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15일 금요일
포르투칼 여행에서 제일 보고 싶었던 신트라 에 왔다
여행객을 실은 마차가 다니고 꼬마기차 같이 생긴 무선차가
다니는 번잡한 거리에서 담장에 핀 꽃들이
동화처럼 펼쳐졌다
녹색 언덕위에 아름다운궁전과 무어성 사치스런 빌라와 장식
바닥에 깔린 오래된 타일 보도 주변 레스토랑과 카페가 신트라 광장
앞에 있었다
이곳은 마치 안델센 동화의 마을 같았다
보라꽃 숲속으로 두 개의 굴둑 기둥이 그림같이 펼처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이곳을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하였다
특히 신트라를 찬미했던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장편서사시 “차일드 해롤드의편력”
(Childe Harold′s Pligimage)에서 이곳 신트라를
예찬하면서“위대한 에덴”이라고 하였다
그의 칭송대로 로마시대 유적 유럽특유의 아기자기하게
꾸민 상점들 앞에서 마냥 즐거워 하는 것 은
여행의 참맛이다
시인 알폰소 로페스비에이라는 신트라가 자연의 경의로운
손이 창조해낸 가장 사랑스럽 다여 유럽의 어느도시도
비견되지 않는다 칭송하였고
낭만주의 영국의 시인 로버트사우디 (Robert Southey)
는 지구상 사람이 살고 잇는 땅 중에서 가장 축복받은
아름다운 곳이라 극찬하였다 한다
우리는 골목을 돌아 다니며 타일 벽화를 감상하고
공예품에 마음 뺏기고 꼭 사춘기의 소년소녀처럼
하고 다니다 효숙님이 며느리 에게 선물한다며
콜크 로 된 클로스 빽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였다
집합장소엔 차길이 막혀 버스가 못오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최고령 여고동창생6명은 멋진
코러스로 조용남의 “모란동백“을 부르고 있었다
신트라에 도착하면 우리나라로 치면 통영의 동피랑 마을
처럼 아기자기한 모자이크 타일바닥이 되어
있는 골목길에 공예품 악세사리 가죽제품등 다양한
상품을 파는 옛 시가지가 언덕에 좁은 골목이
재미있게 퍼즐모양 엉켜있다
이좁은 길에 마차가 다녔고 지금도 승용차들이 골목을
누빈다
15-16세기에 건설된 신트라 궁전
오랜세월 여름동안 왕실 가족들의 여름별장 신트라 궁전
무어인의 성채
무어인(Moors)라는 용어는 이슬람계인으로서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여왔으며
그들은 아랍계나 베르베르족의 후손들이다
현재까지도 포르투칼이나 스페인의 이슬람계인들은
무어인들의 흔적을 닮아 있다 한다
궁전앞의 포르투칼 경찰들 과 악수를 하다
모자이크 바닥타일과 벽화는 환상적이다
공에품점에 진열된 세라믹 닭 공예품
가이드의 설명에 웃음보가 터졌다 서양에서는 닭의 표상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이유가 베드로의 참회때
닭이 3번 운데서 비롯하였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암딝이 울면
집안이 재수가 없다는 비하하는 습관이 있다 하면서 웃음을
유도하였지만
우리나라도 닭에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있는것은 아니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時報의 역할을 하였으며
앞일을 에지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새벽에 닭이 울면 잡귀가 물러가고 맹수들이 돌아간다
여기었다
물론 초저녁에 닭이울면 재수가없고 오밤중에 울면 불행해
지며 해진뒤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도 있다
신트라 궁전은 이스람들이 건축한것이다 터키의 톱카프궁전
식당 굴둑과 닮아있었다
신트라의 교통수단 들
신트라의 주택들은 그림같다
간추린 신트라 역사
신트라는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무어성(Mouros 이스람 모로코인 城)에서
발견되는 신석기 유물 그리고 BC5세기에서 장식
도자기와 세석기(microlithic)시대 부싯돌기구 포함
신트라 산에서 많은 말있는 금석 병영시대(chalcolithic)
의 꽃병을 포함한 도자기 조각들이 발견 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의 흔적도 몬테에서 레노 도시와함께
신트라 산맥의 여러곳에서 발견되었다
BC9-6세기때 늦은 청동기 시대의 유명한 신트라 칼라
유물은 1900년 이후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철기시대 까지 의미가 있는 고고학 가치가 있는 신트라는
살기 좋은 비옥한 토양 기후 다구스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에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
2세기 중반 로마가 점령을 시작하던 즈음
오리시포(Oli ssipo 현재의 리스본)는 로마 영방(領邦)
일부였다
지역 거주민 들은 로마의 생활방식을 열정적으로
지금의 신트라 도시지역에 로마인들이 정착하여 살았다
또한 고고 유물들은 로마와 비잔틴시대 후반에 신트라
지역과 북아프리카 사이에 무역거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트라 정착지에 대한 최초의 기록에는 그곳이 무어인
정복 시대부터 리스본에 종속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곳은 1093년 레온(Leon)의 알폰수6세(AlfonsoⅥ)에
의해 처음으로 해방되었지만 2년후 무어인에게 다시
재점령 당했다
1147년에 리스본이 정복 시트라는 아폰주 앤히케스 왕에게
굴복 7년후 콘세요 자치시로 선언후 혼혈인종들이 나타난다
1181년 탬풀 기사단의 탄압후 아폰수 앤히케스는 탬플기사단이
소유한던 포르투칼의 토지를 그리스도 기사단에게 넘겼다
1383년부터 1385년까지 위기싱황 동안 신트라는 중안에게
마지막으로 항복한다
그결과 다니스왕이 그곳을 강탈해 여왕의 궁전으로 사용하였다
아폰수는 16세기 후반까지 그곳을 왕실의 여름별장으로
쓰려고 위풍당당하게 왕궁을 세웠다
15세기 후반의 신트라는 완벽한 왕자(Pertfect prince)
주앙의 미망인이며 포르투칼에서 가장 위대한 여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오노르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도시가 확실하게
왕과 연결된 것은 마누엘1세의 보호아래에 있을때였다
왕궁을 대폭 확장했으며 역사적인 항해에서 귀환하는
바스쿠다가마를 지켜본뒤 페냐의성모마리아 수도원을 건립
하였다
그뒤를 이은 왕들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
전언에 의하면 세바스티앙 왕은 이곳에서 시인 카이스몽
이 읽어주는 서사시를 듣곧했다 한다
19세기 페냐 궁전은 언덕과 숲의 멋진 전망과 함께
마을 높이 앉아 있다 페냐 궁전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었고
오페라의 모양을 가지고 자신의 로얄피를 달라는 왕의 의지에
의해 지어졌다 벽의 장식과 탑 등 궁전은 신화속의 생물의 동상
들이 아름답고 선명한 파스텔 색상으로 칠해져있다
여왕 아멜리아는 망명하기전 페냐궁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신트라 페냐 궁전
상징적인 페 냐 고궁은 원래하는 Nossa세뇨라다
페냐의수도원에 만들어졌다 포르투갈의페르디난드I2세 의
지시로 를 통해 광범위 하게 개조하였다
페 냐 고궁:18-19세기포르투갈의군주의여름 별장
무어성
포르투칼 고대유물
신트라의장식퀸타Regaleira
Seteais궁전신트라에 걸쳐 발견낭만주의건축 양식을 따라아름다운신고전주의궁전입니다.장소는고급호텔로 개조되어있지만,근거테라스방문자가탐험을 위해열려 있습니다.
신트라의 장식 마을 회관
고딕스타일국립 고궁광범위국가의 성장에15세기와 19 세기태어난증인사이
포르투갈의귀족에 의해 사용되었다.궁전의가장 독특한외관기능은
국가내부객실은궁전의광대 한역사를반영하면서부엌에서연장
두 개의거대한굴뚝입니다.
페 냐 고궁
신트라에서 가장 상징적 인기 념물은 페냐 고궁,퀸타드Regaleria과
신트라국립궁전신비로운세계같은꿈속으로 빠져들게
녹색풍경주위곳곳에작은보물,사이 앉아있다.
몬테드루아(달의언덕)에 위치한, 그것은포르투갈의 왕자페르난도II의
명령에 의해1836 년에지어졌다.그분홍색과 노란색외관은
다양한건축 양식을 결합, 그것은동화에서뭔가처럼 보인다.
그것은네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져 있습니다;외벽,수녀원,
아치마당과궁전영역.당신은궁전의 좋은,편안한여행을즐길 수
있는최소시간 반이 필요합니다.
무어 城
팔라시오 다 regaleira
헤갈레미아 별장 정원의 lnitiation wall
신비스러운 우물
Azenhas do Mar
포르투갈본토 유럽의가장남쪽 끝지점에서, 대서양이
내려다 보이는 거대한 절벽위에 땅끝 마을 .
선사시대 거인의화석발자국이 있는곳이며 로서문자
그대로'특별한망토
를 의미하는 에스피 체르 곶은
고고학자와 공룡팬들을위한 아주특별하다!
쥬라기시대의놀라운화석및 표시는바위에
여기해변에모두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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