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홍회

육홍회 우이령길 가다

훼브스 2020. 12. 3. 15:40

 

 

2017 9 29

 

친우 춘성 상훈 인원 부부 6인은

북한산 둘레길 마지막21구간 우이령길을

가기위해 사전 예약으로 우이역에서

미팅하여 1040분부터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이령(牛耳嶺)이라는 이름은 두 산의 능선이

고개를 중심으로 ()’ ()처럼

죽 늘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서울 우이동과 경기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연결하는 길로 북쪽 도봉산과 남쪽 북한산의

사이에 있는 고개 길입니다.

이길은 조선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있던 길이었다

합니다 양주군에서 한성으로 넘어가는 가장가까운

길이며 청나라가 양곡을 수탈해가는 길이었고

승유억불정책 으로 배척받던 승려들이 서울로

드나들던 산길이었다 합니다

 

 

 

원래는 사람 한두사람이 지나는 좁은샛길이었으나

한말때는 장흥쪽에서 장작을 싣고 서울로

올수 있는 길이되었고 6.25 동란때 작전수행을위해

미공병대가 차량통행이 가능한 현재의 길로

다듬었는데 1960년대 잘알려진 김신조 무장간첩

침투사건 루트로 알려져 40년간 폐쇄 되었는데

우리는 가다가 60년만에 개통이다 50만이다

하다가 검색후 40년만에 개통된 사실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대전차 방어용 설비물

 

무장공비의 루트로 알려져 군부대 통제로

막아버려 도봉산과 북한산을 갈라놓았던 이길은

정작 김신조 일당은 다른길로 침투하였으며

퇴각로로 설정되어 사용하려 하였으나

자문박일대에서부터 교전후 뿔뿔이 훝어져 체포

사살되는 바람에 그들이 실제 이길을 사용한적이

없다고 합니다

 

 

우이동쪽 탐방 안내소 앞 사진

 

 

우리의 행로는 우이탐방안내소에서

교현리까지 가서 턴하여 다시 우이탐방소로

하산하는 것이었는데

 

처음부터 편안한길은 숙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여 단풍들면 다시오자 약속

하게 됩니다

특히 맨발로 걸을수 있게 다져진 찱흙 황토길

은 최적의 트레킹코스 였습니다

 

 

 

 

숲길을 걸어 오봉 전방대에 서게되면

천혜의 5형제바위의 위용에 압도됩니다

 

거기서 석굴암으로 가게되는데

친우 춘성의 말로는 경주의 석굴암보다

아기자기한 멋이 있어 좋다 하였습니다

 

윤장대가 먼저 반겨줍니다

 

 

윤장대(輪藏臺)

 

티벳이나 네팔등이 소개될 때 많이

보아왔던 윤장대는

에전엔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수 없었으나

근자에 들어 자주 목격되는데

팔각기둥 모양으로 만든 나무 기둥안에

대장경전을 넣고 예불을 보는 불교 의식품으로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는 도구라 합니다

내부에 불경을 보관해 둔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퍼지게 하는 것과 경전이

꽃혀 있는 윤장대를 돌리기만 해도 경전 만권

을 읽은 것과 같아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을

쌓은 수 있다고 하며 글을 몰라 경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하며

즉 사람들이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읽는 효과를

얻는다는 것인데 사찰의 윤장대는 사람 접근이

별로 없다

 

범종각

 

범종각 앞에는 주지 도일스님이 쓰신

원이 그려져 있는데 과연 원의 뜻이

무엇인가 알고싶어 휴대전화로 인터넷

조회를 합니다

 

정산종사법어 제4 경륜편(經綸編)을 보면

 

1장 객이 묻기를 [귀교의 교명을 원불교라 하였으니

원의 뜻을 알고자 합니다.] 정산 종사 말씀하시기를

 

은 형이상으로 말하면 언어와 명상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써 이를 형용할 수 없으나,

형이하로써 말하면 우주만유가 다 이 원으로써

표현되어 있으니,

이는 곧 만법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만법의

실재인지라,

그러므로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교법이

비록 천만 가지로 말은 달리 하나

그 실에 있어서는 원 이외에는

다시 한 법도 없는 것입니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대한뉴스에 의하면

도일 스님 글씨는 봉선사 범종각, 수종사 범종각,

용문사 선열당, 회암사 대웅전, 1군단 군법당 대웅전,

30사단 안중근 장군관, 호국쌍용사의 편액을

통해서도 볼수있다합니다

불교계는 물론 군부대에서도 이미 정평이 나있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패산 터널 입구에 자리한

보합기념탑(保合記念塔)’도 도일 스님 글씨라 합니다.

동국대 역경원장을 역임한 봉선사 조실 월운 큰스님께서

지었으며, 도일 스님이 직접 붓을 들었다

합니다

 

 

 

 

대웅전앞 범종탑 우측에 보이는 공연장은

도색작업으로 페인트 냄새가 났으나

이곳은 단풍음악회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의 설명에 의하면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義湘大師)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을 만큼 고찰(古刹)이며,

창건 뒤 여섯 차례나 폐사되었다가 중창되었다.합니다

설암(雪庵) 관익 대사(寬益大師)가 석굴암을 중창하여

지장보살과 나한존자 석상을 조성하여 선풍을 지키는

수도처로 중창하였다는 설은 신빙성이 있다.합니다

또한 봉선사 본말사지에 있는 석굴암 중수기

따르면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원당이었다고 한다.합니다

 

 

 

 

 


그 후 석굴암은 수차례 폐사되길 반복하다가

1935년 승려 응담이 김병룡의 시주로 중창하였는데,

당시는 나한전으로 개수된 조그만 석굴만 있었다고하며.

이후 1954년 초안당 유성[1926~1998]이 들어오면서

다시 중창 복원되어 현재의 석굴암이 갖추어졌다 합니다.

1975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1980년에 신중 탱화,

1985년에 칠성 탱화·양사 탱화·산신 탱화가 조성되었다

합니다

 

 

 

 

오봉을 뒤로하는 운치 그 위용

그리고 앞으로 탁트인 북한산의

전경은 천헤의 자연미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도 불사가 이루어지고 있어

대웅전은 단청이 않되어 있었고

고찰에 어울리지 않는 생활관이 들어서

있어 아쉬운 점이 있었으나 석굴암은

아름다운 사찰이 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원점회귀합니다

그리고 우이종좀역 주변에서 뒷풀이 하는데

마침 생일을 맞은 보석을위해 급조한

생일케익?? 과 축하노래를 불러줍니다

이로서

재미있는 추억쌓기는 끝이 났습니다

 

 

 

 

 

    

 우이령길 영상

 

우이경전철역 2번출해서 건널목 건너

좌측길로 안내 표식이 있습니다

 

대추와 애기사과가 함께 있습니다

 

길따라 새로운길로 걷습니다 20여분

 

 

돌탑과 때죽교를 지납니다

 

우이동쪽 탐방안내소에서 사전예약을 체크합니다

탐방안내소 앞에 있는 사진입니다

안내원으로 부터 설명을 듣습니다

우리가 갈 입체도입니다

 

산악 경찰대 입니다

 

산악 경찰서 뒤로 태양열 발전 시설이 있었습니다

 

길가의 야생화가 반겨줍니다 

 

 

 

 

 

 

 

 

 

 

 

 

 

 

 

 

 

 

 

 

 

 

 

 

 

 

오봉 전망대 입니다 속이 후련하게 조망됩니다

 

 

 

출입금지 뒤 계곡으로 좌정한 사람들도있습니다

왜??? 일까요 너무 웃겨서 !!!!!!

 

 

 

 

 

 

 

 

 

 

 

걷는 길따라 오봉이 함꼐 합니다

 

 

유격장이 나옵니다  30단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안박사는 옛추억에 감개무량합니다

 

석굴암 입구로 들어섭니다

 

 

 

 

 

 

 

 

 

 

 

 

 

 

 

 

 

 

일주문입니다

 

 

공덕비를 만납니다

 

 

 

 

 

 

 

 

 

 

 

 

 

범종각

 

돌담 으로 기어오르는 도마뱀 참 오랫만에 봅니다

 

 

 

나한전 입니다

 

석굴암 내부의 나한

 

 

 

 

 

 

 

 

 

 

삼성각

 

삼성각의 탱화

 

 

 

 

 

 

 

석굴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문화재지정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1호

관광공사  

 

석굴암(石窟庵)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불좌상이다.

이 불상은 석굴암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본존불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소형 불상이다. 불상의 신체 비례와

대의(大衣) 처리 등에 시대적인 양식이 반영되어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42, 무릎 폭 25의 소형 불상이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

형태를 하고 있다.

목이 짧아 머리와 몸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며,

머리를 약간 앞으로 내밀어 어깨 모양이 구부정하다.

육계(肉髻)가 불분명한 머리에는 이마 위쪽에 반원 형태의

큼직한 중앙 계주(中央髻珠)가 있으며,

정상부에는 윗면이 납작하게 수평을

이룬 정상 계주(頂上髻珠)가 있다.

얼굴은 방형 형태로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있고,

 콧등은 납작하며 입술이 얇은데, 입가에는 미소를

살짝 머금고 있어 친근함과 근엄함이 함께 느껴진다.
어깨에는 구부정해진 양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通肩衣)

하고 있고, 두 손은 무릎 위에 나란히 내렸다.

대의 깃 사이에는 가슴까지 올려 입어 수평의

묶음 띠가 보이는 내의(內衣)가 표현되었다.

뒷면에는 목 주위에 대의 끝단을 두르고,

불상 앞쪽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왼쪽

어깨에 길게 늘어져 있다.

오른쪽 팔꿈치 일부가 훼손된 것을 개금하였으나,

개금 상태가 부실하여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다.
양주 석굴암 석조불좌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큰 편이고, 목이 짧아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지 않으며, 고개를 약간 아래로 숙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보존상태가 좋으며, 18세기의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어 조선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하산길 유턴 미림산장 쪽으로

 

누리장나무 열매

고염나무

 

 

첫단풍

 

 

 

 

 

은행나무

 

하산길 우이종점 다리난간에

크리마스꽃 포인세티아가 아름답게

피어 있어 처음엔 조화인가 만저보니

생화였습니다

 

 

 

조망되는 우이암

 

 

우이종점에서 보는 인수봉의 석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