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보여행기

정릉의여름(그리운금강산)

훼브스 2020. 12. 5. 13:21

 

 

 

 

 

201892

 

보석과 함께 정릉을 산책합니다

능 앞으로 고송이 우거진 숲에서

여러 가지 새소리에 장단 맞춰

냇물소리 낭낭히 들리니

산책하기는 최상의 날이었습니다.

보석에게 봄과 가을 겨울의 정릉에

대한 역사를 말해 주었지만

 

왜 이방원과

신덕왕후가 어떻게 악연이되어

이복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계모의

무덤 방풍석 까지 뜯어내 광통교 다리를

놓게 하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게 했던가

그 애증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며 능 정상

북한산 보현봉이 보이는 곳을 돌아

1시간30분간을 산책합니다

 

처음 신덕왕후와 이방원(후일 태종)

사이는 좋았다 합니다

  

 

  

 

신덕왕후

그녀는 1392년 음력 3월 이성계가

해주에서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크게 다친 것을

계기로 정몽주가 그를 제거하려 했을 때

생모인 한씨의 무덤에서 여묘살이를 하던

이방원(李芳遠)을 급히 해주로 보내

이성계를 개경으로 불러냈다 합니다.

또한 이방원이 그해 음력 4월 자객을 보내

정몽주를 죽였을 때도 대신을 함부로

죽였다며 크게 꾸짖던 이성계의 분노를

무마시킨 것도 강씨였습니다.

 

 

이도경작 신덕왕후진영

 

 

이는 강씨의 수완과 결단력을 상징해주는

대목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대담성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개국으로 강씨는

1392(태조 1) 825

조선의 첫 왕비가 되어

현비(顯妃)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던 두사람 사이 작은엄마인 신덕왕후가

자기 소생의 왕자를 이성계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고 실행에 옮겨 그 화근으로 정도전과

이복동생은 참살당하고 맙니다

 

정권을 잡은 지 10년 뒤인 1408년에

이성계가 죽자, 이방원은 작은엄마에

대한 분풀이를 개시했다.

그는 이듬해인 1409년에 정릉을 파내어

도성 밖으로 이장했다.

그 뒤 정릉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의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 정착했습니다.

 

우리 둘이는 녹음이 우거진 소나무숲에서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휠링합니다

방풍석이 없는 왕비의 무덤을 보며 보석은 말했습니다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