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여행

마드리드에 가다(스페인여행10부)

훼브스 2020. 7. 25. 15:01

 

 

마드리드(MADRID)에 가다  

 

 

 

 

 

2016년 7월18일 월요일-19화요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 까지 71km

바로 마드리드로 입성하였다 가이드의 마드리드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설명이 이어졌다

 

마드리드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아랍시대 부터이다

8세기 이후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기 시작한 이스람 왕국은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고 9세기 경에는 톨레도와 마드리드를

포함한 중부 지역이 거의 이스람 세력화 되었다

술탄 모하메드1세때인 873년 아랍인들은 현재 왕궁이 있는

언덕에 톨레도를 수비하기 위한 요세를 건설 하면서 물의원천

이라는 뜻의 마헤리트(Mayrit)라 불러 지금의 마드리드의

기원이 되었다

 

 

 

1083년 알폰소6(Alfonso)는 아랍인들로부터 마드리드를

탈환하였고 14세기까지 가스띠아 레온(Castilla y León)왕국의

작은 도시에 불과한 마드리드는 사냥을 위해 왕들이 자주

머물렀다 한다

1492년 이사벨 여왕이 이스람 마지막 근거지인

그라나다 탈환하였다

같은 해 콜럼버스가 신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 함으로서

스페인의 황금기를 맞게되고 16세기가 되었다

1556년 왕으로 등극한 펠리페2세는 당시 수도였던 톨레도가

대제국의 수도에 맞지 않는다 하여 1261년마드리드로

천도하였다

 

 

 

그후 마드리드는 빠르게 성장하여 정치.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여러 화가와 문인들이 활동 했으며

세르반데스도 1616년에 여기서 죽었다

스페인 왕위 전쟁(1701-14)당시 마드리드는 오스트리아

함부르크왕가 대신 프랑스 부르몽 왕가를 지지하여

집권하게 되자 제2성장기를 맞고 펠리페5세는 마드리드

재건에 온힘을 쏟았고 부르몽시대 위대한 건축사업을

벌렸던 카롤로스3세 는 마요르광장을 만드는등 큰 역할을

하였다

 

 

Plaza de la Armeria Placio Real  아르메리아 광장 왕궁과 정면

 

 

 

스페인 현지 가이드 는 세계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왕궁 앞에서 가이드 장화영씨는 설명이 이어졌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스페인 왕위 쟁탈전쟁(1704-14)을 벌려

결국 프랑스 루이14세의 손자인 펠리페5(Felipe)가 카롤로스 데

데오스트리아 대공을 꺽고 스페인내 프랑스 왕가 시조로서

왕위에 오른 펠리페5세는 자신이 어린시절 보냈던 베르사유 궁전에

대한 향수로 1735년 이탈리아 건축가 필리퍼 쥬바라

(Pilippo Juvarra)로 하여금 현재 모습의 왕궁을 짓도록 하였으나

왕궁의 완성을 보지못하고 사망하고 그후 지오반니 사게띠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Felipe of Spain 펠리페4세 동상

 

 

 

 

Felipe VI of Spain 펠리페6 (스페인 현 국왕 팰리페6세 부처)

 

 

가이드가 차내에서 스페인의 공식 명칭을 아는사람?

질문을 던지자  어느사람이 재빨리 에스파냐 왕국(스페인어: Reino de España)

이라고 답했다

 

 

 

 

 

 

왕궁앞의 거리 악사

 

왕궁앞의 거리 행위예술

 

 

 

 

 

 

 

 

 

 

Plaza del Sol 솔광장

 

마드리드의 여러도로가 솔을 중심으로 뻗어나간다

마드리드의 중심이되는 곳이다 카롤로스3(Carlos )

청동 기마 동상과 도시의 상징물 마드로뇨 나무(소귀나무:산딸기열매)

먹고있는 곰 동상이 서있다

이 동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 하여 마드리드 청춘남녀들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한다 마드리드로 천도하기 전에는

여기는 곰들이 많이 살아서 사냥을 많이 하였다 한다

 

 

 

 

Plaza de la puerta del Sol 태양의문광장

 

 

Plaza de la puerta del Sol 태양의문 경비병

 

태양의 문 이라는 이름유래는 중세때 이곳에 있었던 아랍 성벽의

태양의문(Plaza del Sol)이라 불렀던 문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드리드의 중심부로 외부지역과의 거리가

이 광장에 있는 표준 지점을 기준 측정 되고있다

도한 쇼핑가의 중심 카르멘거리.쁘레시아도스거리.

알깔라 마요르거리 등의 주요길이 이길에서 갈라져

나오고 있다 현재 이광장의 모습은 1861년 환 바우띠스따

빼이로네트가 설계한 것으로 구 우체국 (Casa de Correos)

건물만 남기고 부수거나 개조하면서 만들게 되었다

 

 

 

Plaza del Sol 솔광장 중앙에 있는 방위표 여기서 부터 거리가 측정된다

 

 

 

 

벤타스 투우장 Ventas bullfighting

 

 

스페인하면 플라멩고와 함께 투우를 연상케 한다

투우는 스페인어로 코리다 데 토로스(Crooida de toros)

라고 하는데 소와 인간의 싸움으로 이베리아 반도와

멕시코등 중남미에서도 인기리에 행해지고 있다

스페인에서 발달하였고 國技로 되어있다 투우를 처음 전한 것은

 

스페인을 점령하였던 이스람 무어인(북아프리카)

들이 17세기 말경까지 궁정의 오락거리로 귀족들 사이에

성행 했는데 18세기초 부르몽 왕조 시대에 이르러 현재와

같이 일반 군중들 앞에서 구경거리로 행해졌다 한다

투우사의 개조(開祖)는 스페인 남부 출신인 프란시스코

로메로라고 하며 지금도 남부출신이 많다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만 하던걸 19 20세기 들어 전국적으로 행해졌지만

투우 반대 운동이 있는 바로셀로나에서는 투우장은 다른목적

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전국적으로 해마다 평균900번 정도 투우가 열리고

52백 마리가 희생되고 바로살로나 에서도 한해 1백마리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세로나가 있는

카탈로니아 지방은 독립운동 까지 일고 있고 잔인성의

국제여론에 부응하여 금지 하게 되었다 한다

마드리드의 투우장은 벤타스역과 Vista Alegre 전철역

쪽에 있다

 

 

 

 

 

 

 

 

 

마요르 광장 Plaza MayorFelipe of Spain 펠리페3세 동상

 

원래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이 위치한 곳은 아라발 광장 으로 잘 알려져

있었던 곳이며 낡은 집들이 광장 주위를 둘러싼 불규칙한 모양을 하고있었다

펠리페 2세때 먼저 이곳에 대한 확장 정리 공사가 있었으며 펠리페 3세 때

정식으로 의회는 고베스 데 모라 로 하여금 이 광장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마요르 광장은 1620년에 이시드로 성인 축제때 함께 개관 하였으며

1631.1672.1790년 3번의 걸친 화재로 현재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마드리드 중심가의 초상화 화가

 

 

 

 

 

 알깔라거리 중앙우체국 (Casa de Correos)

 

 

이 건물은 1768년 프랑스 건축가 마르케트(Marquet)

가 건축한 건물로 시간이 지나면서 내무부 경찰본부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에는 마드리드 시청 건물로

쓰이고 있다

 

 

 

 

 

 

 

Avenidas de Gran Via Madrid 그란비아거리

 

 

스페인 광장에서 알카라 거리와의 분기점까지 약1.5km

이르는 거리로서 그란비아라는 뜻은 큰길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제일 큰 거리이며 마드리드의 번화가이다

1901년경 거리가 생성되기 시작하여 1952년 마지막 건물이

들어서면서 완성되었다

 

 

번화가 한국식당 마루

 

 

Calle de Alcalá 알깔라거리

 

 

 

 

 

Fuente de Cibeles 시벨리우스 광장

 

 

Fuente de Cibeles 시벨리우스 분수

 

알깔라문

 

Calle de Alcalá 알깔라거리

Plaza de Clbeles 시벨레스광장

Fuente de Cibeles 시벨리우스 분수

알깔라문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이 우승하면 마드리드 사람들이

몰려나와 새벽5시까지 축제를 세벨레스 광장 앞에서

벌리는데 주변에는 스페인 독립전쟁을 기념하는 알깔라문

알깔라분수 등이 있는 알깔라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

 

 

스페인 광장은 1916년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가 이며 세계대문호 세르반테스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 졌다 광장 중앙에는 세르반테스의

기념비가 있고 드 앞에는 애마 로시난테를 올라탄

돈키호테와 노새를 탄 산초판사의 동상이 서 있다

 

 

 

 

17세기 세르반테스(1547-1616)의 소설 시행착오적인

돈키호테 라만차는 풍자소설 같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고매한 이상주의자 가 현실사회와 충돌하며 비통과

패배를 맛보지만 결코 기사도 고귀하고 용기를 있는

정신을 버리지 않는 주인공 돈키호테 동상과 그의충복인

우직하고 욕심꾸러기며 순박한 산초판자와 함께

스페인광장 안에 서있다

뒤에 지구본이 있는 높은 탑이 서있고 그중간에 세르반테스

석상이 있다

 

 

 

 

돈키호테는 성경과 공통점이 두가지가 있다 한다 하나는

세상사람들이 제일많이 읽은 책이고 두 번째는 끝까지

읽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으로

읽은 사람들의 평을 보면 이룰수 없는 꿈을 목표를 이루려는

허망한 사람이라 비판하는 사람과 그꿈을 목표로 노력하는 사람이

배울점이 있다는 양극의 현상을 보게 된다

 

 

 

 

 

 

Puente de Apolo 아폴로 분수

 

시벨레스와 넵투노 광장 사이에 있는 아폴로 분수는 버스이동중

보게 된다 "맨투라 노드리게스" 의해 설계 1777년 만들어졌다

 

 

 

Fuente de Neptuno 넵투노 분수

 

프라도 산책로에 있는 광장으로 일반적으로는

넵투노광장이라 부른다 그이유는 광장중앙에 바다의

넵투노의 조각상이 있는 분수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분수대는 벤뚜라 노드리게스에 의해 계획되어

1782빠스꾸알 데 메나에 의해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다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고야 동상 앞에서

 

 

 

벨라스께스 (시녀들 Las Meninas)

 

프라도 미술관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벨라께스는 스페인 바로크의 거장으로 17세기 스페인 화단의 최고 작가로

손꼽히는 화가이다

궁중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난쟁이들을 궁중에 불러들여 왕족들은 즐거움을

가졌다 한다

 

 

 

벼룩시장"라스뜨로"(Rastro)

 

톨레문 근처에 있는 뿌에르따 데 톨레도 시장건물(1934) 뒤편으로

여러개의 거리가 갈라지는 곳이있다

카토릭 국왕부처 이후 전형적인 시장이 열렸디

 

 

 

 

마드리드 시내 기념품 판매점

 

 

빵집

 

 

마드리드 외곽 주택 집집마다 아파트 테라스에 티 테불이 마련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