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홍회 76

중앙전통시장(통영여행3부)

동피랑 마을에서 하산하여 통영 중앙전통 어시장 구경이다 시장구경은 참 흥미로운 곳이다 저마다 삶의 진한 애환을 간직하고 사람 냄새를 풍기는 곳 활어 건어 꿀빵집 알뜰 시장이 형성된 곳엔 저마다 상품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부른다 어느집엔 굴러다니는 소주잔을 파는데 개당 1백원 흐흐 흐 파시 바로 잡은 생선들이 팔딱이는 곳 중앙어시장 은 흥미로운 곳으로 솔솔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시장앞에 있는 거북선은 입장료 2000원 통영 앞바다엔 한산섬이 있어 한산대첩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얼을 생각하게 된다 이순신을 논하게 되면 자연 선조를 말하게 되는데 안박사는 “무능의 그치로 어떻게 아들을 질투하고 시기 할 수 있는가?“ 어떻게 敵前 무장해제를 시킬 수 있는가?“

육홍회 2020.12.01

동피랑마을(통영여행2부)

케불카를 타고 미룩산을 견학한다음 점심을 먹고 동파랑 마을로 향한다 동파랑 마을은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동포루가 있던 자리로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 동포루를 재건할 계획을 세우자 2007년 10월 푸른 통영21 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로 동피랑 색칠하기 공모전을 열고 전국 미술대학등 18개팀이 낡은 담벼락에 색칠을 하여 관광지로 거듭나게 하였다 3인의 부인들은 동심으로 돌아가 TV에 소개된 천사날개 에서 사진도 찍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걸어 정상에 오르니 통영성과 누각이 보이는데 통영성은 조선 숙종 4년(1678년) 윤천뢰 제57대 통제사가 처음 쌓았다 한다 동양의 나포리라 일커르는 통영 이렇듯 개성을 살린 동피랑 마을은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을 비견되게 관광객이 많았다 재미있는 ..

육홍회 2020.12.01

미룩산(통영여행1부)

2015년 11월14∽15일 모 관광회사 패키지 상품 통영 5도(한려수도중 연대 만지도)를 3인 부부가 1박2일 여행길에 올랐다. 통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 그리고 그분의 대표작 토지 의 주무대는 하동 이다. 그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유작으로 남긴 詩가 있다 司馬遷을 생각하면서 쓴 글인데 사마천은 중국 전한 때 흉노와 전쟁시 중과부적으로 참패한 친구 이륭 변론하다가 武帝로부터 죽음보다 더한 궁형(고환 거세)을 선고 받고도 자신의 신념(상고사 저술) 을 위해 굴욕적인 삶을 살아와 지금까지 동양의 최고의 베스트셀러 사기열전을 완성하고 죽은 사람이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

육홍회 2020.12.01

옹도 여행의멋(옹도여행1부)

2015년 9월6일 106년 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된 아름다운 태안반도 옹도를 가기위해 안박사 .훈장출신 춘성 그리고 우리부부 6인이 팩키지 여행에 나섰다 버스에서 가이드에게 어느 부인이 질문을 하였다 여행 할만한 좋은 곳이 어디인가? 가이드가 답하기를 굉장히 난해한 질문이다 하였다 “여행이란 누구랑 함께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며 계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쉽게 답을 드릴 수 없다 하면서 예를 들면 애인하고 함께 하는 여행과 부부 싸움하던 남편과 함께 하는 여행이 같을 수는 없겠고 동백 매화 벚꽃 꽃 무릇 단풍등 계절의 느낌은 같을수 없다 하므로 어디가 좋다고 할 수는 없고 이제것 보아온 중에 야생화 천국 곰배령이 제일 좋았다 하였다 가이드의 말대로 누구와 여행 하느냐에 따라 즐거움은 다르다 40년 지기 그..

육홍회 2020.12.01

낙산사의애환 육홍회

2015년 6월28일 오색약수에서 택시를 불러 낙산사로 간다 낙산사는 낙산해수욕장과 같이 있어 누구던지 추억이 있기 마련이고 가슴아파오는 연민을 가지게 되는 것은 2005년도의 큰 화마로 인하여 국보급 문화재 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落山寺는 강원도 양양군 바다를 낀 오봉산에 있는 절이다 671년에 창건된 이래 여러차래 중건 복원과 화재를 반복하였다 택시 기사가 당시상황을 설명하는데 화재당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불덩이가 길을 건너 날라 다니는 무서운 광경을 목격했다며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지금은 더 좋게 복원되어 있지만 옛 고색 찬란한 모습은 볼수없다 하였다 낙산사 입구 왼편에 화재당시의 부속품을 모은 전시장이 있었다 안박사 부부와 낙산사에 얽힌 추억들을 말하며 입장한다 넓은 경내 탁트인 바..

육홍회 2020.11.30

주전골의6월 육홍회

오래전 점봉산 종주를 한 추억은 영원히 잊지못한다 지금은 입산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일부인 주전골을 가기로 하였는데 마침 큰아이 사돈이 호텔쿠폰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하여 안박사 부부와 함께 주전골 여행 계획을 세웠다 6월 27일 오색그린야드 호텔 입실 주전골 트레킹 28일 낙산사 관광 속초로 이동 어시장 회 먹거리 회식후 귀경 여정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가볍게 주전골로 향한다 숲과 계곡에서 새와 다람쥐가 놀고 있고 피톤치드의 향 4인은 낭만적인 감성으로 주전골을 트레킹하였다 오래전 1월 무박등산을 위하여 여기를 거처 대청봉에 올랐으나 캄캄한 밤중이라 주위를 관망할수 없어서 기억은 전혀 없다 분명한 것은 지난날은 대청봉을 포함하는 양양군 쪽의 산만을 설악산으로 불렀는데 지금 내설악이라 ..

육홍회 2020.11.30

북한산 둘레길8코스(불타는 태극기)

우리동네 아파트 단지내 만개한 연산홍을 보며 여기서 부터 기분좋게 출발한다 4월 26일 초하의 날씨로 좋은 날이다 춘성부부 안박사부부 평보부부 6인이 북한산 둘레길 8코스(독바위-구기터널앞)을 걷기로 하고 11시부터 독바위역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느덧 시절이 호시절이라 곷들이 피어 향기를 주고 딱따구리는 꽃이야 피건 말건 썩은 나무와 씨름하고 있었다 정중앙 하늘 채 전망대에서 보는 시가지는 시원한 풍경으로 저 많은 아파트속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을 갖고 열심히 삶을 역어간다 생각하니 그속에서 벌어지는인간 갈등의 시비가 끝이 없다 생각되었다 그것은 국기를 불 지른 어느 사람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기에 느끼는 감정인데 그분이 인터뷰에서 구차한 변명으로 행위에 대한 타당성을 부각 시키려한 것이 더 야속한데 먼저모임에..

육홍회 2020.11.30

안산자락길(안산길3부)

한양도성 길(낙산 전망대에서 보면 한성성곽이 이어지는 둘레를 조망할수 있다 2015년 3월29일 친우3인이 부부동반 독립문역 5번출구에서 만나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참관하고 안산둘레길을 가기위해 한성과학고앞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들어선다 여러군데 램프가 설치되어 있고 나무로된 데크와 중간 중간 마사토등으로 조성되어 걷기 편하였다 어느새 진달래가 만개하고 봄꽃이 피었다 일전 낙산에 올라 전망대에 오르니 도성 성곽이 일목요언 하게 보였다 서울시를 분지로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진산들은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으로 남산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 로 삼았던 조선의 명산들이다 그러나 낙산 남산 인왕산 북악산 들은 성들이 복원되어 있었는데 왜??안산의 성터는 뿌리째 보이지 않는가?? 의구심..

육홍회 2020.11.30

서대문형무소역사관(안산길2부)

2015년 3월29일 서대문 형무소 기념관에 입장한다 그 적나라한 일제의 만행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영상으로 보여주는 독립유공자들의 증언은 처참하였다 여자들 자궁에 나무를 넣어 쑤시고 남자들에게는 요도에 침을 박는 고문 차라리 죽여달라고 저항하던 그분들 우리가 생각하는 몇몇 유명한 한중근 김구 유관순..뿐이아니고 기록으로 남아있는 독립투사들의 사진 5천여장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시대의 3가지 삶의 방식이 있었다 그하나가가 1.친일파로 일제에 아첨하여 독립투사를 사냥했던 사람들 2.평범하게 그냥 의식없이 삶에 지쳐 생활하던 사람들 3.일제에 항거해서 가시밭길을 갔던 사람들 나라면 어떤 길을 갔을까??? 머리가 아파왔다 여인들은 중압감에 견디지 못하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한다 눈물을 글썽이며!!!!!!!!..

육홍회 2020.11.30

독립문역(안산둘레길1부)

2015년 3월29일 서대문역사 발물관을 견학하고 안산 둘레길을 가기위하여 전철3호선 독립문역에서 미팅하였다 독립문역사에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많은 태극기가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독립운동에 쓰여졌던 국기 6.25 동란때 학도병들이 서명한 국기등이 전시되어 있고 벽면엔 독립선언서가 음각되어 있었다 국기에대한 고증(위키백과) 1882(고종 19년) 제물포 조약의 사후 처리로 수신사 박용호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 그들이 편승한 일본 기선 메이지마루(明治丸) 선상(船上)에서 도안하여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국기 문제가 논의된 때는 이보다 앞서 강화도 조약체결 당시 강화도 회담에서이며, 또한 박용호 이전에 미국 측 요청으로 김홍집의 주도 아래 이응준이 태극기를 만들어 1882년5월 조미수호..

육홍회 2020.11.30