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여행기

콜로세움 (유럽여행28부)

훼브스 2020. 7. 24. 15:23

 

 

콜로세움Colosseum,)

 

 

수주전 모 방송 프로에서 콜로세움에서 희생된 최초의

여성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기억 할 수 없었다.

콜로세움은 늘 화보로 보아오던 곳을 직접대면 하게되니

감회가 깊었다.

 

  

 

콜로세움 하면 떠오르는 검투사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박해

그것을 그린 영화 카크다그라스 주연의 스팔타커스 와 중학때

대한극장에서 관람한 대전차 경주를 그린 벤허

스팔타커스는 검투사로 팔려가 노예 반란을 주도 하다가

좌절하는데 끝장면에서 스팔타커스가 누군가?? 색출하자

서로 자기가 스팔타커스라 우기며 죽기를 자청하는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

 

 

 

 

 

 

위키백과를 인용하면 콜로세움에 대한 개요는 대략 아래와같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스)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를 메운 자리에 세워졌다 공사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72년에 착공 8년 동안의 기적적인 역사를 거처 티투스 황제 때인

 80년에 준공된 콜로세움은 높이48m 둘레500m 등 경기장

내부의 길이 87m와 폭55m라는 당시에 건립된 건축물 가운데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0년에 유대독립전쟁을 진압하고 10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하였다 그중 4만명을 동원하여 콜로세움을

건축했다는 전설이 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끼리 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건립되었다

 

콜로세움은 608년까지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중세기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다가 그이후에는 성당이나 궁전 등의 건축에

사용될 자제의 제공 터가 되었다

 

콜로세움을 마지막으로 로마의 견학은 끝이다 사실 2일동안의

로마 관광은 무리다 수박 걷 할기 번개불에 콩 구어 먹기 로

표현 해야 맞을 정도로 시간은 흘러갔다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뒤로 던졌기 때문에 속설에 의하여

로마로 다시 올수 있다면 2000년전의 로마인들과 토론도 할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유네스코는 1980년 로마의 유적 지구를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하고

이후1990년 보존지역을 교황 우르바노8세가 쌓은 성벽 안쪽까지

넓혀서 지정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서기312년 막센티우스와 겨룬 전쟁에서 승리하여 서로마를 통일

한 것을 기념하여 로마 원로원과 시민들이 서기315년 세운 것으로

오늘날 까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개선문은 로마시대의 개선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높이28m 길이 25m의 코린트 양식의 기둥건물에 3개의 아치모양의

문이있다

 

가이드는 이같이 설명 하고 그가 덧 붙혀 말하기를

이 개선문은 진품이고 이개선문을 모방한 파리의 개선문은

짝퉁이다 그럼에도 인도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 우리나라 독립문

등 모두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한 것이다 하였다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로마장군들은 콜로세움을 마주보고 좌측에

있는 이 개선문을 지나 포로노마노 로 개선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310년경부터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그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관대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자리를 놓고 막시미아누스 와 격전을 벌리기

위하여 로마로 향한다

 

그런데 진군중 대낮에 십자가와 함께 하늘에 이것으로 이기리라

하는 문구가 나타났다

 

이광경을 그의군대도 함께보았다 그리고 그날밤 꿈에도 똑같은

광경을 보았다 신의 계시를 받은 콘스탄티누스는 십자가 군기를

앞세우고 테베레강의 빌비오 다리에서 결전을 벌렸는데 막센티우스는

이전투에서 대패하여 강에 떨어져 죽었다

 

원로원과 로마시민의 환영을 받으며 로마로 입성한 콘스탄티누스는

다음해에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22년후 죽기전 세례를 받았다

터키 이스탄불은 처음 콘스탄티노풀 이라 칭하게 된 것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콘스탄티황제가 즉위 10년을 앞두고 2년안에 개선문을 만들려 하니

시간이 부족하여 다른 건축물에서 떼어다 만들었다

 

제일위 4개석상은 트랴야누스 황제 공회장에서 떼어다 붙이고

동그란 부조아래 양옆으로 길고 네모나게 만든 부조에는 콘스탄티

누스황제 전쟁 내용이 새겨져있다

 

본래 개선문 뒤로는 분수가 있었는데 파시즘시대에 뭇소리니가

이동할 때 이 개선문 가운데로 이동하려 하니 앞모양새는 좋은데

개선문을 나가자마자 바로 있는 분수를 돌아가게되니 모양새가

않좋아 없엤다 하는데 뭇소리니는 이탈리아인들의 공분을 사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이포제움(지하도)라 불리는 콜로세움 바닥밑의 터널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시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터널위로 두꺼운 판자로 덮고

다음 모래로 덮었다

 

지하2층까지 있었고 동물들의 우리 검투사들의 대기실이 있었는데

거의80군데 입구를 통해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승강기를 사용하여

갑자기 야생동물이 나타나게 만들었다

 

또한 황제나 사제들이 동물이나 검투사들이 군중을 지나지 않고

바로내려가 가까이서 구경하는 시설 까지 만들어 놓았다

경기종류는 검투사끼리 벌리는 클라디아토르 격투와 야생동물 사냥이라

할수 있는 베네이션이 있는데 베네이션은 주로 오전에 클라디아토르 는

주로 오후에 벌어졌다 한다

 

 

 

 

 

 

 

 

 

 

 

 

 

 

 

 

 

 

 

 

 

 

 

 

 

 

 

 

 

 

 

 

콜로세움 앞에서 여경 경찰관에게 교통 위반스티커 발부 받는 버스운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