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여행기

살구꽃의폼페이여행(You Raise Me Up)

훼브스 2020. 8. 1. 17:50

 

 

 

 

 

 살구꽃이본 폼페이

 

폼페이 발굴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면 두 가지 정설이 있어

여기 인용하여 옮겨봅니다

 

1709년 이탈리아 중부 서해안에 자리잡은

베스비오스산 서쪽의 레지나마을

수도원 뜰에서 우물을 파던 일꾼이

문득 무엇인가를 주어들었다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이었다.

그는 몇번 고개를 갸읏거리다 더 깊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후 1738년 4월 따듯한 봄날 한 농부가

베수비오산 기슭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꾕이끝이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흙을 파헤치니 꽤 긴 쇠붙치가 나왔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토목기사 들은

그것이 아주먼 옛날에 쓰인 수도관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그 땅 밑에는 옛 도시가 묻혀 있다는 말인가???

나폴리 국왕 샤롤르의 왕비 마리아 크리스티네는

옛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여자였다

그녀는 왕실 공병 부대 지휘관 알쿠비에르를 시켜

베수비오스산 기슭을 파헤쳤다

그는 폭약을 써서 15m 두께의 바위를 뚫는 데 성공했다

 

이발굴에서 그들은 청동 조각품 몇개를 찾아냈고

12월11일에는 "헤르쿨레늄 극장"이라고

새겨진 돌을 발견했다

베수비오스 화산이 터졌을 때 용암에 파묻힌 1700년

전 로마제국의 도시 "헤르쿨레늄"

을 찾아 낸 것이다. 1748년 4월1일 샤를르

왕의 명령을 받은 알쿠비에르는 베수비오스산

기슭의 또다른 또다른곳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1754년이 되자 이름모를 지하도시에

대한 발굴이 다시 시작되었다

4월19일 청동제 조각들과 금화를 잔득

움켜쥔 남자가 석고처럼 단단히 굳어 있었다

 

또다른 자료가 있었다

 

폼페이의 유적은 사르노 강으로 부터 트레안눈치아타 시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16세기말

라치비타라고 알려진 구릉밑에 터널을 팠던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매몰된 도시의 발굴은 오스트리아 점령기인

1709년에 헤라쿨레네움에서 처음시작되었다 

폼페이의 발굴작업은 1748년에야 시작되었고 1763년

그 장소가 폼페이 였음을 밝혀주는

비문(rei publicae Pompeianorum)이 발견되었다   

발굴은 현재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어 왔다

 초기의 발굴작업은 대체로 무책임했으며 발굴자들은

주로 웅장한 건물이나 박물관에 진열할

모물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굴은 1860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넬리가

발굴 감독이 되면서 종식되었다

그는 발굴지 사이에 놓인

지역을 정비하고 꼼꼼히 기록했다 

 

 

 

 

 

 

 

 

 

 

 

 

폼페이 부유층은 자가수도가 있었고 시민들을 위한 수도시설은

공동 수도로 50m 마다 설치되어있다 우리나라 60년대 공동 수도가

있어 돈을 주고 물을 사먹는 때가 있었다

 

 

상가 거리

 

폼페이를 9개 구역으로 구분하여 각구역을 가구(街區)로 분류하고 거리의 각 문에 번호를 매겨서

각 집의 위치가 3개의 숫자로 편리하게 표시되도록 했다 또한 피오넬리는 화산재 속의 시체가

분해되어 생긴 구멍에 시멘트를 부어 신체 주형을 뜨는 기법을 개발했다  

 

 

 

 

 

 

 

 

 

임산부는 아기의 보호본능으로 끝까지 사투를 벌리다 끝내 엎어져서 죽음을 맞이했다

 

 

 

1860년 쥬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에 의해 놀라운기술로 보

존 상태의 일부분이 복구되었다 쥬세페 피오렐리는 체게적인 발굴작업을

시작하였고 화산재 층 아래의 공간에 액체 석고를 부어 넣어

화산재속에 남겨져 있는

모든 유기체인 동물 나무와 목재뿐아니라 1.100

시체의 석고를 만들었다 이런 방법으로 1900년전에 재가

되어버린 사람 동물 식물들의 형채가 그 모습을 띠게 되었다

 

현재에 이르러 발굴은 80정도 이루어졌고 아직도

 

발굴 작업이 마무리 되는 10년후엔 많은 역사적 지식을

 

얻게 될것으로 보여진다...

 

 

 

 

이 기법은 고대의 문 가구.밑바닥의 주형을 뜨는 데도 사용되었다

세계제2차대전으로 잠시중단되었던 발굴작업은

1951년 아메데오 마이우리의 지휘아래

집중적으로재개되었다

그는 1924∼61년에 발굴책임을 맡았다

제1구역과 제2구역에 있는 아본단차 가도 남쪽의 넓은

지역이 발굴되었고 시 성벽 외곽에 쌓인 파편들이 치워졌다.

그 결과 노케라 문과 이문으로부터 누케리아까지

이르는 도로의 양편에 나란히 뻗은 멋진

공동묘지가 드러났다 현재까지

폼페이의 ¾이 발굴된 상태이다

스타비아이와 그라냐노 근처의 발굴작업은

카르로 4세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으며 1749∼82년에

12채의 별장이 발굴되었다

그후 발굴작업은 금세기가 되어서야

다시 재개되어 지금도 진행중이다

열주(列柱)에 둘러싸인 2개의 큰 안뜰과 목욕탕이 있는

산마르크 별장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다른 별장들은 그라냐노와 폼페이

근처 스카파티.도미첼라. 토레안눈치아타.보스코렐레 및

보스크트레카세 근처의 베수비오 산아래 경사면에서 발견되었다

그중 많은 별장들은 발굴후 다시 묻혔지만 유명한 수수께끼 별장을 비롯한

여러채는 지금도 볼수 있다

 

1755년 6월 어느날 독일의 뛰어난 고고학자

요한 빙켈만이 자기 집 서재에서 옛 로마시대

책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아무생각없이 小프리니우스

편지집 을 읽어 내려가던 빙켈만의 손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 나폴리국왕이 오래전부터

파헤치고 있는 곳이 바로 로마시대 폼페이

로구나...  베수비오 산기슭에 묻힌 지하 도시가

폼페이란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빙켈만은 몇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거기에는 화산이 터졌을때 소 프리니우스가

아버지인 大 프리니우스를 따라 폼페이 시민들을

구하러 간일을 상세히 적은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는 그 끔찍했던 날의 폼페이 모습이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서기79년 8월24일 아침 지체높은 로마 시민들의

여름철 휴양 도시인 폼페이는 바쁘고

활기에 넘처있었다

나폴리로 부터 12km 떨어진 베수비오산 기슭에서

사루누스강 어귀에 세워진 항구도시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화려함을 잘 나타내주는 사치스런 도시였다

베수비오산 에서 이따금 연기를 내뿜었지만

16년 전 폭팔한 뒤로는 그때까지 아무일도 없었다

사람들은 가끔 연기를 뿜는 모습이 오히려 폼페이의

경관을 더욱멋지게 꾸며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오쯤 며칠째 계속되던 땅의 흔들림이 갑자기

거세지더니 곧 베수비오 로 부터 하늘을 뒤덮는 버섯구름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미처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엄청난 폭팔음과 함께 산꼭대기가 갈라지면서

화산재와 용암이 비오듯 쏟아졌다

새들은 날다가 낙엽처럼  떨어졌고 사람들은

혼비배산하여 이리뛰고 저리뛰었다

짐승들도 숨을 곳을 찾아 갈팡질팡했다 화산은 쉴새없이 터졌고

검은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완전히가렸다

4시간쯤 지나자 인구 2만명중 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을 힘을 다해 바닷가로 달아났다

베수비오의 화산재는 30km나 떨어진 미세눔

까지도 날아오고 있었다 로마제국 미세눔

해군사령관이었던 대 프리니우스는 함대에 출동명령을 내렸다.

"모든 배는 폼페이로 가서 바닷가로 탈출한 시민들을 구하라"

함대가 폼페이 항구에 다다르니 배위로 화산재 와

경석이 마구쏟아졌다 바닷가는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프라우니우스는 카스텔라마레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는 폼페이 시민들이 바닷가를 따라 그리로

가리라고 예상했다 헤아릴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닷가를 달려가고 있었다

함대는 서둘러 카스텔라마레 해안에 배를 대고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믿어지지 않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

바람이 돌연 낮게 깔리며 바닷가로 들이 닥쳤다

숨을 못 쉬도록 뜨거운 불기운과 독한 가스가

순식간에 함대를 덮쳤다 구조작업을 지휘하던 대

프라니우스 로마병사들 그리고 막구조되어

안도의 한숨을 돌리던 폼페이 시민들은 독가스에

질식되어 모두 죽고 말았다

소 프리니우스와 몇몇병사만이 간신히

그 곳을 벗어나 이기록을 맘겼다

사흘이 지나자 분화가 멈추고 눈부신 태양이 떠올랐다

그러나 폼페이는 한채의 건물도 없이

한사람의 자취도 없이 모든것이 용암재와

용암 아래 파묻히고 말았다

폼페이와 함께 베수비오 산기슭에 세워진

헤르쿨레늄도 똑같은 불행을 당했다

그러나 두 도시는 서로 다르게 파괴되었다

헤르쿨레늄에는 화산재와 비 용암이 뒤섞인 진흙이 쏟아졌다

그것응 무려 20m 두께로 덮혀

이도시를 영원히 잠재웠다 폼페이는 이와달랐다

흙탕물 대신 잿가루와 경석들이 우박처럼 쏟아

졌고 유황연기가 그뒤를 따라 도시를 덮침으로서

모든 생명을 질식시켰다

폭팔이 끝난 뒤에도 화산재 구름은 바람을 타고 멀리

아프리카에 까지 번져 갔다

1700년이나 흐른뒤 사람들은 그 옛날의 모습이

들어날 때마다 벌린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나 갑작스레 닥친 재앙이었던지 새끼 돼지가

오분에 넣어지려는 찰라 로 발견되었고

반쯤 구워진 빵이 발굴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불쌍한 모습으로 굳어져 있었다

어머니들은 숨이 막히기 전에 힘껏 아기를

감싸안고 있었고 어떤이는 금붙이를 꽉 움켜쥔 채

돌더미에 깔려있었다

어느집 문턱에는 젊은 여자 둘이 집안으로 들어가

 귀중품을 꺼내려고 망설이는 몸짓으로

굳어 있었고 한집에서는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던듯

문상객들이 빙 둘러앉은 채로 자신들의

장례식장이 되어버렸다 모든집이 1700년

전 8월 어느날 한때의 모습을 "동작그만해"인채 간직하고

있었다 도서실에는 두루마리종이가 작업장에는

연장이 목욕탕에는 수세미가 여인숙 탁자에는 손님들이

서둘러 계산한 돈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폼페이는 약3Km둘레의 타원형 도시이다

도시전체를 성벽으로 둘러쌌으며 성문은 모두 8개 길은

바둑판 모양 곧게 뻗어있다 길들은 7m너비로

모두돌로 포장되었고 인도가 마찻길 양옆으로 나있다

길모퉁이마다 공동 수도전이 세워져 있어 집집마다

수돗물을 썼음을 알 수있다

그동안 발굴된 목욕타은 네군데

 한증탕.냉탕.온탕이 갖추어져 있었다

도시서남쪽에서는 광장 세군데 와

극장두군데 (각각800명 5000명수용가능)가 드러나으며

근처에는조합사무소 도량형검사소

시청 체육관 따위 공공 건물이 모여있다

동쪽끝에는 만명도 넘게 수용할수 있는

원형 경기장이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미술품 가운데

특히 큐피트벽화와 "춤추는 폰의동상"은 로마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앞으로 10년 안에 발굴이 끝나면 로마 제국의

문화와 헤레니즘 문화의 눈부신 유산이 더많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어느학자는 이렇게 말햇다

"하나의도시를 완전무결하게 보존하는

방법으로 도시를 화산재로 덮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

 

 

 

 

 

폼페이(Pompeii)베수비오산(Monte Vesuvio)

 

 

 

 

 

1.마리나 성문의 교외빌라

2.마리나성문:폼페이 서

3.고고학 자료박물관:폼페이유적에서 발굴된 출토품의 일부와

발굴에 관한 역사적자료를 전시할 목적으로 세워진 것

2차전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다시세워짐

4.포룸:정치.경제.법등의 기능이 집약되어 있는 도시의 핵심공간 공회당

5.바실리카:사법행정을 담당하던 일종의 재판소같은곳

6.아폴로신전

7.측량소

8.호레아와포룸올리토리움

9.공중변소

10.아취문:포룸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11.유피테르신전 카피톨리움:유피테르신.

유노여신.미네르바여신에서 바처진 것

12.마첼룸:서기1세기에 만들어진 상가

13.라르신전

14.베스파지니아누스신전:베스파지니아누스 황제를 경배하기위한 신전

15.에무마키아건물:섬유 가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건물

16.코미티움:선거용 공공장소 폼페이의 행정관을

선출하기위한 투표가 행해지던곳

17.시정건물:시정을 돌보던곳 오늘날의 시청에해당

18.삼각형 포룸:폼페이 초기시대의 중심가

19.도리아식신전:폼페이에서 가장오래된건물중

하나 헤라클레스를 경배하기위한

신전 전설에의하면 헤라클레스가 폼페이를 세웠다고함

20.삼나움시대의체육관

21.이시스신전

22.유피테르 멜리키오스신전

23.소극장(오데온 ODEON)

24.대극장

25.검투사숙소

26.스티비아성문:폼페이 주변 도시인

스타비아로 통하는성문

27.멧돼지의집:현관바닥의 모자이크그림(멧돼지를

사냥하는그림)에서 이름을 따옴

28.홀코니우스 루프스의집:아우쿠스투스

대제의 행정관이었던 홀코니우스 루프스의집.

29.스타비아목욕장:폼페이 목욕장에서 제일규모가크다

30.홀코니오 교차로:폼페이 주요도로 교차점

31.치타르 연주자의집

32.베르쿤데스의 분데카:섬유가공업 옷감을 팔던

전형적인 공방33.카스카 롱구스의집

34.폴로니카 스테파니:폼페이에서 가장 보존상태가좋은 공방

스테파누스 세탁소의집 이라는뜻

35.라라리움의집

36.지하주량의집:포도주를 저장하던 지하저장고

37.루키우스 케이우스 세쿤두스의집:외벽에 쓰인 선거구호에서 유래된이름

38.메난드로의집:시인 메난드로 의 초상화로부터유래

39.애인들의집

40.파스쿠이우스 프로쿨루스의집

41.사제 아만데스의집

42.에페부스의집

43.아셀리나 테르모폴리움:음료수를 팔던곳 벽에 아셀리나 라는 이름에서유래

44.과수원의집

45.T.발렌스의집

46.로레이우스 티브르티누스의집

47.비너스의집:이집에 그려진 프레스코벽화 비들기 분수 꽃은 매우신선감을 주며

특히 정원에그려진 벽화 비너스와 큐피트가 유명하다 이벽화 왼쪽에는

무기를든 마르스가 그려져있다

48.유리아펠렉스벨라:빌라한채와 공공목욕장 공방을 합하여 이루어진 것

이곳의 벽화는 현재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49.사르노성문

50.대체육관:서기1세기에 들면서 폼페이의경제가 발전하고 인구가 늘어남에따라

포룸에있는 경기장이 협소하여 다시세워진곳

51.원형극장:12,000명의 관중을 수용할수 있는 건축물 주로 검투사 시합장으로사용

폼페이 경기장은 콜로세움과같은 지하통로는 없으나 그대신에 관중석을

덮는 베라리움(천막)을 치는 장치가 있다

52.불사조 테르모폴리움

53.가름공장:일종의간장공장

54.도망자들의밭:수많은 폼페이 시민들의 유골이발견된곳 화산폭발 때 도망치다가

떼죽음 당한 곳이다

55.노체라성문

56.공동묘지

57.포루투나 아우구스타신전

58.검은벽의집

59.조상주의집

60.아리아드네집

61.사냥의집

62.모데스토의 빵제조점:제분기(멧돌)과 밀가루저장소 판매대가 있음

63.발코니가 있는집

64.창녀의집:폼페이에 여러곳의 창녀집이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큰곳

작은방들과 대기실 화장실로 구성되고 벽에는 성적충동을 느끼게

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65.중앙목욕장:62년 대지진 직후에 착공되었으나 79년 화산폭발로 완공되기전

모두매몰 스타비아 목욕장에 비하면 근대적이고 기능적이며

규모가 컸다고함 실내체육관과 다수의목욕실 그리고 스타토리움

이라 불리는 일종의 사우나 시설도 갖춤

66.루크레티우스의집

67.빵제조점

68.은혼식의집

69.100주년 기념의집:베수비오 화산폭발 100년제에 발굴된집

70.L 프론토의집:폼페이에서 가장 우아하고 균형잡힌 집으로 손꼽히는집

71.검투사의집:검투사들이 숙식하던집

72.놀라성문

73.포룸의목욕장:62년 대지진 이후에도 사용되어짐

남녀의 구역으로 나뉘고 각각은 냉탕 온탕 열탕 탈의실등이

갖춰짐

74.목신의집:청동조각 춤추는목신에서유래된이름 원본은 나포리 박물관에

보관중이고 전투중의알렉산더대왕의그림은 이집에서

발견된 가장유명한 것으로 3.5×6m 크기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중

75.금색 큐피트의집:폼페이가문이 살던집 큐피트를 금박으로 그린 벽화에서유래

76.벳티의집:폼페이에서 가장아름답고 흥미로운집이며 보존상태를 세부까지복원한집

폼페이 부유층들이 자신의부를 과시하기위해 화려하고웅장한 저택을

어떻게 지었는지 알 수 있다

77.미로의집

78.아폴로의집

79.메레아그로아집

80.아도니스의집

81.카스토로와폴루스의집

82.비아메리쿠리오 거리의 카우포니아:일종의 대중음식점

83.작은분수와큰분수의집

84.칼리골라의 아취문

85.비극의시인의집:“연극작가를 모사한모자이크에서유래

86.판사의집

87.살루스트의집

88.외과의사의집;수술용 장비가 발견된집

89.에루콜라노 성문

90.비아데이세폴크리:공동묘지가는길이라는뜻 이길은 공동묘지 지역에

펼처지며 고급스러운 빌라주택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폼페이가

성벽밖으로 영역을 넓혔다는 뜻

91.모자이크의집

92.디오메데스의빌라

93.신비의빌라:폼페이교외의 빌라로 커다란 프레스코벽화로유명

 

 

 

1.포르타 마리나(Porta Marina)

 

 

2.고고학 자료박물관

 

 

3.Pompeii Foro Civile(포럼)

 

 

4.바실리카

 

 

5.아폴로 신전

 

 

공중변소

 

 

아취문

 

 

도시 중심에 있는 유피테르 신전

 

 

 

마첼룸

 

 

 

라르신전

 

 

 

 

 

 

 

 

 

 

 

 

원형 경기장

 

 

 

 

 

 

 

 

 

 

 

 

 

 

 

 

 

 

 

 

 

 

카프리섬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세 곳을 꼽으라면

폼페이, 포지타노, 카프리라고 할 수 있어요.

시간이 멈춘 비운의 도시 폼페이의 과거 모습을 보고,

포지타노의 아름다운 절벽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프리섬을 다양하게 즐기는

여행을 추천드리는데요. 세 곳을 여유 있게

즐기려면 적어도 1박2일은 필요하답니다.

당일로 다녀오게 되면 카프리섬을

못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카프리는 포지타노에서 1박을 하고

배를 타고 가면 가깝거든요!

페리로 2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오늘은 포지타노에서 페리를 타고 다녀온 이탈리아

남부 카프리섬 여행을 떠나봅니다!

카프리에서 꼭 경험해야 할 필수 코스 입니다!

 

 

 

 

 

 

 

 

 

 

 

 

 

 

 

 

 

 

 

 

 

 

 

 

 

 

 

 

 

 

 

 

 

 

 

 

 

 

 

살구꽃의서유럽여행앨범(You Raise Me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