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4일
친우들과 함께 양재시민의 숲에서
만났습니다 1988년 88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6년에 만든공원입니다
이곳은 서울둘레4길 구룡산 대모산 둘레길로
가는 관문이기에 장미가 곱게 필 때 와서
시민의숲공원을 거처 서울둘레4길을 갔었고
오늘은 이곳에서 양재천 쪽으로 걷기위해
친우부부와 함께한 6명이었습니다
윤봉길 기념관람후 백마부대 충혼탑앞에
섭니다 이곳에서도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호국의 상징 충혼탑 그리고 대한항공 버마피폭
위령탑과 삼풍백화점 참사자 위령탑을지나
양재첨으로 걷는데 극심한 가뭄으로
꽃들이 시들고 있었으나 외가리가 날고
양재천 물에 큰잉어들이 놀고 있어
평화를 느꼈습니다
아 걷는데 반가운 빗님이 오시는 겁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양재천 걷기를 포기하고
지하철 3호선 경찰병원역 주변식당에서
회식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윤봉길의사 기념관(별도 후기작성)을
참관하고 백마부대 충혼탑에 왔습니다
윤봉길의사기념관(尹奉吉義士記念館)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의사의 기념관이다.
1988년 12월1일에
대지 1,992평에 건평 743평으로 건립되었다.
의사의 유품과 훈장 등이 이 곳에서 관리되고 있다.
국기게양대에 윤봉길 의사가 중국으로 망명 전에
농촌발전을 위해 설립했던 월진회 깃발이 게양되어 있다.
월진회기(旗)는 태극기와 같은 하얀바탕에 3개의
초록색 굵은선이 있고 그 사이에
무궁화를 넣은 깃발이다.(위키백과)
건립자와 관리자 : 유격백마부대 기념사업회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2동 234
(양재시민의 숲 제1지구)
1950년 10월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였던 UN연합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철수하자 평안북도 정주군화
박천군 일대에서 치안 활동을 하던 청년들과
오산학교 학생들이 그 해 11월 22일 정주군 갈산면
번저리에서 유격백마부대를 조직하였다.
깅응수를 부대장으로 한 대원 2,600여명은
군번도 계급도 없고 무기 등변변한 자원이 없는
열악한 상황에도, 철산방도, 월사리, 대화도, 신미도,
압록강, 청천강 하구 등에서 공산군과 500여회의
교전으로 적 사살 3,000여명, 중공군 생포 600여명,
반공애국청년과 민간인 구출 18,000여명과
철도, 터널, 교량, 기타 주요시설 파괴 등
북위 40도선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어 UN연합군의 정규작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기간 중 552명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던 바,
생존 대원들은 1952년 백령도에서 추도식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각 처를 전전하며 추도 행사를 하다가
1992년 평안북도 유지들의 뜻과 성금을 모으고
노태우 대통령이 탑명을 휘호하여 여기
양재시민의 숲에 충혼탑을 세워 젊은
반공 의병들의 공과 넋을 기리게 되었다.
"길가는 손들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무살 안팎
젊은 목숨을 반공 구국에 기꺼이 바친 뜻을 새기고 넋을 기려다오"
위 글의 내용은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에 있는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모두 옮겨 놓은 내용입니다.
출처 :서초구 홈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2동
(양재시민의 숲 제1지구)
대한항공 858기 탑승객들중 다수의 희생자들은
열사의 나라에서 땀흘려 일하고 돌아오던
노동자들이었던 KAL 858기 폭파사건은
다음과 같이 전개 되었다.
1987년 11월 28일 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858기가 아랍 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기착한 뒤 방콕으로 출발했다.
그 후 이 여객기는 11월 29일 14시 1분 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에서 방콕공항 관제탑에 "45분 후
방콕에 도착하겠다.비행중 이상 없다"는 보고를
무선으로 보낸 것을 끝으로 소식이 끊어졌다.
이 여객기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한국인 근로자 등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여객기 잔해가 태국 해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태국 내무부가 발표하였고, 1997년 11월 30일
오후 KAL858기의 추락을 정부당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2월 1일 사고 비행기에 한국입국이 금지된
"요주의 인물"인 일본인 2명이 탑승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급진전되었다. 문제의
두 일본인은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여권을 가진 남녀로 바그다드에서
탑승한뒤 아랍 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렸으며,
이중 마유미의 여권은 위조여권임이
바레인공항에서 밝혀졌다.
이들은 바레인에서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경유하여
탈출하려다 위조여권 적발로 체포되자 담배 속에
숨겨둔 독극물이 들어있는 앰플(ampule)을 삼켜
자살을 시도하여 남자는 숨지고 여자는 위급한
상황에 처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없이 곧 회복되었다.
한국으로 신병이 넘겨진 "마유미"여인은
국가안전기획부의 사건조사시 중국어와
일본어를 사용하며 중국인행세를 하며
범행을 부인하다가 12월23일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범행을 자백했다. 본명이 김현희(당시 26세)이며
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공작원으로서 음독자살한
김승일(당시 70세)과 함께 "88 서울올림픽
개최방해를 위해 KAL기를 폭파하라"는 북한
김정일의 친필 공작명령을 받고 기내 좌석선반에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한 시한폭탄(時限爆彈)을 놓고
내려 공중에서 폭발(爆發)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 후 김현희는 재판을 받고 사형이 선고(1990.3.27)되었으나
전향의사 표명과 김정일의 도구로써 이용된 점이
정상참작되어 대통령 특별사면(1990.4.12)으로 석방되었다.
2004년 현재 KAL858기 폭파사건은 희생자유가족이
주축이되어 진상조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
재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폭파당시의 여러가지 미심쩍은 정황등을 근거로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사건이다.
정부의 관련기관에서는 조사의 일부분 미비점을
인정하면서도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1997년
사건발표에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고있다.
2004년 아직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1997년
사건당시의 수사발표를 믿는다
해도 유가족들이 겪고있는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김정일정권이 이 사건의 당사자라면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희생된 유가족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께 참회와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기 버마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은
1990년 사건 3주기를 맞아 고인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KAL기 폭파사건과 같은 비극이 없기를
염원하며 1990년 11월 29일 양재시민의
숲 제1지구에 위령탑이 건립되었다.
출처:서초구청 홈
부실공사가 만든 건국후 최대 참사 그러나
성수교 붕괴 생각하기조차 싫은 세월호 참사가
이어진다 이위령탑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三豊百貨店 崩壞 事故,
Sampoong Department Store Collapse)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사건으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1,445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죽었으며, 주변 삼풍아파트 서울고등법원,
우면로 등으로 파편이 튀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 중에
부상자가 속출해 수많은 재산상, 인명상 피해를 끼쳤다.
그 후 119 구조대, 경찰,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국군,
정부, 국회까지 나서 범국민적인 구호 및
사후처리가 이어졌다.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며 6명은 실종되었다.
피해액은 약 2700여 억원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중 최명석(崔明錫) 1975~)은 11일,
유지환(柳智丸, 1977~)은 13일 박승현(朴勝賢 1976~)은
17일[ 동안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생존자 중 유지환 양은 구조 직후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냉커피가 마시고 싶다
."라고 대답하여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 서초동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주상복합
아파트인 대림 아크로비스타 주상복합 아파트가
2001년 착공되어 2004년 완공되었다.
출처:위키백과
양재천
만찬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동 오주현겔러리 (0) | 2020.12.03 |
---|---|
운영궁에가다 (0) | 2020.12.03 |
자락길 무당개구리와 고향친구들(국제시장) (0) | 2020.12.03 |
울릉도여행6부 뱃멀미 (0) | 2020.12.02 |
울릉도여행4부 독도는나의조국 (0) | 2020.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