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여행기

단테와성십자가성당 (유럽여행32부)

훼브스 2020. 7. 24. 15:32

 

 

 

 

 

단데의 생가 앞에서 서게된다.

 

집시 여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이드가 설명하는 생가를 고개를 젖이고 보는 우리에게

지팡이로 땅을 두둘 기며 바닥에 그려진 단테의 얼굴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의 기이한 옷 차림과 지팡이에 의지한

늙은 육체를 촬영하려다 바로 단념하게 된다

가슴 아픈 연민이 밀려왔다  

 

 

지난 세월의 정신적 암울한 터널을 생각

하면 괴로움이 밀려 온다 단테가 지옥1편에 소개하는

번뇌는 어쩌면 나를 염두에 둔 글이 아닌가 싶었다

 

지옥편1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헤메고 있었다

 

마치 바다에 빠질 뻔하였다가 간신히 숨을 헐떡이며 해변에

도달한 사람이 위험한 바닷물을 뚫어지게 뒤돌아보듯

아직도 달아나고 있던 내 영혼은 살아 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길을 뒤돌아서서 바라보았다

잠시 지친 몸을 쉰 다음 나는 황량한 언덕 기슭을 다시 걸었으니

언제나 아래의 다리에 힘이 들었다.!!!!!

 

 

단테의신곡 과 루소의 참회록(매우두꺼운)

과 같은 책들을 몇 번이고 읽기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생각이

났다 그후 단테의 신곡 만은 대강 대강 보았던 기억이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 로마의 베르길레우스. 피란체의 단테를

서구의 3대 시인으로 불린다. 베르길레우스를 단테의 안내자로

그린 것은 자기가 시성의 정통성을 부여 받은 자임을 암시하는

것이라 한다

 

단테의 세례명은 두란데(durante) 인데 그뜻은 참고 견디는 자라

는 뜻이다 그가 35세때 총리에 해당되는 프리오레에 선출되었다

당파싸움에 희생되어 1302년에 피란체에서 추방된다 신곡은

그때 나왔다

 

단데 의 신곡(La Divina Commedia)

은 저승세계로의 여행을 주제로 한 13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가 1308년부터 죽은 해인 1321년 사이에 쓴 대표서사시이다

저자와 같은 이름의 단테라는 이름을 가진 여행자 단테는 여행 안내자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와 함께 지옥-연옥-천국으로 여행 하면서

그 곳에서 수백명의 신화상 혹은 역사상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죄와벌 기다림과 구원

관해 철학적 윤리적 고찰을 할 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의 신학과 천문학적

세계관을 광범위 하게 전하고 있다 한다.

당시 상류층이 쓰던 란틴어 가 아닌 자기의 고장 토스카나

방언으로 신곡을 썻기 때문에 이탈리아어의 생성과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다.

 

그 당시 인식의 한계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지옥에 떨어지고

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철인들( 플라톤 호메로스) 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그의 시신은 그가 사망한 토스카나지방 Ravenna 에 있다

그를 추방하고 그가 사망후 100여년이 지나서야 단테의 위대함을

인식하게된 피란체는 라벤나에 그의 시신 반환을 요구하여 교황청의

명령까지 이끌어 냈으나 라벤나 측은 그의 시신을 빼돌리면서

까지 저항하였다 한다 피란체가 유골 반환을 요구한때가 단테

사후 500 여년이 지난뒤 그제서야 단테는 숨겨진 곳에서 나와

라벤나 성프란시스코 수도원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찾았다 하니

우리나라 조선왕조의 처절한 당파싸움으로 수많은 의인들이

귀양 가거나 참수 당한 것이 생각 났다

 

 

 

 

우측  멀리보이는 뾰족 탑 이 성 십자가 교회

 

 

 

 

 

 

 

 

 

 

13세기에 지어진 프란체스코회 최대의 성당이자 피란체에서

제일 큰 성당이다 성당 안에는 마키아벨리.갈릴레오갈릴레이.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빈찌.등 피란체를 빛낸 276명의

장례 기념비가 있다

 

 

 

 

 

 

성당 앞의 단테의 동상은 단테를 추방한 과오를 반성하는

의미를 지녔다 하는데 실제 단테의 묘는 라벤나에 있어

성 십자가 성당에 있는 것은 가묘라 한다

 

 

 

성프렌시스코의 십자가

 

성당내부

 

 

 

단테의 기념비 (가묘)

단데의 고향은 피란체이다 정쟁에 휘말리어 추방당하게

되고 라벤나로 이주하게 되는데 라벤나에서 죽게 된다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였지만 살아서 돌아가지못하였다

그리하여 고향인 피란체와 죽음을 맞이하여 진묘가 있는

라벤나 는 단데의 시신을 모시기 위한 논쟁이 벌어졌으나

결국 라벤나의 굳건한 단데 지키기위한 투쟁으로 단데는

라벤나에 남고 피란체엔 단데의 가묘를 만들어 기념비를

만들게 되었다 

 

 

 

 

 

1.갈릴레오 갈릴레의 묘

 

 

 

2.레오나르도 다빈찌의 묘

 

 

3.미켈란젤로의묘

 

 

 

4.마카아벨리의묘

위글은 위키백과를 인용해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