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EBS 교육방송에 크메르왕조의 흥망을 다룬
다큐가 방영되었다
앙코르왓트 와 바이욘사원의 본래모습을 시뮬레이션 (Simulation)
식으로 원상복구 영상을 보았다 전 인도차이나 반도를 석권하였던
그들의 영광에 큰 영향을 끼쳤던 3대 왕을 소개하며
앙코르 왓트 회랑 1층의 부조상을 알아보았다
1층회랑은 둘레가 804m이다 서쪽회랑은 187m
남쪽회랑은215m이다
부조를 보고 있으면 생생한 전투장면과 전쟁과 평화
천국과지옥을 볼수 있다 그러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앙코르왓트 부조
1층남쪽회랑 (쿠르 평원의전투)
1층맘서쪽(수리야바르만2세.천국과지옥.우유바다 휘젓기)
1층 북쪽회랑(비수누의승리.크리슈나의승리.비슈누와 칼라네미)
1층 북서쪽(코푸라.링카의전투)
1. 자야바르만 2 세--프롬꿀렌
서기 802 년(우리나라로 치면 통일신라 중후기에 해당 합니다.) 자바에서
15 년간 인질로 있다가 풀려 난 자야바르만 2 세가 수진합, 욱진랍
두 개의 진랍국을 병합한 후 촤초의 앙코르제국을 건립한다.
타국의 침략에 대비해 4 곳의 도읍지를 정하고 그 중 한 곳인 마헨드라
파르바타(지금의 프롬꿀렌)에서 왕은 신이고 신이 곧 왕이다라는<데바
라자-Devaraja>의식을 거행해 국민들의 지지와 결집을 모아
앙코르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다.
이 왕의 재임시의, 활동과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이 없고 비문
에 나타난 내용을 토대로 추정할 뿐 이다.
850년 앙코르제국의 다음 도읍지인 하리할랄리아(지금의 롤로스유적군)
에 돌아 와 숨을 거둔다.
2. 수리야바르만 2 세---앙코르왓트
12세기 초 롭부리Lopburi지방에서 왕족으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지혜롭고 총명했고 용맹했다. 거기다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되겠다는
야망도 있었다.
1113년, 드디어 쿠데타를 일으켜
그의 백부인 다닌드라바르만 1세 (Dharanindravarman I )를 죽이고
17세 어린나이에 명실상부한 통일
크메르제국의 군주로 등극한다.
역사는 조카가 백부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그날의 참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코끼리에 올라 왕을 살해했다. 가루다Garuda가 뱀을 습격하여
살해한 것과 같았다>. 이 젊은이가 바로 앙코르왕조의 수리야바르만2세
(재위 1113~50경)이다.
3. 자야바르만 7 세---앙코르톰
초기생애
앙코르 왕가 출생이며 자야라자데비 공주와 결혼했다. 그
녀는 신심이 깊고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야바르만 7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과 재위 초에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가 죽자 자야바르만 7세는 그녀의 언니와 결혼했다.
언니 역시 신심이 깊었으며 학식이 있어 이전에 그녀는 불교사원의
수석교사로 임명된 적이 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현재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참파 왕국
근처에서 살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아버지 다란인드라바르만 2세(1150~60 재위)가 사망했을 당시 그
는 참파에서 군사 원정중이었으며 그의 형(사촌인 듯함)
야소바르만 2세(1160~66 재위)가 즉위하자
자야바르만 7세는 참파에 그대로 남았다.
뒤에 그는 궁정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캄보디아로 돌아왔으나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트리부바나디티아바르만(1166~77 재위)이 야소바르만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고, 고향에 머물면서 왕위를
계승할 기회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약 12년 후 자야바르만 7세가 5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참파 왕국이
침입하면서 그 기회가 생겼다.
참파의 침입으로 트리부바나디티아바르만은 죽고 앙코르는
약탈당했으며 참파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자야바르만 7세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5년이 채 못 되어 침략자를 내몰았으며
캄보디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1181년 그는 드디어 61세의 나이로 그는 재건된 크메르 제국의 왕위에
올랐으며 30년에 걸친 황금의 치세가 시작되었다.
이 기간에 제국은 그 영역 판도나 왕실 건축 분야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건설사업
자야바르만 7세는 재위 동안 정복사업을 계속 벌여 참파, 남부 라오스,
말레이 반도와 미얀마 일부를 그의 지배하에 두었다.
그러나 그는 점차 자신의 정력이나 조직 능력을 선대의 왕들이 해왔던
종교적·정치적 건설사업에 쏟았다.
그는 바욘을 비롯한 많은 멋진 사원을 새로 건립했다.
사원은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대승불교식 피라미드 사원으로서
왕실신앙의 중심점이자 자야바르만 자신의 능묘로 지은 대승불교식
장례사원으로 자야바르만의 부모에게 헌정되었다.
수많은 지방 사원에는 부처의 상징과 함께
자야바르만 7세를 묘사한 왕실 불상의 축소 모형을 두었는데,
그 원형은 바욘에 안치했다.
그는 현재의 앙코르 톰인 앙코르 시를 재건했고 간선도로도
확대하여 도로는 바욘과 왕국으로부터 각 지방으로 뻗어나갔다.
이 도로들을 따라서 100개 이상의 휴양소가 지어지고
100개 이상의 병원이 만들어졌다.
자야바르만 7세는 왕국의 전역에 병원들을 설치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위대한 부처인 바이샤지아구루 바이두리아프라바의 가호 아래 두었다.
그의 시대에 건설된 사원들에서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자야바르만 7세는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건설사업을 진행하는 데 집착했던 것 같다.
어떤 학자들은 자야바르만 7세가 사원 건설에 조급한 마음을 가졌던
이유는 그가 많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부족한 시간이나마 효율적으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한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또다른 학자들은 대부분 불교건축물인 방대한 건설계획은 불교,
특히 불교사원 건축에 큰 노력을 기울였던 아내 자야라자데비와
그녀의 언니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야바르만 7세가 나병환자로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학자들의 추측이 맞는다면 자신의 죄를 덜고 공덕을 쌓음으로써
두려움을 이겨내겠다는 마음이 그의 신심과 종교적 열정에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의 진짜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크메르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자야바르만 7세가 이룩한 정도의 업적을
남긴 왕은 거의 없다.
현대의 명성
앙코르 왕국의 역사에서 자야바르만 7세가 그토록 중요한 인물이었는데도
후대 캄보디아 역사책에는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근대에는 그의 치세에 해당하는 시기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흥미를
끌면서 자야바르만 7세는 모범적인 민족영웅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캄보디아 국가 영토를 가장 넓게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영향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하여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캄보디아인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야바르만 7세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보다 공정하다.
학자들은 자야바르만 7세가 성취한 거대한 업적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왕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과도하게 소모했기
때문에, 이후에 크메르 제국이 창조성을 상실하고 마침내 몰락하게
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쿠루 평원의 전투 부조가 시작되는 입구가 나온다.
벽면에 부조되어 있고, 바깥으로 기둥이 있어
자연 채광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쿠루 평원의
전투 부조의 길이는 약 48.35m 정도 이다. 그리고
부조 높이가 2m 정도(서 있는 사람과 비교)되므로 신화의
이야기를 빨리 찾기 위해서는 아래에서 설명하는 특징적인 장면이나
갖고 있는 도구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쿠루 평원의 전투(Battle of KuruKshera)
쿠루 평원의 전투는 마하바라타 중의 한 이야기다
마하는 위대하다는 뜻으로 위대한 바라타족의 일대기를 이야기한다
전쟁에 있어서의 다르마(법 덕목 올바름)등을 이야기하는 교훈적인
서사시이다 그중에서 앙코르와트의 부조는 쿠르족의 와의 계승권을
둘러싼 쿠루 평원에서의 치열했던 전투장면 일부를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악의 축인 카우라바 100명의 형제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부조 반대편에서 는 선의 축인 판다바 5명의 형제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인다 회랑 중간으로 가면 양쪽에서 오던
군대가 마주치면서 서로 격렬하게 전쟁을 한다
마하바라타애는 크리슈나가 등장한다 크리슈나는 비슈누 신의8번째
화신이다 크리슈나가 판두의 아들들과 함깨 최후의 승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 쿠루 평원의 전투의 주 줄거리이다
마하바라타는 비슈누 신이 그려내는 또 하나의 대하 서사시인
셈이다
마하바타라 이야기는 야마야라나와 함께 인도의 대표적 서사시로
바라타 왕국의 왕이 죽은후 큰아들(드리타라슈트)이 장님이어서
동생인 판두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판두는 실수로 신의 저주를 받게되자 수행을 위해 왕위를 장님인
큰형에게 잠시 맏기고 떠난다
이후 판두의 다섯아이들이 태어나고 사촌인 카우라바(Kaurava)
형제들에게 왕위를 돌려 줄 것을 요구하나 카우라바 형재들은
아버지가 장님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이유로 거부하자 사촌 형제들의 오랜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초기에 판다비와 카우라바 형제들은 각각 크리슈나(비슈누의
8번째 화신)에게 자신의 편이 되기를 부탁하는데 크리슈나는
먼저 도착한 판다바 형제들에게 자신의 잘 훈련된 백만 대군과
싸우지 않는 자신중 하나를 선택하라한다
판다바 형제들이 크리나슈를 선텍헤서 판다바형제와
크리슈나는 같은 편이된다 18일간의 쿠루 평원의 전투중
사촌간의 왕위 쟁탈 전쟁에 대해 아르주나(Ariua 반다바의 셋째아들)가
괴로워하자 크리슈나가 나타나 이번 전쟁의 정당성을 설명하자
정의(다라마)를 이해한 아루주나가 상대편 총사령관인
비슈마(증조할아버지) 두르나라(스승)를 죽이고 승리를 한다는
이야기다
바슈마의 죽음
1.아루주나 2.화살맞은 비슈마 3.가우라바 4.판다바
아루주나
화살과 창끝에 누워 있는 사람이 비슈마이다. 온 몸에 화살을 맞았다.
왼쪽에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사람이 아르주나이다. 비슈마에게 화살을 쏴서
죽게 만든 영웅이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부조되어 있다.
비슈마 오른쪽에 슬퍼하고 있는 5명이 판다바의 5형제이다
(왼쪽에 화살을 쏘고 있는 아르주나가 있으므로 오른쪽에는
4명으로 부조해야 할 것 같지만, 쏘는 시점과 슬퍼하는 시점이
다른 경우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는 한 부조 안에
한 사람이 동시에 나올 수도 있다). 비슈마 아래 창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카우라바 100형제들이다. 카우라바
100형제들은 비슈마의 유언을 듣고 있다.
비슈마는 판다바와 카우라바 형제들의 증조 할아버지이다.
바라타족의 산타누 왕이 강가의 여신을 사모하여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자신의 이상한 행동을 묻지 말 것을 약속하였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강가에 버리는 것이 이상하여, 8번째 아이를 버리기 직전
그 이유를 물으니, 8명의 신들의 저주를 풀어 주기 위해서라고 알려주고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다.
나중에 아기가 소년이 되었을때 산타누 왕에게 돌려주는데,
그 소년이 데바브라타(비슈마)이다. 4년후 왕은 사티야바티에 반하게 되고,
사티야바티는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요구한다.
왕이 고민에 빠지자, 데바브라타는 자신은 왕위를 포기하고,
평생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후 약속을 지켜낸
사람이라는 뜻의 비슈마로 불리게 된다.
비슈마는 처음부터 사촌간의 전쟁을 말렸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카우라바쪽의 총사령관이 된다.
그러나 판두의 셋째아들인 아르주나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된다.
비록 적군이지만 증조 할아버지의 죽음에 판다바의 5형제들은 슬퍼한다.
비슈마는 카우라바 형제들에게 사촌간의 전쟁을 그만 둘 것을 유언하지만,
카우라바 형제들은 듣지 않고 전쟁을 계속한다.
정 중앙 격렬한 전투장면
정중앙 오른쪽 위쪽을 보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
판두의 셋째 아들 아르주나이다. 그 앞에 막대를
가지고 전차를 몰고 있는 사람은 크리슈나이다.
크리슈나(비슈누의 8번째 화신)는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카우라바와 싸우지도 않는 자신을 선택한 판다바 형제를 위해서
아르주나의 전차를 몰아준다.
아르주나와 4형제들이 왕국의 얻었을 때
인드라프라스타(인드라 신의 땅)라고 했다.
판다바의 5형제들은 판달라 왕국의 사윗감 구하기
무술대회에서 아르주나가 쇠로
만든 화살로 과녁을 맞추어 승리한다.
5형제들은 어머니의 명으로 1처 5부제를 통해 무엇이든지 함께 하였는데,
단 하나 한 형제가 부인인 드라우파디와 한방에 있을 때는 들어갈 수 없는데,
이를 어기면 왕국에서 1년간 추방하기로 했다. 어느날 브라만이
자신의 암소를 도둑당했다며 아르주나에게 말하자,
아르주나는 도적을 추적하던중 유디스티라와 드라우파디가
한방에 있음에도 형제의 약속과 다르마 사이에 갈등하다가
도둑을 잡기 방에 들어간 후, 스스로 유배의 길을 떠난다. 방랑하던 중
야다바족의 나라에 갔다가 크리슈나와 재회하고,
수바드라의 미모에 빠지게 된다. 수바드라의 아버지 발라라마는
그녀를 카우라바 형제 중 한명인 두료다나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발라라마는 두료나다를 좋아하였다.
아르주나는 자신을 좋아하는 눈치인 수바드라를 납치하고는
1년의 유배 기간을 마치고 인드라프라스타로 돌아온다.
이로서 인드라 신의 아들과 비뉴수 신의 화신의
집안이 서로 결합하게 된다.
판다바 5형제들의 구별하는 특징들이다. 맏형이 유디스티라이다.
비마는 철퇴를 들고 있고, 아르주나는 화살을 들고 있다.
나머지 두 형제는 쌍둥이이다.
아래쪽에 코끼리를 타고 전진하고 있는 판두의 둘째 아들 비마(Bhima)가 있다.
비마는 오른손에 악마 라후의 머리가 새겨진 방패를 들고 있다. 군사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행군하고 있다. 판다바의 군사들이다.
비마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판다바의 5형제들은
판달라 왕국의 사윗감 구하기 무술대회에서 아르주나가
쇠로 만든 화살로 과녁을 맞추어 승리한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기로 한 판다바의 5형제들은 드라우파디(Draupadi)와
오부일처의 결혼식을 하게 된다.
카우라바 형제들이 주사위 놀이를 할 때 사기를 쳐서 드라우파디를 뺏고
옷을 벗기자, 비마는 수치심에 카우라바 형제를 모두 찢어 죽이겠다고
맹세하고, 드라우파디는 그 피를 마시겠다고 맹세한다. 그 맹세대로
쿠루 평원의 전투에서 비마는 99명의 카우라바 형제들을 죽인다.
라후(Lahu)는 일식과 월식이야기와 관련된 악신이다.
우유 바다의 휘젓기 때에 나온 암리타를 몰래 훔쳐 먹으려다
태양신 수리야와 달의 신 찬드라에게 들켜 비슈누 신의
차크라(원반)을 맞고는 목이 잘려 나간다.
이때 벌써 한 모금을 마셨던 라후는 이후 머리는 영생을 누리게 되는데,
고자질한 해와 달에게 복수하기 위해 해와 달을 삼키게 되지만,
해는 뜨거워서 뱉을 때 일식, 달은 차가워서 뱉을 때 월식이 된다고 한다.
수리야 바르만(Suravarman)2세 화랑
수리야 바르만 2세 회랑은 남쪽 회랑 왼쪽에 있다. 약 93.6m 정도이다.
다른 회랑들이 힌두 신화의 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반면,
이 회랑은 앙코르 와트의 건설자 수리야 바르만 2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힌두 신들을 위한 궁전에 인간인 수리야 바르만 2세의 부조가 새겨져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신왕이라는 뜻의 데바 라자(deva raja)에서 찾을 수 있다.
앙코르 왕국의 왕들은 천연 자원인 톤레샵 호수와 3모작인 가능한 농토에 인공 저수지,
인공 수로 등을 만들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들었다. 국민들의
삶이 안정화되자, 왕권이 강화되고, 그 지위가 왕이 곧 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적통자에게 왕위 계승이 된 경우가 드물 정도로, 권력 다툼이 심하였다.
수리야 바르만 2세도 쿠데타를 통해 왕위에 올랐으므로,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인 참파와의
전쟁 출정이야기를 남겨놓았다.
충성서약을 받는 수리아 바르만2세
부조 시작 부분에 있는 수리야 바르만 2세이다. 부조를 자세히 보면
회색사암 위로 분홍색도 있고, 흰색도 보이고, 검은색으로 반들반들한 곳도 있다.
학자들은 수리야 바르만 2세 사후 금으로 왕을 다시 덧칠했다는
기록에 따라 부조는 붉은색, 초록색과 황금으로 채색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반들반들한 부분은 후대에 탁본을 뜨기 위해 기름칠을 했기 때문이다.
부조에 새겨진 크메르 문자를 해독함으로써 앙코르 와트
건설자가 수리야 바르만 2세이고,
그가 사후에 파라마비슈누로카(Paramavishnuloka)란
칭호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부조가 사후에 새겨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가 있다. 참파와의 출정식을 하면서 그 장면을 바로
부조를 새기기도 어렵고, 수리야 바르만 2세가 참파와의
전쟁 중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파라마비슈누로카라는
문자에 힘이 실리기도 하는 것 같다.
사원 입구 방향이 서향이라는 점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견해가 있다.
앙코르 와트가 수리야 바르만 2세의 왕릉이라는 견해이다. 다른 앙코르
유적지들은 주 출입구가 동쪽에 있다. 앙코르 와트만 서향이다.
해가 서쪽으로 지므로 서쪽은 죽음의 방향이며, 사원 부조의 이야기가
반시계 방향인 것은 인도의 제사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충성 서약을 받고 행진하는 모습이다
1113년 궁중반란을 통해 집권한 태국북부 프놈눔 출신의
수리바르만2세는 6년후인 1119년 대관식을 거행하고
지방세력을 가진 제후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고 분열된 왕권을
통일 시켰다 한다
수리야바르만2세가 신성한 시바파다산에서 19명의 제후들로부터
충성 서약의식을 받고 출병하는 모습이다
충성맹세
1.오직 하나의 왕을 섬기며 다른 왕은 섬기지 않는다
2.와의 적이될수 없으며 해를 입히지 않는다
3.왕에게 충성하고 헌신한다
4.전쟁이 일어나면 왕을 위해 영혼까지 바처 싸운다
5.전쟁에 나가면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
6.전쟁에서 패하면 자살하거나 희생되는 백성들에게 보상한다
7.우리에게 명하면 어떠한 곳이라도 가서 정보를
알아오고 비밀을 지킨다
8.왕과의 약속을 어기면 어떠한 형벌도 감수한다
9.왕과의 약속을 못지키고 도피한다면 32개의 지옥에서
다시태어나겠다
(수리야 바르만1세의 충성서약0조르쥬세데스 수리아바르만2세의
충성서약은 남아있지않다 1세의 충성서약 내용으로 추측한다)
오른쪽 충성 서약을 하는 사람 옆에 있는 문자로 수리야 바르만 2세 임이 확인 되었다.
그 당시 크메르 제국은 왕족, 지방 세력, 신권 세력이 권력 다툼을 심하게 하던 시절이었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왕위(크메르 제국의 18대 왕)에 오른 뒤
강력한 왕권 정치를 하고자 하였다.
수리야 바르만 2세 회랑에서는 왕들의 파라솔 개수를 살펴보자.
당시 왕들은 황금 파라솔을 사용하였다. 파라솔과 부채의 개수가
많을수록 권력이 강했다는 것을 뜻한다. 충성 서약을 받는 장면에서의
수리야 바르만 2세는 파라솔이 14개이다.
수리야 바르만 2세는 12세기 초 태국의 롭부리
지방에서 왕족인 수리야 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용맹하여 왕위 계승 결정권을 가진 브라만
사제 디바카라판티타의 눈에 띄어 쿠데타를 일으킨다(1113년).
혼란스러운 내정을 수습한 뒤, 1119년 왕위에 오른다.
지금까지 숭배해오던 파괴의 신인 시바 신을 대신해 질서 유지를 관장하는
신인 비슈누 신을 믿고, 국정 쇄신과 종교적 통합을
위해 앙코르 와트를 건설한다.
그 외에도 톰마논, 반티아이 삼레, 벵 멜리아 등을 건설하였다.
1129년 참파(베트남)에 대한 정복 전쟁을 시작해서 1145년 수도
비자야를 함락시킨다.
태국, 미얀마, 베트남을 정복하고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1150년)를 맞는다.
수리야 바르만 2세 회랑 부조를 보면 돌이 빠진 곳이 있다.
건설 당시 조각을 하다가 실수를 하면 그 부분만 파내고
새 돌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그 후 도굴꾼들이 돌을 빼낸 뒤 다시 넣지 않아 현재처럼 중간
중간에 돌이 빠진 곳이 생겼다고 한다.
수리야 바르만 2세와 전쟁에 나가는 지방 19명의 왕들인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각 왕들 옆에 문자가 있다. 이곳에 왕의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록 문자가 많지 않은 앙코르 와트의 귀중한 자료이다.
회랑의 중앙부분에 수리야 바르만 2세가 행군하는 모습이 있다.
9번째로 행군하고, 15개의 파라솔이 있다. 수리야 바르만 2세가
탄 코끼리도 왕관을 쓰고 있다. 코끼리 앞을 자세히 보면 작은 조각이 있다.
가루다를 탄 비슈누 신이다.
충성 서약을 받는 장면에서는 14개의 파라솔이 있었다.
행군하는 왕의 옆에 문자를 보면 브라 빠다 깜라딴 안 빠라마
비슈누로카 (Paramavishnuloka, 비슈누 신과 함께 하기 위해
신성한 걸음을 하시는 군주). 코끼리의 앞의 가루다를 탄 비슈누
신도 비슈누 신의 보호를 받는 왕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 표현된 사람도 수리야 바르만 2세가 맞다.
그런데 파라솔이 하나 더 늘었다. 충성 서약할 때보다 전쟁에 나갈
시기에 권력이 더 강해져서 실제로 15개의 파라솔을
쓰고 다닌 것 같다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앙코르 제국은 왕이 죽은 후 신과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 신의 명칭을 시호로 붙여 사용하였다.
비슈누로카에서 추측하건데 수리야 바르만 2세가 비슈누 신을 믿었고,
이 부조 부분은 왕의 사후에 조각되지 않았을까 학자들은 생각한다.
수리야 바르만 2세가 참파를 공격할 당시 전투함대는 700척 정도 이었으며,
크메르 정규군은 2만 명을 넘었다.
회랑 끝 부분에 가면 17개의 파라솔을 쓴 사람이 있다.
지금의 태국 롭부리(Lopburi) 지방에 있었던 루워(Louvo) 왕국의
자암 바르만 4세 왕이라는 견해가 있다.
장신구에 치장까지한 시암(태국)용병
대오 발을 맞추며 행진하는 크메르 정규군
부조 끝부분에 오면 아래쪽 군사들의 행군 상태가 달라지는 곳이 있다.
왼쪽에 발을 맞추어 걸어가고 복장도 같은 군사는 크메르 정규군이다.
오른쪽에 걸어가는 폼도 제멋대로이고, 허리띠에 장신구를 달고,
치마와 꽃무늬 옷, 귀걸이를 한 병사들이 나온다.
그 위로 코끼리에 탄 지휘관도 같은 복장이다.
파라솔 중간에 지휘관을 설명한 부분이 훼손되어 있어서
어느 나라 군대인지 확실히 알수가 없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 시암(태국) 용병들로 밝혀졌다.
훼손된 이유에 대해서 나중에 아유타야 왕국(태국)이
크메르 왕국을 공격했을 때 화살받이로 사용하고
미개인 취급한 것에 대한 증거를 없애려고 훼손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병사들의 행진
말탄 지휘관
천국과 지옥(Judgement of Yama /Heaven and Hell)
야마(Yama)는 죽음의 신, 심판의 왕으로 우리의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이다.
최초로 죽은 사람이라고 한다. 팔이 18개이고, 물소를 타고 있다. 상징으로는
시체에서 영혼을 빼앗아 가는 밧줄을 들고 있는 것으로 표현 된다.
여기서처럼 칼을 들고 있기도 한다.
중앙으로 가면 치트라굽타(Chitragupta)가 나온다. 치트라굽타는
죽은 사람의 생전의 행위에 대한 기록을 야마에게 읽어주고,
야마가 심판을 하면, 치트라굽타가 집행한다. 치트라굽타 왼쪽에는
수리야 바르만 2세가 있다. 오른쪽에 보면 중단에서
하단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옥행이다.
하단을 보면 다양한 형벌이 집행되고 있다.
내세에 갑자기 수리야 바르만 2세가 나타난 이유는 현세의 왕이
내세에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사후세계의 무서운 심판관 야마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
머리에 구멍을 뚫어 끌고 가는모습
저승사자들이 사람들을 끌고 가고 있다. 매질을 당하면서
코나 목에 밧줄을 꿰어 끌려가는 장면이다.
지옥의 장면에 여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여자들이 죄를 많이 지었다기 보다는
크메르 제국이 모계 중심 사회여서 단순히 백성을 표현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견해가 있다.
몸에 못을 박는 형벌이다. 하단에는 그외에도 32가지 지옥의 모습이 끔찍하게 부조 되어 있다.
우유의 바다 휘젓기(The Churning of The Ocean of Milk)
우유 바다의 휘젓기는 힌두교 창조 신화이다. 처음에 선신인 데바들은
악신인 아수라보다 약하였다. 그래서 점차 세력이 약해지자, 데바들은
비슈누 신에게 의논한다. 비슈누는 불로장생의 약인 암리타를 우유의 바다에서
건져 올려 마시기를 권한다. 데바들만의 힘으로는 우유의 바다를 휘젓지 못하기
때문에 악신인 아수라들에게 거짓으로 암리타를 나누어 줄 것처럼 속여서
천 년간의 우유 바다 휘젓기가 시작된다. 가루다가 바다로 옮겨온 만다라산을
중심축으로 바수키의 몸통으로 만다라산을 감은 뒤 한쪽에서는 아수라들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데바들이 바수키의 몸통을 당기며 우유의 바다를 천년동안 휘젓는다.
바수키가 힘들어서 독약을 쏟아내자 비슈누 신이 목에 삼키는데, 독약의
시퍼런 자국이 목에 생기게 된다. 이후 비슈누 신은 푸른색으로 상징화되기도 한다.
그 다음부터 생명의 어머니인 암소, 술의 여신 바루니 등이 나온다. 이때 비슈누의
부인 락슈미도 나오고, 거품 속에서 6억 명의 천상의 무희 압사라가 탄생하게 된다.
드디어 암리타가 나오자 비슈누는 미인계를 사용하여 악신 아수라들을 속이고,
선신들에게만 나누어준다. 그 때 몰래 마시던 악신 라후를 보고 비슈누가
차크라를 날려 라후는 목이 잘리지만 목은 영생하게 된다. 이후 암리타를
마신 선신들은 불멸의 삶을 살게 된다.
비슈누(Visnu) 신은 고대의 신들을 자신의 분신으로 포함시키면서
복합신이면서 화신으로 유명해진다. 어원은 세상 곳곳에 널리 퍼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끝 없는 존재의 바다 위에 누워 있다는 뜻의 나라야나(Narayana)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난타 위에 옆으로 누워 잠자는 비슈누 형상을 종종 볼 수 있다. 잠자는
비슈누의 배꼽에서 연꽃이 피면서 브라흐마가 생겼다고 한다.
대표적 형상으로는 4개의 팔에 4가지의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인데,
집게 손가락에 회전하는 원반(차크라)을 들고 있다. 원반 테두리에 칼날을 달아 사방
어느 쪽으로나 날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소라 고동(법라패)을 불면 선신들은
힘을 얻고, 악신들은 두려움에 떤다고 한다. 지구 모양의 공은 대지를 의미한다. 때로는
생명의 창조인 연꽃을 들고 있다. 곤봉은 비슈누의 강력한 무기중 하나다.
우유 바다 휘젓기 왼쪽 부분이다. 머리가 5개인 바수키(나가의 왕)의 머리 부분을
들고 흔드는 아수라의 왕 라바나(Ravana)가 부조 되어 있다. 몸통을 잡고
흔드는 것은 아수라(악신)이다.
원형의 힌두 창조 신화에 라마야나의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라바나와 하누만은 라마야나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우유 바다 휘젓기 오른쪽 부분이다.
나가(뱀)의 왕 바수키의
꼬리 부분을 잡고 흔드는 원숭이 왕 수그리바의 장수 하누만이 부조 되어 있다.
몸통을 잡고 흔드는 것은 데바(선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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