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홍회

교촌마을의 아쉬움(경주여행15부)

훼브스 2020. 12. 3. 14:07

 

 

2017 6 18

 

골굴사를 끝으로 경주투어 일정이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남산권 역사지를

못보고 가야만 했는데 시내로 진입할 때

가이드에게 질문을 하였다

 

18시 표를 예매하여 1시간30분 여의 시간이

남는데 더둘러 볼만한 곳이 있는가??

 

교촌마을

그리고 투어일정에 없는 교촌마을을 우정

데려다 주고 가는 운전기사와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교촌마을로 들었섯습니다

 

교촌마을은 신라 문신왕2(682)에 한반도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었던 곳이라합니다

이후 신라의 국학은 고려의 항학.조선의 향교,

이어지는데 그과정에서 이곳에 향교가 있었다하여

교동.교촌.교리.라 하였다 합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새삼 깨닫게 되는게

교촌마을의 고택과 최부자에 대한이야기 였습니다

경주 최부자는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는 원칙을 세우고 솩인에게 8활을 받던 소작료를 1600년대

절반만 받았고 독립운동에 참여 한국판 노불레스 오불리주

의 표상이 되었던 최씨일가는 오히려 근대 박정희 정권때

수난을 당했다 하는 것을 TV에서 시청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중심가에 들어서니 민속공연이 열려 풍악단이

흥겹게 공연을 펼치고 있었으나 우리는

시간상 긴 시간 구경할수 없었고 우선 최부자고택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아쉬움이 있던게 교촌마을이 TV에 소개

되면서 유명해진 김밥 과 밀면도 시식못하고

겨우 인절미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먹고

버스 터미널로 왔습니다

 

 

 

 

 

 

 

 

 

 

 

 

최부자 고택

 

 

 

 

 

12 400년 이어온 경주 최부자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스웨덴 국왕이 찾은 식민지 조선의 명문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1. 스웨덴 의료 참전단의 간호사들이

경주 교동 최부자집을 찾았다.

그들은 곧 최부자집 안채와 부엌 곳곳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이들은 스웨덴 국왕 특별명령을 수행중이었다.

웨덴 국왕 구스타프 6. 그는 황태자였던 1926년 황태자비

 루이즈와 함께 신혼여행길에 식민지

조선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때 구스타프는 일본이 자행한 신라시대 고분 발굴에

참여하게 되고 이 고분은 그를 기념하는 뜻에서

스웨덴의 한자식 발음을 빌어 '서봉총'으로 이름지어졌다.

그리고 황태자부부는 당시 경주의

한 고택을 방문한다.

이들은 전통음식으로 뜨겁게 환영해준 조선의 명문가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구스타프 6세는 간호사를 지원하며,

여성전용공간이라 둘러보지 못한 최부자집 안채와

부엌을 촬영해오라 한 것이다.

구스타프 황태자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식민지

조선의 기품있는 명문가. 12 400년 동안 덕망으로

부를 지켜온 부자의 대명사,

경주 최부자였다.흔히 부자 3대를 못간다는 말이 있다.

 노력없이 물려 받은 부는 오래가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부자가 천국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주변의 인심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부자, 집부자, 땅부자... 요즘처럼 부자에 대한

말들이 많았던 시대는 없었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양극화의 시대.

우리는 경주 최부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출처 샌디에고 한인성당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