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6월17일
경주의 로고하면 첨성대가 아닐까요?
우리는 첨성대를 3번을 가기로 했습니다
낮과 석양 그리고 야경
화보로보는 유채꽃 첨성대
청섬대 주변으로 절기에 때맞추어 꽃단지가
조성되는데 6월엔 접시꽃 단지가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접시꽃 뒤로 보이는 천문대 석양으로 붉게
물든 모습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것 하나만 가져도 경주여행의 추억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는 청춘으로
돌아갔습니다.
융성했던 신라시대 서라벌(경주)의 입체도
첨성대 앞에서 그 예술성 그리고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애민 정책을
생각하게 됩니다.
농민들을 위해 세운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별을 관측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따르면 633년에
건설된 첨성대(瞻星臺)는 경주시 반월성 동북쪽에
위치한 석조 건물로
1962년 12월20일 국보제3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영민함은 넓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일화를 한가지 소개합니다
왕은 즉위 4년인 635년 영묘사(靈廟寺)를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 개구리가
사나흘 동안 운 일이 있었다.
이에 왕은 각간 알천(閼川), 필탄(弼呑)에게
병사 2천을 주어 서라벌 서쪽 부산(富山)
아래 여근곡(女根谷)을 습격하게 하였다.
여근곡에는 백제 장수 우소(亏召)가
매복해 있었는데, 알천과 필탄은
이를 쳐서 모두 죽였다.
훗날 신하들이 이 일을 물어보니
왕은 “개구리가 심히 우는 모습은
병사의 모습이요,
옥문이란 여자의 음부를 가리킨다.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백색인데,
이는 서쪽을 뜻한다.
또한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니
그래서 쉽게 잡을 수 있었다.”라고 답하였다.
삼국사기 에서는 옥문지에서 개구리가
운 때를 즉위 5년인 636년 5월로
기록하고 있다(위키백과)
첨성대는 신라의 왕궁이 있었던 월성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362개의 화강암 벽돌을 사용하여 원통형으로 축조하였다.
높이는 9.17미터. 돌로 27층을 쌓았으며,
꼭대기에는 다시 우물 정(井) 모양의 2층의 천장돌이 있다.
13층에서 15층에 이르기까지 정남향의 네모난 문이 있고,
이 문의 아래로 12층이 있고 위로 13층이 있으므로
첨성대 위아래의 중간에 문이 위치한다.
내부에는 12단까지 흙이 채워져 있고 여기에
사용된 돌의 수는 362개이다.
내부에 19단과 20단, 25단과 26단이
장대석을 이루고 있다.
첨성대는 석단27단위에 井자 모양의 단을 합해
모두28단으로
이 28단은 농사와 긴밀한 28절기를 상징하는
28개의 별을 상징한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배우가분한 선덕여왕
첨성대를 쌓은 돌의 수는 361개 반으로
음력으로 치면 1년의 일수와 일치한다
첨성대 꼭대기는 각면이 정확히 동서 남북을 가르킨다
인도양식인 첨성대는 왕권강화를 위한 조형물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자신의 권위를 백성에게 세울 만한 상징이 필요했고
이로서 첨성대를 세웠다 한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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