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북악스카이 길을 가다

훼브스 2020. 8. 1. 14:54

북악스카이웨이 길을 가다

 

언제:2011년 5월8일

누구와:2쌍 4명

코스:성북구구민회관-하늘전망대-팔각정-홍지문-세검정-구기터널앞오장냉면집

 

지하철4호선 삼선교(한성대)역 6번출구 로 나오면 1번마을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1번으로 환승 한진 아파트단지로 들어가 성북구민회관앞에서 하차

바로 스카이 산책길로 접어든다

 

 

 

차도 옆으로 가기싫어 좌측 숲길로 가는데 사람들이 전무하여 숲의 향과 새소리를

접할수 있었다. 안내판에 보면 차도옆길로 가면 곰의집(음식집)이 나오는데 그반대

숲길을 택한것이다.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라일락향기는 환상적이다

그향은 너무달콤해서 꽃말이 친구의사랑 이라거나

우정이라기보다는 달콤한 사랑이라 한다면 더좋을것 같다.

 

 

라일락의 원산지는 동유럽이고 조선조에 우리에게 와서 순수우리말로는

수수꽃다리 라 부른다 한다

 

서양에선 “리라꽃”이라고도 하는데 유명한노래“베사메무쵸”에도 소개된다

 

토종 수수꽃다리는 대개연한 보라색인데 라일락은 휜색이 많고

1947년 미국으로 팔려간수수꽃다리는 “미스킴”이라 개량되어 인기있게 팔리고

있다니 우리가 모르는사이 우리것으로 다른사람들이 돈을 벌고 있다한다

 

지금같은면 지적소유권이다 종묘개량이다 하여 어림없었을 노릇이나 우리가

정신없이 피곤해할 때 그들은 실속을 채운게 한두가지가

아닐것이다

 

흰색의 라일락은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 아름다운 맹세 라는데

 

흰색 라일락에는 영국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다 컴에서 찾아 올려본다

 

어느 마을의 한 아가씨가 완전히 믿고 있던 젊은 남자에게

순결을 짓밟히게 되고 아가씨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나머지 자살했다.

슬픔에 빠진 아가씨의 친구가 아가씨의 무덤에 산더미처럼 라일락을 바쳤다.

 

그 때 꽃 빛깔은 보랏빛이었는데 이튿날 아침 꽃잎이 모두 순백색으로 변해있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라일락은 지금도 하트포드셔라는 마을에 있는교회 묘지에

계속 피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하얀 라일락은 청춘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젊은 아가씨외에는 몸에 지니지 않는게 좋다고 믿고 있다는데

 

황홀하게도 향기는 취하도록 마셔도 넘처난다

거기다 어디서 울어대는지 쯔쯔쯔 쪼로로 하는 산새의 노래는 여인들의 마음을

낭만으로 가득하게 만들어서 웃음꽃을 터트린다

 

 

 

 

보석이 들은 케익은 어버이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아이들이 사준것이다 원형으로 자축한다며 굳이 포장 박스째 들고 다닌다..

 

 

 

고목에 기대선 하얀꽃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바쁘게 오르는 사람뿐이다 ...사진을 찍다가 일행은 멀리도 가버린다.

 

 

 

 

자연산 철죽이다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 랍니다....김여사는 삼국유사에 나오는꽃에 얽힌이야기를 했다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과 부인수로가

잠시쉬어 갈때 벼랑끝에 핀 탐스럽고 붉은 아름다운꽃을 보며 수로부인이 말했다

"저꽃을 꺽어줄 사람이 없소?"벼랑이 너무 위험해서 수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대답이 없을때였다.한노인이 나타나

짓붉은 바위 가에

잡고 가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노래하며 철죽을 꺽어 바쳤다.이노래가 보각국사 一然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헌화가 입니다....우아한 철죽은 군데 군데 피었다 어디 철죽 뿐이겠는가..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려오는 꽃향을 모르겠지요 들꽃들은 각자자기 개성을 뽑내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하늘마루 정자에 왔다거기서 아이들이 사준 케익 절단식과 어버이날의 자축을 하는데 "아침에 버스를 탈때도 여기 많은 사람들 중에도 가슴에 카네션 단사람

구경하기 힘드네요 그전엔 가슴마다 자랑삼아 꽃 달고 다녔는데"

"요즘은 생화를 많이 선물해서 그럴꺼야"부모님께 꽃달아 드리던 먼옛날님들의 미소가 꽃향에 실려온다....

 

 

 

 

일제시대때 북악산과 삼각산(북한산)사이에 개통된 2차로 도로는

북악산과 북한산의 맥을 끊어 민족정기를 말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터에 성북구청에서 하늘교를 놓아 북악과삼각산은 다시이어진셈이라 한다

전망대에서 보는 삼각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1968년1월21일 김신조씨 일행은 이길로 해서 창희문으로가다가 최총경과 조우하게 된다 

 

 

 

 

 

 

조망되는 형제봉

 

하늘전망대에서 우측 팔각정 가는 코스로 내려오는데

자연산인지 재배한것인지 금낭화가 만발했다

錦囊花 아름다운 주머니꽃이란 의미다

곷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라는데 설명하자 보석은 담엔 금낭화꽃을

선물하여 달라며 웃고있다

 

 

 

 

 

 

 

팔각정으로 향하는데 아름다운 꽃들과 어린새싹의 향연을 보며보석은 내게 말했다 "난 어린파스텔 연두색이 좋아 녹색은 너무강해서

당신처럼 고집으로 싸움만 하는 사람이 생각나서 싫어"

"................"아름다운 새싹 향연과 프리티한 복사꽃 힘들지 않은 북악산길은 잘정비되어 있었다

 

 

 

 

팔각정 300m 전방에 섯을때 숙정문이 보인다

백과사전엔 다음과같은 해설이다

 

숙정문(肅靖門) 또는 숙청문(肅淸門)은 조선 시대에 건축한 서울 성곽의

4대문 중 북쪽에 있는 문으로, '북대문' 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三淸洞) 산 2-1번지(북악산 동쪽 고갯마루)에 있다.

지금의 숙정문은 1976년에 복원한 것이다.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

 

드디어 팔각정에 서다 정상높이가 342m

 

스카이웨이는 1968년 개통된 북악산능선을 끼고있는 길이 10k의 관광도로이다

 

 

 

 

팔각정 전망대에서 보는 백악산의 모습

 

팔각정 전망대에서 형제봉을 배경으로한 보석 

 

 

 

 

 

 

 

 

팔각정에서 창의문쪽으로 나오는데 야생 애기똥풀꽃이 군락을 이뤄 장관인데어떤개체는 고목에 기생하여 최고의 자연미를 연출한다애기똥풀꽃은 두해살이 로 꺽으면 노란 액이 나오며 항암작용을 한다한다

꽃말은 몰래하는 사랑이라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숲속의 요정 아베크족

 

 

백악산의 모습

 

 

 

 

산괴불

부암동에 왔다

부암동에서 보는 인왕산 기차바위

상명여대 사거리에서 좌측 홍지문으로 향하다

이 홍지문을 사이에 두고 종로구 홍지동과 서대문구를 나눈다,,

홍지문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3호.

이 성은 1719년 (숙종45년)에 쌓은 것으로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여

세운 탕춘대성(蕩春臺城)이다,안에 탕춘대가 있으며,,,

탕춘의 의미는 봄기운을 만끽 한다의 의미.이고 연산군은 이곳에와서 연회를 많이 베풀었다

하는 일설도 있다 한다

도성과 북한산성 사이 사각지대인 지형을 이용하여두 성사이를 이어 만들었다,성곽둘레는 약4키로 정도 성안에는 연무장인 연융대를 만들고 군량창고도 갖추고있다,연무대는 군사들 무술을 연마하고 훈련하는곳 이라 한다

 

 

 

내가보기엔 홍지문과 오간수문 같은데 사진 하단엔 수구문으로 되어있다

이사진은 일인들이 우편엽서로 유통되던 사진이라 한다

 

 

 

서대문구 쪽 나대지의 대파꽃

 

홍제천 건너 서대문구 쪽에서 보는 홍지문과 오간수문 

 

 

 

서대문구 노인요양 병원 꽃밭에다듬어진 꽃 

 

 

병곷 

소림사

홍지문에서 세검정으로 향하다가 총융청터 자리를 보게된다

 

총융청터의 개요를 한국의산천에서 인용해본다

총융청터

연산군 시대를 만나 쇠락하고터만 남아 있던 장의사에 1712년(숙종 38) 군사훈련소인 연무대가 설치되었고, 1747년(영조 23)에는 총융청(總戎廳)이 설치되어 3백여칸의 건물이 들어섰다. 1886년 이후에는 신식군대인 별기군의 훈련장이 되기도 하였다. 1930년 후반에 국민학교가 세워졌다가 1948년 지금의 세검정국민학교가 들어서게 되었다.

 

총융청( 摠戎廳 )

조선 후기에 설치된 중앙 군영(軍營)을 말한다. 1623년( 인조 1 ) 인조반정 후 후금( 後金 )과의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이듬해에 일어난 이괄( 李适 )의 난에서, 그 반군이 수도 외곽인 경기도의 방어망을 쉽게 뚫고 서울을 점령하게 되는 취약성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설치되었다.

인조반정 후 왕을 호위해 공주까지 내려간 서인정권( 西人政權 )의 어영군을 강화하는 동시에, 경기도 일대의 정군과 속오군( 束伍軍 )을 조직화해 총융군으로 편제하였다.

당초 경기도내의 정군·속오군 및 별마대군( 別馬隊軍 ) 등으로 편제된 총융군의 수는 약 2만여 명에 이르렀다. 경기도의 군사를 수원·광주·양주·장단·남양 등의 5영으로 구성한 초기의 편제는 1영에 3부, 1부에 3사( 司 ), 1사에 3초( 哨 )를 둔 체제였다.

총융군은 처음부터 수도를 직접 방위하고 왕을 호위하는 군영이라기보다, 후금과의 관계에 대비해 수도 외곽 방비를 담당해 간접적으로 수도 방어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세검정이 종착이다 이로서 3개구 성북구 종로구 서대문구를 걷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함께한 안박사 부부 와 보석은 체력의 인내로 최선을 다했다

이제 세검정을 거처 구기터널앞 오장냉면 집에서 뒤풀이 하고

오늘의 행복은 끝이다....

 

 

 

 

 

.세검정(洗劍亭)은 서울특별시기념물 제4호로 서울 창의문(彰義門) 밖에 있던 정자이다. 조선 영조 24년(1748년)에 세웠다. 인조 반정때,

 

이귀·김유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 폐위 결의를 하고 칼을 씻었다 하여

이 이름이 생겼다고 하며 이곳에서 반란을 모의 혁명군들은

창의문을 부수고 경복궁에 들어가 광해를 내몰고 인조를 내세웠고 논공행상의

불만으로 李适의亂.이 발생한다.

 

유숙<세검정도>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26.1*58.2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가 그린 세검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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