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홍회

강화도나들길 광성보

훼브스 2020. 11. 29. 18:37

광성보는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자연 역사에 대한 이야기 었다.

16시가 되었으니 해안선 따라 가는 나들길

덕진진은 멀리보인다.

30분이면 갈수 있다는데 가자는 팀

못가겠다고 버티는팀

결국 다음기회로 덕진진을 탐방하기로 하고

복귀한다.....

 

 

 

 

광성보 위치도

 

 

사적 제227호로 지정된 광성보는 강화해엽을 지키는 중요한

요세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비코져 강화도로 천도한 후로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성을 쌓았다 조선 광해군때

헐어진곳을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광성돈대

 

 

 

 

무명용사비

 

 

쌍충비각

 

 

 

무명용사 비

 

신미순의총

 

 

순돌목돈대

 

 

 

 

 

 

 

 

 

 

 

 

 

 

용두돈대

 

 

 

 

 

그후 1679년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辛未洋擾때 침략한 미해군의 함선과 신무기를

소지한 해병대에 맞선 조선군 수비대는

魚在淵 장군과 휘하 장졸들이 몇몇 포로를 제외 전원 전사한

곳이다

 

 

 

조선 최하로 무능했던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할때도

대장장이 나무꾼에 업혀 갔는데

여기 순들목에서는 어린사공의 배에 의지 적의 공격을 염려한

사공의 충심을 이해치못하고 목숨을 살려준 은인을 처단한다.

 

 

 

심미양요 당시 어재연장군과 아우 재순은 고향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로 모셔 안장하고 연고가 있는 사람들은 다 시신을 수숩

했는데 무명의 전사자 사졸53명은 가묘 현재는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순절을 기리고 있다

 

 

친우들과 대화중 전투에 참가 장열한 최후를 맞이한 민초들은

이름없는 천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가슴이 아파졌다

양반들은 군역도 면제되는 시절이 있었으니 어느 양반 집 종

쇠돌이 바우 꺽쇠 등 싸우다 죽어도 시신을 수숩할 연고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숙연해졌다

 

 

 

 

 

 

 

신미양요때 전사한 어재연 장군의 기가 미해군 콜로라도함에 실려있다

이 원수기는 136년지난 2007년 임대형식으로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신미양요에 참가한 1370톤급 USS Monocacy의 모습

백과사전인용

 

 

 

미군이 점령한 덕진진

 

 

 

 

 

 

미해병대에 붙잡힌 조선군 포로들

 

 

 

조선 관리가 승선 포로들을 면담하고있다

 

 

조선 관리를 모셔온 뱃사람 같은데

양키들이 버린 빈병을 들고 행복해 하고있다

 

 

 

 

신미양요 이후 미국측 신문에서 보인 전리품기사

긴총신에 신기해 한다

미국에선 불량기를 미니블론즈 캐논이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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