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과 사찰이 잘 어우러져 문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 강진 백련사다.
백련사 가는 입구에는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사이 30분 남짓 오솔길은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서로 어울려 짙은
향기를 뿜어댄다. 특히 다산은 당시 백련사에 머물던
혜장선사와 인연이 깊었다.
30세 나이에 대흥사 12대 대강사를 지낼 만큼 학식과
수행력이 높았던 혜장선사는 유배를 온 다산과 주역에 대한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두 사람을
이어준 길이 동백나무 길이다.{법보신문)
삼경에 비가 내려 나뭇잎 때리더니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다오
혜장과는 참으로 연분이 있는지
절간 문을 밤 깊도록 열어 놓았다네.” (다산의 시)
동백꽃에 대한 문헌을 보면 고려시대
이규보의 한시에서 동백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
동백화(冬栢花)
복사꽃 오얏꽃 비록 아름다워도 (桃李雖夭夭)
부박한 꽃 믿을 수 없도다. (浮花難可恃)
송백은 아리따운 맵시 없지만 (松柏無嬌顔)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기도다. (所貴耐寒耳)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 있어 (此木有好花)
눈 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 (亦能開雪裏)
곰곰 생각하니 잣나무보다 나으니 (細思勝於栢)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도다. (冬栢名非是)
선운사 동백꽃/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때문에
그까짓 여자때문에
다시는 울지말자
다시는 울지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동구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 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선운사 동백꽃 /용혜원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니무가 숲을 이루어셀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가지가지 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듯
큼지막 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할것만 같았다.
가슴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 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듯 피를 토한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동 백 꽃/유치환
그 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없이 피었나니
그날
한 장 종이로 꾸겨진
나의 젊은 죽음은
젊음으로 말미암은
마땅히 받을 罰이었기에
원통함이 설령 하늘만 하기로
그 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
봄날/김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꽃처럼 살려고 / 이생진
꽃피기 어려운 계절에
쉽게 피는 동백꽃이
나보고 쉽게 살라 하네
내가 쉽게 사는 길은
쉽게 벌어서 쉽게 먹는 일
어찌하여 동백은 저런 절벽에 뿌리 박고도
쉽게 먹고 쉽게 웃는가
저 웃음에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쉽게 살려고 시를 썼는데
시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네
동백은 무슨 재미로
저런 절벽에서 웃고 사는가
시를 배우지 말고
동백을 배울 일인데’
이런 산조(散調)를 써놓고
이젠 죽음이나 쉬웠으면 한다
동백꽃이 질 때/이 해 인
비에 젖은 동백꽃이
바다를 안고
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소리
들어보셨어요?
피 흘려도
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냈듯이
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떨어지는 꽃잎들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하네요
동백꽃 지고 나면
내가 그대로
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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