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서안 화청지 시안(중국여행59부)

훼브스 2020. 8. 1. 13:33

 

 

 

2016424

 

화청지로 이동하는 차내에서 가이드는

양귀비의 실존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155cm 키에 뚱뚱 하였으며 겨드랑이에서

냄새(암내)가 나서 하루에 10번이상 온천물로 목욕을

하였다 한다

 

 

 

 

 

세기의 미녀 서양의 크리오파트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억측이 제기 된다 실지로 발견된 크레오

파트라의 동전에 보면 매부리코에 목덜미가 튀어 나왔다

 

 

 

 

 

양귀비 또한 당시 미인의 기준이 된 뚱뚱한 모습이 이었다

하니 당현종의 혼을 빼앗고 안사의 난까지 일으켜

당나라를 멸망에 이르기 까지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게

아닐까???

그러나!!!!! 그녀의 뚱보라는 사실은

史書에도 자질풍염(資質豊艶)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풍만한

미녀라고 전해지기 때문인데 그러나 당나라가 건재했던 시기에

태어났던 백거이의 장한가에 표현 되는 양귀비의 미모가 더

신빙성이 있을 것 같다

당현종 사후 10년후 백거이가 태어났다

 

화청지에 들어가 당나라때의 유적 온탕을 견학한다

양귀비 목욕하던 탕 당현종과 함께 목욕하던 탕 궁녀들이

목욕하던 탕 그리고 목욕후 양귀비가 머리를 말리던 누각까지

호기심으로 보는데 세월은 무심하여 목욕탕은 현존하는데

양귀비는 공중 분해 되어 공기로 날라가 버렸다 2000년의

세월은 흘러 눈앞에 있었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당나라 왕실원림이다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 좋은 지하 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일직이 서주(西周)

시기에 주유왕(周幽王)이 이곳에 려궁(驪宮)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무제도 이곳에 행궁(行宮)을 건립하였다

한다 특히 당현종 천보년에 건설한 궁전 누각이

가장 화려하며 이때 정식으로 화청궁(華淸宮)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당대의 화청지의 모습을 그린 안내도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가 비일비재 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지가 되기도 했다

화청지 구역 동쪽에는 정말약이 쓴 화청지 금자 편액이

걸려있으며 구역 안에는 하화각 비하각 오간정(1936

서안 사변 당시 장계석이 머물러있던곳)등의 건축물이

있다

그중 온천 석벽에 있는 온천송비(溫泉頌碑)는 중국 비석

예술 중에서도 우수한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앙구역에는 당화 청궁어탕 유적박물관이 있으며

연화탕 해당탕 태자탕 상식탕 성진탕등의 당나라때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탕과 문물 진열실이

있다

또한 매일 육각정 무대 앞에서는 당나라 시기를 재연한

연극이 열린다 (중국서안시 관광국)

 

 

 

 

 

화정지는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시안의 북동쪽의

온천 휴양지로 당현종(唐玄宗)60의 면적 안에

양귀비를 위해 건설한 궁전과 누각을 화청궁(華淸宮)으로

개명하였다 한다

 

 

 

 

 

뒷산이 여산이다 밤에 다시 와서 이곳을 무대로한 장한가빅쇼를

보기위해 입장권을 예약해놓았다

 

뒷산 여산엔 케불카가 운행되고 있었다

 

 

화청지의 춘전(華淸池春展)

 

 

 

 

 

 

 

 

 

 

수령이 400년되었다는 석류나무

 

 

 

귀비전

 

 

 

귀비전에 만들어진 해당탕 양귀비 전용탕 귀비지

16살 때 궁녀로 뽑혀 후일 황태자로 책봉된

현종의 18번째 아들이 그녀의 미모가 마음에 들어

결혼 까지 하게 되었는데 다시 당현종에게

시집가게 된다

 

 

양귀비의 전용 해당탕(海棠湯)은 연꽃 문양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연화탕(蓮華湯)은 현종의 전용 목욕탕 이다

황제의 위용이 보인다

 

 

 

 

 

 

성진탕(星辰湯)은 당태종 이세민의

전용 목욕탕이었다 한다

 

 

 

 

 

상식탕(尙食湯)은 황제에게 올리던 음식을 만들던

관원들이나 내관들이 목욕하던 탕이라한다

계단이 여러개 있는 것을 보면 전용이 아니라

대중탕인 것 같아 보인다

 

 

 

 

 

 

목욕후 양귀비가 머리를 말렸다는 누각

 

 

竹竹木简 白居易 長漢可 죽간에 새겨진 백거이의 장한가

 

 

 

왕위에 오른 현종은 왕비 무혜비가 살아있을 때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왕비가 죽자 정사를 멀리하고

비탄의 나날을 보내고 3000궁녀가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고 채홍사 까지 두워 사람을

물색하였으나 특별한 인물이 없어 늘 우울 하던중

화청지에서 춤을 추는 무희 양귀비를 보고 마음이

동하였다 한다

며느리인 양귀비를 바로 취할수 없어 환관 고력사와

모사를 꾸며 양귀비를 도교 여도사로 만들어 화산으로

출가 시킨후 양귀비를 다시 궁으로 불러 태진궁(太眞宮)

을 지어주고 태진이라는 법호를 내려 여도사로 머물게

하고 그후 천보(天寶)4(745)에 마침내 양귀비를

정식 귀비로 책봉하였는데 그 때 양귀비 나이가 현종과

34세 차이가 났다고 한다

그후 안사의 난으로 목메어 자살하는데 현종은 37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양귀의 소생은 없었다 한다

 

 

 

 

양귀비 조각상과 당현종과 양귀비

 

중국 싸이트 뒤지는데 이런 양귀비도 있더라구요 이게 더 리얼 할수 있겠다 생각한게

양귀비의 기록상 신장 155cm 에다 몸무게 65kg 이었다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