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홍회

동궁의월지 안압지(경주여행7부)

훼브스 2020. 12. 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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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국립박물관에서 나와

경주 동궁과월지(안압지)로 이동합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안압지는 야간매표시

줄을서 30분이상 기달려야 한다는 당부가 있어

미리 매표하고 밤에 다시 올 터지만 미리 입장하여

둘러보겠다 하여 입장하였습니다.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직후인 문무왕(文武王)

14(674)에 황룡사 서남쪽 372m 지점에 신라왕궁의

별궁터라 합니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무산(巫山)을 나타내는

12개의 봉우리로 구성된 산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신선사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합니다

섬과 봉우리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는 가장 대표적인 신라의

원지(苑池)이라 합니다

왕궁에 딸린 연못으로 서쪽에 별궁인 임해전이 있으며,

동쪽과 북쪽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고,

연못 안에는 3개의 성()이 있습니다. 별궁인

임해전과 여러 부속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 곳을 바라보면서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던 곳입니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라 합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입니다.

 

 

 

 

실지 이곳에서 목선이 발굴되고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어

우리는 그때 신라때의 분위기를 맛 보려 호기심을 발휘 하였습니다

추춧돌만 남아 복원을 기다리는 터에서 그때의 영화를 느꼈습니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등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1980,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 곳이 월지(月池)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합니다.

이는 신라 왕궁인 반월성(半月城)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임해전의 이름도 본디 월지궁이었다고 한다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조선의 묵객들이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삼국사기에 동궁을 임해전(臨海殿),

즉 바다에 면한 건물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기에서 안압지는 바다를 상징한다 합니다 .

(위키백과)

 

 

 

야경을 보기위해 다시 입장합니다

많은 인파에 휩쓸려 안압지 일주를 하는데

청춘남녀들의 아름다운 데이트가 평화롭고

조명의 환상적인 빛으로 우리는 다시 청춘이 됩니다

 

 

 

 

 

 

 

 

복원 입체 모형도

 

 

 

안압지 동남쪽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

이곳은 물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설이자

수조 역할을 했던 곳이라합니다

 

 

 

경주국립박물관 월지관

 

월지 출토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품은 무덤출토품과는 달리 신라 통일기 궁중생활의 면모

를 보여주는 다양한 종류의 실생활용품입니다

2개층에 건축부재 문서자료 금속공예품 불교조각품 등을

주제별로 전시하여 신라통일기의 문화 특히 왕실의 생활

문화 전반을 이해할수 있도록 만들어저 있습니다

(경주 박물관 가다록)

 

 

 

안압지의 출토유물

 

안압지는 경주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74년에 준설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와 등 유물이 드러나 1975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재연구소에서 연못과 그 서 .

남쪽의 건물 터를 발굴 조사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안압지 서쪽 연못가 석축에 바로 접하여

세워진 다섯 군데의 누각자리등 건물자리 26, 담장터 8,

 배수로시설 두 곳, 입수구 시설 한 곳 등이 밝혀졌으며,

3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들은 당시 왕과 신하들이 이곳에서 잔치할 때

못안으로 빠진 것들과, 신라가 멸망하여 동궁이 폐허가 된 뒤

홍수 등으로 쓸려 들어간 것들로 추정되는데, 주로

누각 자리를 중심으로 못 안쪽 반지름 6m 거리

안의 바닥 토층인 뻘층에서 출토되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경주의 고분에 출토된

유물들, 곧 껴묻거리와는 달리 당시 신라시대

궁중 생활을 알 수 있게 하는 실생활용품들이라는

점이 특징이며 그 종류도 다양하다.

아울러 이 유물들은 통일신라문화의

실체를 밝혀줄 뿐 아니라,

그 당시 당 및 일본과의 문화교류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토 유물은 금속공예품 1,152 . 목제품 920.

철제품 603 . 와전류24,353. 토기류 3,388 .

기타 2,171점등,  32,587점에 이른다

 

 

 

 

 

 

안압지 임해전에 전시된 모형 출토품

 

1975년 경주 안압지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목선을 인부들이 옮기고 있다.

(경주문화재 연구소)

 

복원되어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실물

 

안압지 동편 임해전에서 출토된 목선은

깊은 뻘층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거대한 목선크기만큼이나 운반이 쉽지않았는데

인부 수십명이 달라붙어 뼈와배 주변부를 제외한

흙을 제거하고 아래로 층을 낮춘후 목선아래로

두곳에 나무를 집어넣어 상여모양으로 얼기설기

매고 호안 밖으로 꺼내려고 했다 합니다

하지만 호안 위로 나오는 도중 무게를 이기지못해

약간 기울어지는 순간 목선 측판 한쪽에 금이가게

되었는데 이를 알게된 기자들이 안압지 발굴 조사단이

출토물을 부주위로 훼손하고 있다며 대서특필 하였

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비한 장비와 미비한 기술로 당시에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며 연구원장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합니다

결국 통나무를 결구 시켰던 빗장을 풀어 분해하여

목선을 3등분 하나씩 들어 임시방편으로 황룡사지에

PEG 탱크를 만들어 그곳에 침전시켜놓았다 합니다

목선이 땅에 올라오기 까지 건조하지 않도록

매일 물을 뿌려주고 탈지면으로 덮어 습도를 유지

하였다 하는데 목선의 크기도 크기거니와 금방금방

물기가 말라버려 보통일이 아니었다 합니다

안압지 목선이 출토된후 9년간 경주국립박물관

수장고에서 보존처리작어을 거친후 현재

경주 국립박물관 월지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돌난간(복원)

안압지서쪽 호반에 인접한 건물터 5개소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제5건물터에

설치되었던 돌난간입니다

발견당시 파손된 부분이나 빠진 부재는 수리

하고 복원한 모습입니다

난간양쪽 끝에 8각형의 기둥을 세우고 그가운데

세 개의 동자주를 세웠습니다

기둥사이에는 두 단으로 돌난대를 설치하였는데

나무난간과는 달리 살대는 생략하였습니다

경주박물관

 

 

난간 압압지에서는 네모난 부재를 수직과

수평으로 연결시켜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드는

난간살대가 많이 출토되었다 합니다

이러한 모양의 살대는 칠곡 송림사 전탑에서

발견된 사리엄장구의 난간장식이나

통일신라 시대 사찰인 남원 실상사 배강암의

삼층석탑 난간장식에도 확인되었드시

당시에 유행했던 방식이라 합니다

 

 

수로 물마개

 

물이 유입되는 석조 구멍을

큰나무 물마개로 막는 나무 물마개 입니다

 

 

금동완

 

금동완

 

금동완 및 금동합

숟가락

금동문고리

금장식구

금동손

금동여래입상

금동여래입상

 

금동용머리 (의자의 양쪽손잡이 장식품)

 

 

 

금동제 초심지가위

 

금동보살좌상

금동삼존불

 

금동화불

 

금동화불 주악상

 

 

E18區 출토당시 주령구 모습(안압지 발굴조사보고서)

 

주사위(복제품)

 

1975년 안압지를 발굴할 당시, 주사위가 하나 출토됐다.
참나무로 만들어진 주사위에는
각 면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있다.

정사각형 면이 6, 육각형 면이 8개 총 14면체인

이 주사위는 안압지에서만 발견된
독특한 모양이다.
일반적인 6면체 주사위에 비해 이런

모양으로 깎아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사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을까

 

< 음진대소 >
술을 한 잔 마시고 크게 웃기

<양잔즉방
술을 마시지 않은 채 술잔을 두 잔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재촉하는 벌칙이다

<곡비즉진 
팔을 구부려서 술을 마신다는 뜻의 곡비즉진은

두 사람이 함께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금성작무>
소리없이 춤추기.

<중인정비 >

 코 때리기
 "술만 주고 받고, 그저 노래나 하고, 춤이나 보는 것

보다는 잔치에 참석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술자리에
전부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변형을 주는 의미..
한사람 한사람의 행동이 다 다르다. 마시는 태도, 춤추는 태도,

흉내내는 태도도 다르고 그런 것이 14개 적혀있다.

현대적으로 활용되어도 재미있는 놀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 

 

 

나무조각품

 

목선

 

우리의 토양은 산성이기 때문에 목제유물은 거의

출토되지 않는다.
다행히 안압지에서 목선이 뻘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안압지의 목선은 국내에서 발견된 최초의 것으로

우리 배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목선은 몇 년동안 경화처리를 거쳐

안압지관에 전시되어있다.
길이 약 6미터, 너비 1.2미터 규모의

이 목선은 어떤 용도로 쓰였던 것일까.

그 단서는 배의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안압지에서는 목선과 배의 파편들,

그리고 나무노가 함께 출토되었다
안압지의 배는 세 토막의 통나무 속을 각각 파내고,

바닥에 고리를 파서 장쇠로 연결한 통나무배다.

이런 배는 통나무배 중에서도 가장 발달된 형태다.
이 배는 두께가 두껍기 때문에 부력이

좋아서 안정성이 있다.

배가 높이 올라가 있지 않은 것을 봐서는 연못이나

 호수에서 쓰는 배. 선유라고 해서 사람이 타고

뱃놀이를 할 수 있는 배. 뒤에서 노젓는 사람이

두 사람만 있으면 충분히 간다. 먼거리

이동이 아니고 연못 안에서 유유히 돌아다니니까...

 

목간

칠기그릇

칠기꽃장식

 

목제남근

수막새

암막새

 

망새

 

모서리기와

 

녹유수막새

 

 

녹유도깨비기와

곱새기와

 

(벽돌

 

(벽돌) 삼국시대의 하나인 전은

삼국시대부터 제작되었습니다

무늬가 없는것도 있으나 용무늬 건물무늬

등 장식된 에도 많이 있다 합니다

또한 옆면에도 마주보는 사슴모양이나

용무늬 당초무늬 등이 장식되어 매우 화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