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여행기

트로이와라오콘 유럽여행54부

훼브스 2020. 7. 24. 16:42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기원전2세기에 제작된 라오콘상

 

 

옛날 프리기아라는 나라의 한 무리가 헬레스폰트

해협 주위에 트로이를 세웠다.

 

그곳은 수많은 장삿배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트로이는 통행세를 거둬 들이고 곧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트로이의 세력이 자꾸 커지자, 트로이를 시기하고 경계하는

나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스의 왕 아가멤논은 주위의

왕들을 모두 불러모아 트로이를 공격하자고 꼬셧고,

곧 트로이를 싫어하던 왕들이 트로이 원정을 떠난다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트로이 전쟁은 나온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테살리아'라고 하는 나라의

왕 펠레우스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신들의 왕 제우스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였다  

 

화가난 에리스는 황금 사과를 아테네, 헤라, 그리고 아프로디테의 

사이에 던졌다. 황금사과에는 제일 아름다운 여신에게 드립니다'라고

쓰여있었고, 곧 세여신은 자신이 제일 아름답다고 다투기 시작 했다.

 

제우스는 이 문제를 파리스에게 맏기기로 하고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한다

나머지 두 여신은 화가 나서 파리스에게 저주를 내리고는 사라진다

 

파리스는 미케네라는 나라로 잠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아가멤논왕의

동생인, 메넬라우스와 결혼한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네를 만나게된다

둘은 큐피드가 쏜 금 화살에 맞아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아프로디테가

시킨 일이었다. 결국 파리스는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도망쳐 버리고

메넬라우스는 화가 끝까지 났다.

 

결국 그는 형인 아가멤논에게 트로이를 공격하자고 제안하고

아가멤논은 주위의 왕들을 불러모아 트로이를 공격한다

 

모인사람들은 미케네의 아가멤논 메넬라우스

그리고 이타카의 오디세우스 필로스의 지혜로운 왕

네스토르 테티스 여신의 아들이자 테실리아의 왕자이며

최강의 군대 미르미돈족을 이끌고 있는 아킬레우스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 그리고 용맹한 전사 아이아스 지혜로운 장수

팔라메데스등의 사람들이 출전하였다.

 

트로이 측에는 파리스왕자 총사령관 헥토르 왕자

데이포보스 후에 로마를 세운다고 전해지는 '아이네이아스

등의 장수들이 있다.

 

10년 간의 전투 끝에 그리스 군이 승리를 하게 되는데, 트로이를

완전히 불태우고, 약탈하고, 폭행, 겁탈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스군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트로이군의 헥토르와

아이네아스 등 숱한 영웅들과 신들이 얽혀10년 동안이나

계속된 이 전쟁은 오디세우스의 계책으로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났다.

 

오래된 이야기이다

유리시즈라는 영화속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로 분한 커크다그라스가

동굴에 가처서 외눈박이 거인의 먹이가 되려는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디세우스(율리섹스)는 그리스 신화상의 영웅으로 이타카의 영주

트로이 전쟁의 영웅 트로이 목마의 고안자이다 그의 이름을 딴

호메로스의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10년 동안 유랑 끝에 고향에 돌아오고 정실한 아내 페넬로페를 넘보던

불량자들에게 오디세우스는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통쾌한 복수를 한다

 

그는 유랑자의 간계와 변장의 화신자라는 이메지로 그명성이

오늘까지 보존되고있다

 

오디세우스는 승리의 여신 아데나로부터 총애를 받아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도움을 준다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지루한 트로이 전쟁을 종식하기위한

하나의 계책을 펴낸다

 

오디세우스와 그리스전사들을 숨길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이말을

소유하면 패하지 않고 그리스군이 물러난다는 거짓소문을 퍼트렸다

그리스는 아데나신에게 이목마를 봉헌하고 트로이 성안에 놓은후

군대를 본국으로 철수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트로이 성 안에 있던 그리스 첩자 시논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와야

트로이가 안전하게 될것이라며 트로이 인들을 설득해 갔다

 

 

 

라오콘 상

 

 

그러나 모두 그말에 현혹되어 목마를 들여올 채비를 하는데

오직 한사람 아폴론신의 점술가이자 신관(神官)인 라오콘 만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고 목마의 배를 향하여

창을  던지며 항의 제지하였으나 마침내 그도 생각을 바꿔 

그리스군이 철군하는줄로 믿고 귀향중에 풍량을일으켜 그들이

전몰할수 있도록 그가 모시는 주신 아폴론 에게 소를 바치며 기원했다

 

그 때 아폴론신이 보낸 포르케와 카리보이아라는 두 바다뱀이 나타나

두아들과 라오콘을 물어죽였다 그 아폴론의 분노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목마에 창을 던지는 경망스러움에 아폴론신이노했다 하는것과

또 하나는 그가 결혼 첫날밤을 신성한 아폴론신전에서 치르는

신성모독을 저질렀다고 해서 아폴론이 뱀을 보내 죽였다는 설이있는데

아무튼 아들형제와 같이 뱀에 물려죽는것을 본 트로이인들은 그가 목마를

들여오는 것을 반대해서 신의 저주가 있었다며

 

목마를 성안에 들여와 놓고 승리의 술잔치를벌리고 있을때

목마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술에 취한채 자고있는

트로이 병사들. 사이로 내려와 성문을 열어 삽시간에 트로이는

함락되고 이때 아킬레우스도 발목에 화살을 맞고 죽고만다

 

죽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오디세우스와

장사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가 물망에 올랐다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사람들은 지혜와 용기를 갖춘 오디세우스가 용맹은 있으나

지혜는 거의 없는 아이아스보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가질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고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오디세우스에게 상으로 지급되었다

 

이 판정에 불만을 품은 아이아스는 분개하여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가

짜고 자기를 놀렸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아데나가

미리알고 그를 미치게하여 버려서 가축들은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인

줄 알게 해 그 가축들을 죽이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더니 부끄러움을

이기지못하고 자살을 하고 말았다 오디세우스인 줄 알게 해 그 가축들을

죽이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더니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다

 

 

 

 

 

 

Laokoon은 1506년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인근의

포도밭에서발견되었다

당시 교황 율리오2세는

발견물을 조사하고자

줄리아노다상갈로 와 미켈란 젤로를

파견하였고 미켈란 젤로는

그작품에 매료되어 입을 다물수 가

없었다고 한다

교황 율리오2세는 라오콘을 구입하고

한달여 만에 일반에게

공개하여 진열 하였다 한다 그리스

헬레니즘시대의

대리석 조각 높이 2.4m 로 트로이의

목마 반입을 반대하다

신의 노여움을 사서 해신 아폴론 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자식과 함께

졸려 죽은 것을

표현 했는데  조각은 큰 뱀에게 막

졸려죽으려고 하는 라오콘 과 두 아들의  

마지막  고통과 격노를 표현하였다

 


  

 

 

 

 

 

트로이 유적지

 

 

 

작자는 로도스섬의 조각가 아게산 도로스

아타나도로스 풀뤼도로스 등 3명이라고

전해지며 제작연대는

BC50-60년경으로 짐작된다고한다

1506년에 발견되어 르네상스기 예술가들을

비롯하여

빙겔만 괴테등 18세기 독일의 사상계에도

큰 감명을 주었으며 독일의 사상가 GE레싱은

이조각을 소재로 하여 유명한

예술혼을 저술하였다  한다

 

 

 

 

 

 

트로이 유물

 

 

 

 

그는 그후 그전설을 어디엔가 있을 현실로 믿고

꾸준히 돈을모아 트로이 발굴작업을 벌린다 발굴된 귀중한

유물들을 트로이왕 프리아모스의 금고라

여겨 훔처 반출했는데 베르린 박물관에 보관되다가

세계2차전때 베르린에 입성한 소련軍이 가져가 지금은

모스크바의 푸쉬킨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한다

 

 

 

트로이 유적지 앞의 현대 조형물

 

라오콘의 기가 막힌 역동적인  예술품 앞에서

기원전의 예술의 경지를 상상하며 그것이 왜 땅속에서

발견되었을까? 생각 하다가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적군의 내습으로 라오콘상을 보호하려고 땅속에 묻어

그나마 15세기 때 발견되지 않았나???

예수님이 태어 나기전의 신화를 섬기던 많은 유럽인들

그들은 많은 신화를 생산해 나갔다.

 

여기에 소개되는 라오콘의 신화를 우리역사와 비교해

보면 가슴아픈 슬픔이 다가온다

 

 

 

칠백의총 성지

 

칠백의총 묘역

 

조헌의 초상화

 

 

중봉(重峰) 조헌(趙憲 1544-92)

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수년 전인 1587년 일본이 명을 칠것이니

길을 빌려달라며 조선에 사신파견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라며

세차래 상소를 올렸다 조정의 상하가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을때

일본사신의 목을 베라며 도끼를 들고 한양에 올라와 상소한 사건

으로 유명하다

 

그는 임진왜란 전에 미리 전란을 인지하고 있어서

1574년 사신단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온후 국정개혁을 촉구하는

“선상8조소”라는 제목의 상소를 올렸다 명나라 군기의 엄격함을

본받자고 총16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그의 또 다른 상소인

16개 항목으로 구성된 ‘의상16조소“에서도 3개항목에서

국방문제를 다루면서 왜구나 홍건적의 침입 같은 일이 다시

일어 난다면 20만 명도 되지 않는 조선군 병력으로 감당할

수없다고 주장했다 왜란이 일어나기전에 군비확보 훈련강화

국방강화를 수없이 주장하였으나 번번히 무능한 선조로부터

왜면 당하고 만다

 

1592년 4월 그의 우려와 경고는 모두 현실이 됐다 전쟁이

일어나고 그가 우려한 대로 조선군은 왜에 대항을 못하고

후퇴를 거듭할 때 그는 의병을 모집 청주성 을 탈환하는데

그나마 우리 역사가 그렇듯이 충청도 관찰사 윤국형의 방해로

의병이 해산되고 700명 만 남게 된다

 

이들은 처절하게 싸워 호남지방을 사수하였으나 보급이

없는 상태라 화살이 떨어져 육박전으로 항전하다

700명 전원이 순국하였다 이해 9월 왜군이 물러간뒤

조헌의 문인 박정량이 시신을 거두어 합장했는데 이를

후세에 七百義塚 이라 불리운다

 

출처:국방일보 참고

 

 

바디칸시국(The Shadow of Your 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