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70

홍도여행3부 유람선투어

여객선 입항할때 선내에서 촬영한 깃대봉 우측 봉우리 유리창은 해수로 오염 되 투명하지못해서 사진이 파랏게 나왔다 2013 5 29 홍도에서의 첫밤은 동료들과 늦게 까지 담소를 나누다 잠을 설쳤다 25일 아침 섬을 일주하는 해상 투어가 있어 05시30분에 식사를 완료후 06시30분 홍도 터미널로 집합하라는 가이드의 당부를 지키기 위하여 새벽에 채비를 하는데 세찬 바람과 해무가 짖게 깔려 앞이 보이지 않아 홍도의 하일라이트 해상투어가 무의미 할것 같아 조바심을 하였다 허나 해무에 가려진 형상은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니 과연 절경중에 절경 남해의 소금강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암석의 형태와 작은 섬 들의 명칭과 전설을 설명하는 선상가이드의 말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해무가 삽시간 전경을 웨워 쌓았다가 돌연히 ..

국내여행 2020.11.30

홍도의먹거리 홍도여행2부

2013 5 27 60년대 홍도 숙소 배정후 몽돌 해수욕장으로 가서 횟집에 들렸다 거기서 우럭과 돔 을 15명이 먹었다 싱싱한 활어를 먹고 매운탕에 소주를 !!! 깃대봉을 올랐다가 선창가 부두에 늘어선 포장마차에 갔다 여객터미널에 밑에서는 3인조 악단의 연주로 관광객들이 디스코 파티가 한창이다 거기서 먹은 것은 해삼 홍삼 전복 소라 등 을 먹으며 합창으로 홍도야 울지마라 를 열창하는데 이웃 테불에서 열광한다. 바늘님이 이르기를 “홍도야 울지마라를 어떻게 생각 하였는가? 지금 분위기 와 딱 맞아 떨어진다 하는고로 내친김에 흑산도 아가씨를 합창으로 열창하다. 누가 묻기를 홍도가 홍도하고 무슨 연관이냐? 답하기를 紅島 는 저녁노을로 붉어지는 紅島고 홍도는 사랑에속고 돈에울던 식민지시대의 신파극으로 눈물의 주인..

국내여행 2020.11.30

홍도여행1부 깃대봉

2013 5 13 2013년 5월24일 홍도를 가기 위하여 서울 용산역에서 07시20분 KTX 고속열차에 승차하여 3시간30분 만에 목포역에 도착하였다 다시 홍도행 카페리에 승선 15시 정도에 홍도에 도착하였다 여행에 앞서 살펴본 홍도는 목포시에서 남서쪽으로 1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본섬과 13개의 부속섬으로 있고 섬 전체가 1965년에 천연기념물 17호로 지정되었다 섬을 형성하는 기반암의 성분이 붉은색의 규암과 규암질사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암석의 수평과 수직으로 있는 틈이 잘 발달 되어 있어 절경을 이룬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위치한 대흑산 본섬의 부속섬으로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리우고 있다. 섬 주변이 기암 괴석 들로 이어진 섬의 명칭은 옛날 중국과 교역할 때 중간기항지로서 이섬에 정박하..

국내여행 2020.11.30

속초 해맞이여행

송년 산행을 마치고 00여행사가 주관하는 해맞이 관광에 나서다 그 시간이 23시에 출발함에 준비하고 집을 나서다 보석은 팔짱을 끼며 흥겹게 하는 것은 어머니 따라 장에 갈 때 까치발 뛰는 어린이와 흡사하다. 버스에서 만감이 교체 되는 것은 1시간 있으면 丁亥년이 되는 것이다. 속초의 새벽 유람선에 승선하여 해맞이 바닷길에 나서다 잔득 찌프린 하늘 회색빛 바다엔 구름으로 가려 햇님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유람선에서 불 꽃 놀이와 함성이 요란하고 갈매기 때의 군무 바닷길을 밝히는 오징어 배 나는 그만 한 살 더 먹는 억울한 심사를 잃어버렸다. 상갑판은 추웠으나 보석을 달래서 상후미갑판에 자리를 잡은 것은 海軍에 있었던 경험에서다 망망대해를 항해 중 후미갑판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의 장관은 지금 것 ..

국내여행 2020.11.30

신미양요를생각하며 덕진진에가다

이슬같은 비(雨 )를 맞으며 잿빛 바다가 보이는 덕진진에서 눈을 감고 민초의 넋을 위로하다 덕진진 초지진을 초토화 시키고 덕진진 포격전 광성보 조선군 수비대 600명의 대부분 전멸당한 미군과의 최초 전투지는 포대위에 초연하다. 가름하여 133년 전 1871년 辛未洋擾 를 짐작 하고 있었다. 미 해병대에 맞서 槍劍을 휘드르며 절규하는 조선군이 보인다 . 여기서 장렬하게 전사한어재연 장군기 도 빼았긴다 초지진 각종 장군기와 군기가 펄럭이며 처절하게 싸웠던 함성이 들리듯한다. 어재연 /어재연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 丙寅洋擾 는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자국 선교사 를 살해한 것을 보복하려고 인천과 강화도로 처들어와 전투를 벌린 사건으로 이로서 외규장각 도서 들을 탈취 당하여 최근 까지 굴욕..

국내여행 2020.11.30

오하나마나호의 추억

오하나마나호를 타고 여행하는데 제일 싼 船賃으로 9만원일때 이야기다 인천에서 출항대기때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출항을하고 저마다 알아서 객실을 잡아야 되는데 객실마다 사람들이 먹거리를 준비해와서 술파티를 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특색은 한마디로 각자 돈을 지급한 만큼의 대접을 받는다 심스클럽은 늦게 예약이 이루어져 얄은 은박깔개하나씩 지급받은게 전부다 한겨울 깔개하나로 차디찬 철판냉기를 피하며 잠을 잘수가 없었다. 선상라이브 카페에 들렀다. 열기 퀴즈와 께임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진행자가 나와 퀴즈를 내는데 오십원짜리 동전에 벼이삭이 몇 개인가?? “00개입니다” 나는 힘차게 외치고 나가서 신나게 춤을 춘 다음 상으로 한라봉 한상자를 받았다... 후미갑판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그것도 보고 다시 취침실에 ..

국내여행 2020.11.30

2012년해맞이(선사시대 고대인을 만나다)

2012년 중부지방 일기예보는 일출시각 07시47분 눈이오고 흐린 날씨로 인하여 해맞이가 불가하다 하였다. 과연 07시45분 뒷동산에 올랐으나 짙은 먹구름만 보일뿐이어서 이내 스카이 산악팀 약속한 8시 에 집합 제2의 해맞이 강화도 분오리 돈대로 향하고 있었다. 분오 돈대는 동막해수욕장위 언덕위에 자리한 적을 살피는 초소인데 강화도의 여러개의 돈대중 하나이다 강화도 제일 남쪽에 자리한 이돈대는 숙종5년 (1679)년 에 당시 강화유수 윤이제가 병조판서 김석주의 명을 받아 경상도 군위어영군 8천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한다.4대문과 성안에 포를 설치하고 관아에서 돈장을 따로 두어 관리하던 중요한 요세 였다 이곳의 해가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동막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 뒤편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갈매기와 기러..

국내여행 2020.11.30

석모도/보문사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섬이다. 내가 강화도를 사랑하는 것은 민족의 영적인 첨성단이 있는 강화도에서 제일 높은 마니산이 있고 선사시대 고인돌을 비롯한 역사유적이 많다. 낭만적인 해변은 강화를 둘러 싸고 있는데 강화도 앞 석모도에는 낙가산 밑에 자리한 유서 깊은 보문사가 있다. 보석과 함께 외포리 선착장에서 승용차에 탑승한 채로 승선한다. 짧은 구간 의 항해를 하는 동안 페리호 후갑판에서 새우깡으로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면 손바닥 까지 근접 접근 하여 채간다. 석모리 선착장에서 좌측 큰말-진득이고개-해명산입구-방개고개- 새가리고개-보문사(낙가산)-절고개-상봉산입구-석모리-목개저수지- 삼산-동촌-밤개-석모리선착장을 잇는 드라이브를 즐기는데 해안선과 접한 길은 환상의 낭만으로 가득했다. 첫 번 보문사..

국내여행 2020.11.30

이태백과 변산 채석강

중국 당 이태백 (701-762) 시풍이 자유 분방하고 환상적이며 "시선"이라고 존경받았다. 중국을 대표하는 고전의 시인이라면 이태백과 도연명을 꼽을수 있겠다 신선이 돼서 승천 했다는 이야기부터 그의 일화는 많다. 이백의 술을 좋아했던 일화 중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하루는 현종이 양귀비와 또 술을 푸다가 이 태백을 불렀다. 그런데 그때 이태백은 너무나도 취한 상태여서 서있을 수도 없는 상태였고 이태백은 왕 앞에서 서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취해 있기 때문에 입궐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현종은 이태백에게 왕 앞에서 앉아 있을 수 있는 특권을 평생 주기로 하고 그를 입궐시켰다고 한다. 이럴 정도로 왕의 총애가 깊어지자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생겨났고 특히 당시의 간신이었던 '고력사'는 그의..

국내여행 2020.11.29

서정주와 선운사동백꽃(꽃밭에서)

輔錫의 생일 여행을 계획하였습니다 산을 두려워하니 두 사람이 만족할 만한 코스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선운사 !!!! 고창 선운사!!!! 앞에 미당의 詩碑가 있었습니다 동백꽃/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이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시상에 감격합니다. 미당 서정주 소년기부터 그분의 詩에 반했던 나 보석과 나란히 그분의 詩碑앞에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일전 삼각산 둘레길을 가다가 미당에 대한 친일 행각을 춘곡과 진지하게 토론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미당은 詩야 좋지. 허지만 많은 애국 선열 들이 國權을 되찾으려고 산화 하던 때에 마쓰오 히데오 라는 글을 신문에 발표해서 학도..

국내여행 202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