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홍회

만추의 불영사(경북투어2부)

훼브스 2020. 12. 3. 19:39

 

 

 

2017 11 18

 

불영사로 가는 차창 밖으로 불영사 계곡이

파노라마되어 스치고 있었습니다

기암과 괴석이 줄 이은 협곡사이로 아직

지지 않은 단풍과 낙엽송 누런 파스텔색이

조화되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부석사와 불영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당나라 선묘에 대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료를 찾아보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에는 기록이 없고 오히려 중국의 송고승전(宋高僧傳)

에 그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있었습니다

 

 

 

 

불영사는 신라진덕여왕5(651)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경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천측산에 자리하는데 서쪽 산 등성에

부처님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침으로

불영사라 이름 붙혀졌다 합니다

주차장에서 800m 숲길을 춘성부부와 기념사진도

찍고 낭만적인 늦 단풍 걸었습니다

 

 

 

 

연못에 비춰지는 부처상을 올려다 보는데 촛대

바위가 부처님상인가 ??생각하고 왼쪽 길로

연못을 끼고돌아 보리수열매에 가려진

보물 730호 웅진전을 감상하고 3층석탑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고찰의 잔잔한 멋에 빠져 우리는 이곳저곳을

보는데 출입제한지역 이 넓게 있었습니다

비구승들의 생활관과 기도처 인 듯 보였는데

!!! 이곳은 여승들의 절이었습니다 

 

 

 

 

 

 

 

 

 

 

 

 

 

 

 

 

 

 

 

 

 

 

 

 

 

 

 

 

 

 

 

 

 

 

 

 

 

 

 

 

 

 

 

 

 

 

 

 

 

 

 

백과사전

 

 

울진읍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천축산의

 서쪽기슭에 자리잡은 신라의 옛 절로, 이 절을

중심으로 하원리까지 13km에 걸쳐서 비경을 이루는

불영사계곡이 펼쳐진다.

진덕여왕 5(651)에 의상대사가 세웠는데,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불영사라 했다.

조선 태조 5(1396)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소운대사가 중건하였고 그

 후 1500, 1608, 1724, 1899년에 중수가 있었다.

주차장에서 절로 들어서는 길은 산태극수태극으로

감싸있어서 대단히 매력적이다.

비구니 도량인데, 절 마당의 연못과 연못 옆의 채마밭이,

사찰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명승6호로 지정된 불영사계곡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기암괴석, 그리고 울창한 숲으로

어우러져 신비로우며, 설악산의 천불동계곡,

오대산의 무릉계곡, 보경사계곡에 비해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밀조밀한

경관이 천축산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 주요문화재
1) 불영사 응진전(보물 제730),

2) 불영사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135)

3) 부도(지방 유형문화재 제112)

4) 불영사 대웅보전 (보물 제1201) 5

) 불영사 영산화상도(보물 제1272)

 

 

 

 

 

 

 

 

 

선묘이야기

 

 

 

 

 

 

 

 

 

일찍이 법을 구하러 원효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으나 국경에 이르러 폭풍이 심해

길가의 토굴 속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을 때

마신 해골바가지 음용수 사건으로,

원효는 “세상일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구나[一切唯心造]”

하며 되돌아간 뒤 의상은 홀로 당나라로

향하는 상선(商船)에 오르게 된다.

 

 

의상대사와 선묘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병을 얻어

한 신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집 딸 선묘(善妙)아가씨의 지극한 간병으로

의상은 며칠 만에 훌훌 털고 일어나게 되지만,

의상에게 마음을 뺏긴 선묘아가씨는 도리어

중병을 얻게 된다.

의상의 종남산(終南山) 10년 수도 중에도

선묘의 가슴앓이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당나라의 신라 침공 계략을 전하기 위해

귀국을 서두르는 의상이 전날 신세졌던 등주의

신도 집에 잠깐 들렀으나 선묘를 만나지는 못했다.

뒤늦게 알게 된 선묘가 대사를 위해 마련한

법복을 들고 해변으로 달려갔지만 배는

이미 멀리 떠나고 있었다.

그녀가 간절한 맘을 담아 법복을 던지니

마침 거센 질풍이 떠나는 배 위까지

날려주었다 한다.

다시 “이 몸이 용으로 화신하여 저 배를

지키게 해 주소서!” 하고 바다에 뛰어들었고,

마침내 용이 되어 배를 안전하게 신라까지

당도시킬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로인해 당당한 의상을 보고 단번에

반한 중국아가씨 선묘낭자는 그녀 러브스토리의

영원한 주인공을 쫓아 낯선 신라 땅에서의

이국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으므로, 기록을

한다면 최초의 다문화가족인 셈이다.(모셔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