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송기원
그럴줄 알았다
단 한번의 간통으로
하르르, 황홀하게
무너저 내릴 줄 알았다.
나도 없이
화냥년
해당화
목소리에도 칼이 달려, 부르는 유행가마다
피를 뿜어내던 어린 작부
붉게 어지러운 육신을 끝내 삭이지 못하고
백사장 가득한 해당화 터쳐나듯
밤바다에 그만 목숨을 던진 어린 작부
절대빈곤이 지배하던 50년대에 유년을 보낸 송기원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자동기들이 종종 색주가로
팔려가던 것을 보곤 했다. 붉디붉은 꽃 해당화와 50년 전
친구들의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 시인은 '생이란 본래가
서러운 것'이라는 진실을 새삼 깨달았지 않았을까.
복사꽃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다 말고/
사립문을 뛰쳐나온 갓 스물 새댁/
아직도 뚝뚝 젖이 돋는 젖무덤을/
말기에 넣을 새도 없이/
뒤란 복사꽃 그늘로 스며드네/
차마 첫정을 못 잊어 시집까지 찾아온/
떠꺼머리 휘파람이 이제야 그치네.
배꽃
건너 배밭에는 배꽃들이 한창이어서/
해종일 벌나비들이 잉잉거리네/
밭일을 하다말고, 젊은 과수댁/
고쟁이 까서 소피 볼 때/
홀연히 어지러워라/
해종일 잉잉거리는 벌나비만이 아니라/
삼년 넘게 굳게 닫힌/
이녁의 자궁 안에 난만한 것들!
찔레꽃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어질머리 흔들리는 봄날 저녁이면
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런 지경에서
꿈결같이 사람 냄새를 맡곤 하였습니다.
한 번 돌고, 두 번 돌고, 또다시 도는
그런 산모롱이 아래 아늑한 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 된장국 냄새. 밥 짓는 연기 속에서
마을의 불빛들 하나 둘 밝게 켜지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갈 길도 돌아설 길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릴 때
그대 대신에 느닷없는 수천수만 찔레꽃 송이들
무언無言, 무언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대 대신에 피어올라서
돌아설 한가닥 외길 비추어주었습니다.
영산홍
내가 너를 더듬고
네가 나를 더듬어
온 산에 무더기를 이룬다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이 아니라
찰나간에 스러진들 어떠랴.
스러져,바닥 모를 허공으로
붉게 사라진들 어떠랴.
치자꽃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옆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는데요
남해안 땅끝에서도 더 아래로 내려온 섬학교답게
아열대성 상록수들만 무성한 화단이 있는데요
화단에 가득가득히 치자꽃들이 한창이어서
교정 전체가 치자꽃 향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벗어나 들샘머리에 이르러
두 손으로 샘물을 길어 올렸더니
넘쳐나는 치자꽃 향기가 손바닥에도 고였습니다.
들샘머리 콩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니가
잠깐 일손을 놓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는데요.
"쩌그 뾰쪽산에 가먼 섬들이 가랑잎처럼 둥둥 떠있고
이쁜 디가 많은디 육지사람덜은 몰르고 가뿌러라우."
일흔 가까운 주름살 투성이로 수줍게 웃어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에서도 치자꽃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그대여, 얼마나 오래 숨어살면서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아야
그대는 치자꽃 향기처럼 나에게 풍겨올는지요.
그대 언 살이 터져 詩가 빛날 때/송기원
별빛 하나에도 우리를 빛낼 수는 있다
한 방울 눈물에도 우리를 씻을 수는 있다
버려진 정신들을 이끌고, 바람이 되어
한반도에 스민 잠을 흔들 수는 있다
춥고 긴 겨울을 뒤척이는 자여
그대 언 살이 터져 詩가 빛날 때
더 이상 詩를 써서 詩를 죽이지 말라
누군가 엿보며 웃고 있도다, 웃고 있도다.
송기원(宋基元:1947-)
전남 보성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수학.
196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불면의 밤에>가
당선되어 시단에 등단.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회복기의 노래>가, <중앙일보>에 소설 <다시 월문리에서>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활동하게 됨. 작품집 <월행(月行)>(1979)과
<다시 월문리에서>(1984)가 있고,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詩)가 빛날 때>가 있다.
송기원의 육십 년 생애는 시쳇말로 '기구'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엔 민주화운동에 투신, 감옥을 4번이나
들락거렸고, 그 와중에 어머니가 자살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세상과 문학에 염증을 느끼고 인도로 훌쩍 떠나기도 했으며,
오랜 기간 절필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다.
감옥에서 나온 '나'는 얼마 되지 않아 이 선배와 함께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간다.
무덤은 잡목들이 우거진 칡골 공동묘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음력 설이 지난 후인지라 골짜기마다 부는 바람이 꽤나 차게
느껴졌지만 봄기운은 곳곳에서 여실했다.
어머니는 내가 감옥 생활을 하던 중에 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남매를 의붓아비 아래서 길렀던 어머니의 팔자는 드셌다. 더구나
내가 엄청난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어머니는 친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친자가 아니란 이유로 면회를 거절당했다.
이 일로 해서 나는 단식까지 했었다.
산소에서 음복을 하고 흉가나 다름없는 집에 들어가려 할 때,
이 선배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인사차 조합장을 만났을 때,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이 병사(病死)가 아니라 자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술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월문리를 방문하여 흉가가 된 집의 마당을 쓸고 정돈했다.
산소에 들러 풀을 베고 집에 돌아와 아랫목에 누웠을 때,
이 세상 끝에 누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득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어물전이 펼쳐진 고향의 장터라고 생각되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남매를 데리고 앉아 고기 몇 마리를 놓고 팔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 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 여자는 내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나의 새로운
어머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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