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와노래

삼일절에 붙이는글 울밑에선 봉선화야(6부3)

훼브스 2020. 8. 2. 21:42

 

 

 

 

 

봉숭아                 작사 김형준 작곡 홍난파 

                    

울밑에서 봉숭아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모양이 처량하다

 

폭풍한설 찬바람에 네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꾸는 너의혼이 예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이詩는 일제 치하에서 울(日本) 봉선화(朝鮮)을 표현한 한설인 시조입니다일제때 그밑에서 생명을 이어가자니 선각자들의 심정이야 오즉이야 했겠습니까? 일제가 미워 세수할 때 옷이 다 젖을망정 상체를 꼿꼿하게 서서 물을 끼언지셨던
단재 신채호 감옥에서 옥사하셨습니다
 윤봉길의사 1932년 김구로부터 지시를 받고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및 상하이사변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白川義則]와 상하이주둔 장군들을 죽이고 장열이 戰死하셨습니다 일제가 사형을 집행하였지만 저는전사라 부르고 싶습니다. 총독부가 내려다보이는 남향집을 뜯어고쳐서 북향집을 만들었다는 만해 한용운옥에서 집에와 병사하셨습니다

 

義를 위하여 自身의 몸을 초개와같이 버릴수 있던
그분들이 얼마나 尊敬스럽습니까?
 그이유는 나같은 촌부는 고문으로 폭력을 당할때 몇분이나 참아내며 명분을 지킬까?
자문하면 참으로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불의와 타협이 어렵고 해서 거의 어렵게 어렵게 되고 심지어는
장돌뱅이가 되었다는 이도 있고.
 독립 아니 광복후(이미 우리는 주권국이었을때 저들이 강점하였기 광복이 맞습니다) 친일의선봉에선 사람들은 자손들이 번창하여 굴지의 재벌이 된사람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근대사의 선구자들이 의외로 친일한 것이 밝혀져서 놀라움이 컸습니다
우리같은 촌부들이야 그럴수 있겠구나 하고 싶었지만.
 기독교의 거장 한경직목사님이 세계적인 賞狀 수여식장에서
신사참배의 고회성사를 하심으로 인한 번뇌로 이해해야 할것같습니다.
 그들이 후대에 업적을 생각해서???.

 

허나
정신대 나가라고 찬양 독려한 선구자.
학도병 나가라고 찬양 독려한 선구자.
 그들이 그같은 행동은 강요와 억압속에서 할수없는 일이 었지만
진정한 선구자들은
옥사 전사 병사 했던것입니다. 서양에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자결한 한여인이 환생하여 봉선화가 되었다는 꽃으로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이라 합니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테너 박 인수 교수, 피아노 안 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