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여행기

밀라노가는길 용병이야기 (유럽여행11부)

훼브스 2020. 7. 24. 14:10

 

 

중앙 스위스 기 양옆은 州 기와 고장을 표시하는 기

 

 

 

 

 

 

1818년채택 1848년 제정

 

스위스 국기는 유럽국기중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한다.

 

 

 

 

 

 

 

십자는 기독교국가입을 뜻하고 13세기경 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슈비츠 州에 하사하여

 

자유위 상징으로 삼은 기에서 유래 백십자는 14세기 무렵부터

 

스위스軍 의 기치(旗幟)로 쓰여왔다

 

국기는 전통적으로 자유.명예.충성.을 나타내어

 

왔으며 현대에는 중립성 민주주의 평화 보호도

 

상징한다 1815년 22개주가 연방을 이루면서 국기로 사용되었고

 

1848년 정식 제정하였다.

 

국제적십자 기는 독같은 모양에 색깔만 반대이다

 

국제연합(UN)이나 올립픽등과 같은 국제무대에서는

 

 3:2비율의 국기를 사용한다

 

 

 

 

 

 

 

 

 

 

 

바디칸 시국 관광시 찍은  근위병

 

 

인터라켄 에서 출발 밀라노로 가는 밖의 세상은 

 

아름다운 산과 호수로 이어졌다 

 

 

 

 

 

 

 

 

 

 

 

 

 

 

 

 

 

 

 

 

 

 

 

 

버스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위스 산과 호수가 계속 이어졌다

달리는 버스에서 촬영  

 

 

 

 

 

가이드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백세유 궁전에서 관광 끝내고 나와서

 

스위스 용병들의 信義와 용맹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는데

 

스위스 산악지대를 넘으며 다시한번 그들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스위스는 현재  법으로 자국인이 외국군대에 편입을 못하게 하였지만 

 

단 한곳 바디칸 시국의 교황청의   근위병 파병은  예외로 하고 있다한다

 

지금은 관광과 가내공업 발달로 인해 국민소득이 높지만 불과 몇백년전

 

중세의 스위스는 산과 호수로 이어져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여러나라에 용병으로 나가 가족들을 부양하였다 하는데

 

복종과 신의가 돈독해 배신 이라는게 없었다

 

심지어 첨예 하게 대립 하는 양국에 모두 용병으로 참전한 스위스 용병들은

 

주인을 위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주인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이유는 우리가 신의를 잃으면 내 후손 들을 누가 용병으로 받아 주겠냐는

 

신념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이처럼 절대적인 충성심 때문에 스위스 용병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환영 받았는데 1505년 6월 교황 율우스2세는 자신의 신변 경호를

 

위하여 스위스에 용병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해 가을 스위스를 출발한 150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700km 행군하여이듬해 1월22일 로마에 도착한다.

 

바로 이것이 바티칸 시국의 군대이자 교황의 경호대인 스위스

 

근위대의출발이었다 합니다

 

그 전통은 1527년 5월 부르고뉴(현재의 네델란드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이며 스페인 국왕이었던 샤롤5세가 로마를 침략한

 

"로마약탈"에서였다 한다 프랑스및 다른 연합국의 군대는

 

모두 스페인군에 항복하였으나 그들은 끝 까지 싸워

 

그들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 을 보여주었다.

 

이 전투에서 근위대는 189명의 근위병 중 147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까지교황 클레멘스7세를 끝까지 보호해 포위망을 뚫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 시켰다 한다.

 

이때부터 교황청 근위대는 전원 스위스 청년들만으로 채워져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간다고 한다

 

당시 목숨을 구한 클멘스7세 교황은 스위스 근위대 장병들에게

 

자신의 출신 가문인 메디치가를 상징하는 노랑과 파란색 줄무늬

 

군복을 입힘으로써이들에 대한 특별한 신뢰를 쌓았다 한다.

 

오늘날 스위스의 손꼽히는 휴양도시인 루체른에는

 

 “빈사의사자상” 이라는유명한 조각상이 있다 하는데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 꺾여진 프랑스 브르봉 왕가의 방패를 껴안고

 

고통스럽게 마지막 숨을 내쉬는 사자의 모습이다.

 

 

 

 

루체른에있는 “빈사의사자상"

 

 

 

이 사자상은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루이16세의 근위대 였던

 

위스 용병들을기리기 위한것이다 한다.

 

당시 루이16세는 시민군에게 포위된 상태였고

 

다른 근위대들은 모두 도망가 버린 상태에서 스위스

 

용병들만이 남아 루이16세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판단한 루이 16세는

 

스위스 용병들에게

 

“그대들과는 상관없는 싸움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라” 고

 

권했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信義는 목숨으로 지킨다”는

 

말과 함께 끝까지 항전하다가

 

786명의 대원 모두 전사 전멸하고 말았다 한다.

 

지금도 110명으로 이루어진 교황청 근위대는 자국에서

 

병역을 마친 19세에서30세에 키175m 이상의 카토릭

 

신자로 구성되고 군복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디자인 하였다 한다

 

 

 

 

 

 

 

 

 

신병 교회와교황 에게 충성을 서약 하고 있다

 

 

 

 

이글은 위키백과에서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