹으로 옹위해라 천연의 절벽 높다랗네

일만의 민호는 호우의 길에 가로로 임했고

삼군의 기운은 진남의 문에 용솟음치누나

이 땅의 인화를 어찌 내 힘으로 이뤘으랴

온천 행행 그때의 성덕이 아직도 전해진다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의

팔달문루(八達門樓)’의

시운(詩韻)에 화답한 시

三都推第一 (삼도추제일) 

수원은 삼도 중 제일로 치거니와
八達務懷來 (팔달무회래)

팔달문엔 힘써 만방을 불러들이네
蹔試經綸手 (잠시경륜수)

 잠시 경륜의 솜씨를 시험했다가
旋求鎖鑰才 (선구쇄약재)

이내 변방의 장재를 구해 쓰노라
樓依天宇迥 (루의천우형)

누각은 하늘을 의지하여 멀고
城抱野門廻 (성포야문회)

성벽은 야문을 안고 돌아드네
料理自深淺 (요리자심천)

직무 처리엔 절로 천심이 있기에
官樽聽醱醅 (관준청발배)

관청 동이에 술 괴는 소릴 듣는다오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이‘동장대(東將臺)에서

중추(中秋)의 달을 구경하다’의
시운(詩韻)에 화답한 시이다.

​畫櫓粉城意氣誇 (화로분성의기과)

화려한 망루와 성벽이 의기를 과시하여라
此中常見五雲遮 (차중상견오운저) 

여기에 항상 오색구름 펼쳐진 걸 보노라
高樓直聳爭秋色 (고루직용쟁추색)

높은 누각은 우뚝 솟아 가을빛과 겨루고
萬象俱明泛月華 (만상구명범월화)

오만 물상은 다 밝아서 달빛에 떠오르네
景物偏從今夜好 (경물편종금야호)

경치는 유독 오늘 밤을 인해서 좋거니와
山川元有四時佳 (산천원유사시가)

산천은 원래 사시의 아름다움이 있다오
庭松不妨遲遲長 (정송불방지지장)

뜨락의 소나무는 더디 크는 게 무방하여라
長繫淸輪相國家 (장계청륜상국가)

상국의 집에 맑은 달 바퀴 길이 매어 놓으리

 

 

 

 

영화정에서 총리대신이

화성부를 바라본 시를 차운하다.

樓櫓居然起(루로거연기)

다락의 망루가 문득 솟아 오르니
山河頓與新(산하돈여신)

산과 물이 갑자기 새로워지는구나
多卿摠理力(다경총리력)

이 모든 것이 그대 총리의 힘이니
爲我指揮神(위하지휘신)

나를 위해 귀신처럼 지휘하였네
旗鼓超乘士(기고초승사)

깃발과 북소리에

뛰어오르는 군사들이오
閭閻樂業民(여염락업민)

거리거리마다 생업을

즐거워하는 백성들이네
厥田元上上(궐전원상상)

밭의 등급은 으뜸 중의 으뜸인데
疏漑擬來春(소개의래춘)

도랑 뚫어 물대는 것

내년 봄을 위함일세

穩旋郊駕路 臨蹕郡齋東
온선교가로 임필군재동
樽漾蟻浮綠 帿懸鵠中紅
준양의부록 후현곡중홍
千家烟火氣 列壘鼓笳風
천가연화기 열뢰고가풍
一豫寧爲度 今年幸遇豐
일예녕위도 금년행우풍

어가가 교외 길을 안온하게 돌아와     穩旋郊駕路
군재의 동쪽에 임해서 주필하였네      臨蹕郡齋東
술동이에는 푸른 거품이 출렁이고      樽漾蟻浮綠
과녁판에는 붉은 곡이 걸려 있도다     帿懸鵠中紅
일천 민가엔 밥 짓는 기미가 보이고    千家烟火氣
여러 진영엔 북 피리 소리 울리누나    列壘鼓笳風
한 번 즐김이 어찌 법도가 되었으랴    一豫寧爲度
금년에 다행히 풍년을 만났음일세      今年幸遇豐

正祖大王의 御製詩 
'生 居 最 說 安 山 好(생거최설안산호)'

地 勢 盤 如 萬 朶 蓮 (지세반여만타연)
尋 常 魚 蟹 不 論 錢 (심상어해부논전)
生 居 最 說 安 山 好 (생거최설안산호)
況 復 穰 穰 大 有 年 (황복양양대유년)

소반 같은 땅 모양은 일만송이 연꽃과 같고
물고기와 게는 너무 흔해 돈으로 논하지 않고
살아서 거주하는 곳 안산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
벼까지 잘 여물어 크게 풍년이 들었음에랴

 

 

 

 

 

 

 

 

 

 

 

 

 

 

 

 

 

 

 

 

 

 

 

 

 

 

 

 

 

 

 

 

 

 

중국인 관광객

 

 

 

 

 

 

 

 

 

 

 

 

 

 

 

 

 

 

 

 

 

 

 

 

 

 

 

 

 

 

 

 

 

 

 

 

 

 

 

 

畫譜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