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여행

고야의고향 사라고사(스페인여행14부)

훼브스 2020. 7. 25. 15:09

Zaragoza(사라고사)

 

 

 

2016719일 화요일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3인이 있다

대 문호 세르반테스. 18세기 낭만주의 작가 고야

입체파를 연 파블로 피카소.

오늘 고야의 고향 사라고사로 가고 있다

 

 

 

Madrid 에서  Zaragoza 까지 거리 313.9km 4시간

 

 

 사라고사(Zaragoza)는 아라곤 지방의 수도이자

스페인의 5번째 대도시로 수도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

중간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자연스레 물류 교통 중심지로

성장헀다 원래 이곳은 살두바라고 하는

켈트족의 거주지였다

그러나 쎄싸라우구스따라고 하는 로마인들의

거주지로부터 사라고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에브로(Ebro)강이 보이며 팔라르 성모성당의 둥근지붕과

탑들이 그림처럼 보이는 다리를 건너 사라고사에 들어섰다

 

 

 

 

 

성당앞 광장에서 가이드는 성당을 설명하며 내부 관람시

두 가지를 찾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나는 스페인 내전(1936-1939) 때 성당을 뚫고 들어와서

성당이 파괴 될 뻔 하였는데 기적적으로 불발되어

하나님의 은총으로 성당이 보존된 불발 포탄2발과

둘째는 고야의 그림 두점 이 있는데 찾아보아라고 문제를

내었다 성당을 견학하는데 그 웅장하고 장쾌한 성당내부에서

고해 성사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밖으로 나와 고야의 동상앞 분수를 보는데 분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천진스러웠다

어느 나라건 어린이들은 똑같이 귀여웠다

번잡거리에서 모로코계통의 거리 상인들이 소품들을

팔다가 경찰차가 순찰을 돌면 재빠르게 바닥천을

들어올리며 보따리가 되는데 우리는 구경하지만

그들은 생계가 달린문제였다

 

 

 

 

 

 

필라르 성모성당

 

 

 

 

 

 

성당내부

 

시내를 가로지르는 에브로(Ebro) 강가에 있는

필라르 성모 성당은 화려하게 타일을 붙인 11개의

 둥근지붕으로 유명하다.

 필라르(Pilar)는 스페인어로 기둥이란 뜻인데,

옛날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신앙을 전파하러 온 야곱에게

 기둥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 성당의 천장에는 이 도시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인

고야(F.Goya:1746~1828)의 천정화가 있다.

 

 

 

불발된 포탄 두발

 

 

고야 그림

 

스페인 시민전쟁시

이 성당을 뚫고 들어온 포탄 2개가 다행히 불발이 되었는데.

고야가 그린 프레스코화는 오늘날까지 무사히 보전되었다.

성당 내부에 있는 산따 까비야는 벤뚜라 로드리게스의 작품으로

빛나는 은과 꽃들 사이의 기둥 위에 작은 성모상이 있다.

성당 한 켠의 작은 보석박물관에는, 역대 성당 주교들의

장신구, 18C 귀족들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기증한 각종

보석들이 전시되어있다.

그중에는 에바 페론의 귀걸이도 있다.(위키백과)

 

 

 

 

 

 

 

 

 

 

 

 

필라르 광장에서 선교하는 합창단

 

 

 

거리 카페에서 잡화를 파는 이스람인

 

 

 

순찰차가 오면 노점상들은  보다리를 챙겨 급히 이동한다

 

 

 

필라르 거리에 이방인 보따리 상인

 

 

프란시스코 고애는 1746년3월30일 스페인 아라곤지방의 푸엔데토도스에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호세베니토데 고야 이 프랑크는

도금업자 였으며 1749년 무렵 고야의 자족은 사라고사에 집을 마련하였고

몇년후 그곳으로 이사하였다

어릴때 부터 재능을 보여온 고야는 14세가 되자 호세 루산의 도제로 들어갔다

 

궁중화가를 거치고 파란 만장의 삶과 나폴레옹침략 전쟁을 겪으며

1793년 에서 1794년 사이 고향으로 피신한 고야는 일련의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이시기 그는 머리를  울리는 이상한 소음과 청각상실로 고통받고 있었다

신경쇠약에 걸린 그는 이시기에 환상적이면서도 악몽을 표현하는 어두운

그림들을 남겼다 이러한 그림들은 만년의 고야가 그린 검은 그림들과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

1799년 그는 마카브르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주는 82개의 판화들을 묶어

"카프리초소"를 발표한다

이러한 제목을 붙힌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모든 문명 사회는 수 없이 많은 결점과 실패로 가득차 있다

이는 악습과 무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이기심으로 인해 널리 퍼진 편견과 기만적 행위에 의한 것이다 "

 

 

 

1808년 5월2일 맘루크의돌격 1814년 고야 프라도 미술관

도스 데 마요 봉기(Dos de Mayo) 는  1808

년 5월2일 마드리드 시민들은 도시를 점령한 프랑스군에 저항한다

이저항 봉기는 야만적인 프랑스군 근위군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널리

퍼져 나갔고 이사건은 스페인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1808년의 5월3일의 처형(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전역은 프랑스 침략군에 의해 학살과 죽음 공포에 떨었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전쟁의 참상을 그림을 통해 고발하였다

"1808년의 5월3일의 처형"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피카소에게 여향을 주어 게르니카나 한국전쟁같은 전쟁참상을

그리게 하였다

 

 

 

 

 

 

 

 

 

 

 

 

 

 

 

 

 

 

 

판화집 "전쟁의 재난"

 

 

피카소의 "한국전쟁"

 



 

고야는 프랑스에세 목이없는 시신이 스페인으로 운구

되었다 한다 고야의 무덤으로 알려진 마드리드의

산 안토니오 데 라 플로리다 성당(San Antonio de la Florida)

 

 

 

 

 

사라고사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