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음

비에대한시모음(비오는날에)

훼브스 2020. 12. 8. 20:11

 

 

우산을 받지 않고 걸었다

거세지는 빗줄기 꽃잎들이

떨고 있다

 

부딪치고 깨어지고

다시 뭉처 또랑을 이룬다

 

수국 큰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처럼들린다

나는 요즈음 만성 귓병으로 잘 듣지

못하여 고생을 하는데

베토벤을 생각하게 된다 음악의 대가

그는 급기야 귀먹어리 가 되었어도

주옥같은 음악을 남겼다

얼마나 갑갑하였을까?

내몸이 이러니 베토벤의 아픔이

비소리와 함께 전해진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자연을 표현한 것이며

5번이 남성적이라면

6번은 여성적표현이라 한다

낭만주의 자들이 베토벤을 최초의

낭만주의 음악가로

규정하는 단서도 이 곡에서 찾고 있다

베토벤이 자신의 각 악장 첫머리에

표제를 붙혀 놓았으며

교향곡의 맨앞에는 전원 교향곡

또는 전원 생활의 회상

묘사라기 보다는 감정의 표현 이라는

자세한 설명을 써 놓았다

베토벤이 자연을 즐겼으며

그가 귓병으로 고생했을 때는

자연을 사람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곡이 작곡된 하일리겐슈트는

다뉴브 강의 오른쪽에 있는

도시로 오랫동안 베토벤의

휴양지로 이용되었다

1823년의 어느날 베토벤 선생은

갑자기 제자에게

소풍이나 가자고제안했다

태양은 따스하고 어느덧 여름의

징후가 들녘에 움트고 있었다

어느곳에 이르러 베토벤

선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가 바로 내가시냇가에서라는

악장을 떠올린 곳이라네

나이팅게일과 지빠구리가

주위를 날라다녔지!!

베토벤의 제자가 쓴 회고록에

나오는 글이다

 

 

 

 

 

 

 

 

 

우산이 되어 /이해인·수녀 시인      

우산도 받지 않은
쓸쓸한 사랑이
문밖에 울고 있다

누구의 설움이
비 되어 오나
피해도 젖어오는  
무수한 빗방울

땅위에 떨어지는
구름의 선물로 죄를 씻고 싶은
비오는 날은 젖은 사랑

수많은 나의 너와
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
한없이 쏘다니리

우산을 펴주고 싶어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리
모두를 위해 

 

 

 

 

빗방울은 둥글다/아종문학가 손동연

 

 

 

만약에

빗방울이

세모나 네모여 봐

 

 

 

새싹이랑

풀잎이 

얼마나 아프겠니?

 

 

빗소리 듣는 동안 /안도현

1970년대 편물점 단칸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

랑가랑 연애 얘기하는 것처럼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 척 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게, 맛있게 양푼 밥을

누나들은 같이 비볐네
그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 빗소리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

잡히기도 하였으나
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

빗소리 듣는 동안......

연못물은 젖이 불어
이 세상 들녘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
미루나무 같은 내 장단지에도 그냥,

살이 올랐다네.

 

 

 

 

 

비 오는 날/아동문학가 유희윤

 

 

 

낡은 구두는

젖은 발이 안쓰럽습니다

 

젖은 발은

새는 구두가 안쓰럽습니다.

 

 

 

 

 

봄비 그친 뒤/아동문학가 남호섭 

 

 

비 갠 날 아침에 

가장 빨리 달리는 건 산안개다

 

 

 

산안개가 하얗게 달려가서 

 

산을 씻어내면

 

비 갠 날 아침에 

가장 잘 생긴 건 

저 푸른 봄 산이다

 

 

 

 

 

우현(雨絃)환상곡/시인 공광규

 

 

빗줄기는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진

()이어서

나뭇잎은 수만 개 건반이어서

바람은 손이 안 보이는 연주가여서 

간판을 단 건물도 고양이도 웅크려

귀를 세웠는데

가끔 천공을 헤매며 흙 입술로 부는

휘파람 소리

 

 

 

화초들은 몸이 젖어서 아무데나 쓰러지고

수목들은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비바람을 종교처럼 모시며 휘어지는데

오늘은 나도 종교 같은 분에게 젖어 있는데

이 몸에 우주가 헌정하는 우현환상곡.

 

 

 

 

 

 

 

나뭇잎을 닦다 /시인 정호승

 

 

저 소나기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가는 것을 보라 

저 가랑비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가는 것을 보라 

저 봄비가 나뭇잎을 닦아주고

기뻐하는 것을 보라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 고이고이

잠드는 것을 보라 

우리가 나뭇잎에 얹은 먼지를 닦는 일은 

우리 스스로 나뭇잎이 되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 푸른 하늘이 되는 일이다 

나뭇잎에 앉은 

먼지 한번 닦아주지 못하고

사람이 죽는다면 

사람은 그 얼마나 쓸쓸한 것이냐  

 

 

 

 

 

소나기 /시인곽재구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가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걱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비 오는 날 /시인 천상병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오십 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 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을 

나는 어이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감으리오

 

 

 

 

우산속의 두사람/용혜원

 

비가 아무리 줄기차게

쏟아진다 하여도
우산 속에서 나란히

걸을 수 있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발목과 어깨를 축축이 적셔온다

하여도 비를 의식하기보다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주고 받는

이야기가 무르익어 간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빗소리보다 때로는 적게

빗소리보다 때로는 크게
서로의 목소리를 조절하며

웃을 수 있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산 속에서 서로 어색함이 없이

어깨와 어깨 사이가 좁혀지고
두 사람의 손이 우산을 함께 잡아도

좋다면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산 속의 두 사람은
사랑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 오는 날에/시인 나덕희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우산 속으로도 비 소리는 내린다 /시인 함민복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블록을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한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르는 질문에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한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쓴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가랑비 오는 날/아동문학가 박두순

 

 

가랑비가 촉촉이 내렸어요.

꽃들 머리를 어루만지며

우리 머리를 어루만지며

 

 

 

하느님이 오늘만큼은 우리를

꽃으로 여기셨나 봐요.

꽃같이 여기셨나 봐요.

 

 

모처럼 오늘은

나도 한 송이 꽃이 아니었을까

 

 

 

 

풀밭에서/아동문학가 박유석

 

 

여우비

그친 뒤

풀밭에 갔더니

빛들은

풀잎으로

알몸을 가리고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부끄러운 아기 얼굴로

배시시 웃고 있었다.

 

 

 

 

 

 

 

빗방울의 더하기/아동문학가 박소명 

 

톡톡톡 

잎새에 더해 

초록빛 키우고 

 

톡톡톡 

꽃잎에 더해 

꽃잎 웃음 키우고 

 

톡톡톡 

냇물에 더해 

물소리 키운다 

 

톡톡톡 

더하면서  

남은 키우고 

 

톡톡톡 

더하면서  

제 모습은 뺀다

 

 

 

 

 

세우/도종환

 

 

가는 비 꽃잎에 삽삽이 내리고

강건너 마을은 비안개로 흐리다

찔레꽃 찬 잎은 발등에 지는데

그리운 얼굴은 어느 마을에 들었는가

젖은 몸 그리움에 다시 젖는 강기슭

 

 

 

 

 

오늘 밤 비 내리고/도종환

 

오늘 밤 비 내리고

몸 어디인가 소리없이 아프다

빗물은 꽃잎을 싣고 여울로 가고

세월은 육신을 싣고 서천으로 기운다

꽃 지고 세월 지면 또 무엇이 남으리

비 내리는 밤에는 마음 기댈 곳 없어라

 

 

 

 

비 내리는 밤/도종환

 

빗방울은 창에 와서 흐득이고

마음은 찬 허공에 흐득인다

바위 벼랑에 숨어서

젖은 몸으로 홀로 앓는 물새마냥

이래가 멀다하고

잔병으로 눕는 날이 잦아진다

별마저 모조리 씻겨 내려가고 없는 밤

천 리 만 길 먼 길에 있다가

한 뼘 가까이 내려오기도 하는 저승을

빗발이 가득 메운다

 

 

 

저녁비/도종환 

 

왕거미 솔잎 사이 제 집에 급히 오르고

저녁 구름 너머로 초승달은 날락들락

길이 멀은 저녁새 날개짓 바쁜데

머리꼭지 적시는 빗 방울은 오락가락

비를 그을 마을은 얼마나 남았는가

천리를 걸어도 앞길은 캄캄

 

 

봄비 /정연복

하얀 목련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날
봄비 보슬보슬 오고 있어요

님 계신 그 곳에도
봄비가 내리고 있을까?
님도 저 꽃잎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짓고 계실까?

님 그리며 우체국 가는 길에
뻥튀기 할아버지가 뿌리신

과자 부스러기를
행복으로 쪼아먹는 비둘기 두 마리

부럽기도 하여라!
지금은 나 홀로 외롭게 걷는 이 길을
님이랑 나랑
비둘기처럼 정답게
함께 걸을 그 날은 언제나 오려나

다만 님의 모습 하나
내 마음에 고이 간직하는 것 말고는
나 세상에 바라는 것 하나 없는데

내 마음에 그리움의 우표를 붙여
저 구름의 우체부에게 띄워 보내면
님은 이 마음 알아 주실까

창 밖에는 보슬보슬 봄비
내 마음에는 주룩주룩
그리움의 소낙비 

 

 

 

 

비 오는 날에 /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비내리는 밤에/이채

                     
비내리는 밤에
내리는 건 비만이 아니더라

달도 별도 다 내린다는 걸
캄캄한 채로 비워진
헛된 그리움을 본 후에야 알았다

비내리는 밤에
젖는 건 밤만이 아니더라

내 슬픔까지 젖은 걸
아침이 온 후에야 알았다

사랑에 깊이 젖은 것도
너 떠난 후에야 알았다

밤만이 어둠이 아니더라
너 잃은 꿈길조차 어둠인 것을

비내리는 밤
뜬 눈 지샐 통증이 온 후에야 알았다

 

 

 

비가/유하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비 오듯 그립습니다
한 방울의 비가 아프게 그대 얼굴입니다
한 방울의 비가 황홀하게 그대 노래입니다
유리창에 방울 방울 비가 흩어집니다.
그대 유리창에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그대 번개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흩어진 그대 천둥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내 눈과 귀, 작달비가 등 떠밀고 간

 저 먼 산처럼

멀고 또 멉니다.


그리하여 빗속을 젖은 바람으로

휘몰아쳐가도
그대 너무 멀게 있습니다.
그대 너무 멀어서 이 세상
물밀듯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빗발치게 그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비내리는 날이면/원태연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비가 촉촉히 가슴을 적시는 날이면
이 곳에 내가 있습니다
보고 싶다기보다는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려고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비가
촉촉히 가슴을 적시는 날이면
이곳에서
눈물 없이 울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오는 날이면/도지민

 

아무런 기별도 없이
이렇게 지루하게 비 내리는 날이면 문득
반가운 당신이 오셨으면 좋겠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거저
발길 닿는 대로 오다 보니
바로 여기였노라고 하시며
그런 당신이 비옷을 접고
젖은 옷을 말리는 동안 나는
텃밭에 알맞게 자란 잔파를 쑥쑥 뽑아
매운 고추 너덧 개 송송 썰어
파전 한 장 바싹하게 굽고
시큼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로
냉면 한 사발 얼렁뚝딱 만들어
오늘만은 세상 시름 다 잊고
덤으로 마주 하는 단 둘만의 성찬
그런 살가운 맛 한 번 보았으면
참 좋겠다.

 

 

 

 

봄비맞은 편지 / 평보

 

봄비 때문입니다

바람 때문입니다

참새의 수다 떠는 모습도

여린 새싹들의 고통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움 입니다.

창밖 유리창에 부서지는

물보라 속에

정다운 미소가 보입니다

환영

사람이 그립습니다

봄비 때문야

바람 때문야

문틈에 끼어놓은 편지

빗물에 번진 편지는

내게 속삭였습니다.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